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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너무 안 좋았다. 어제 먹었던 야채가 문제인지 고기가 문제인지 체한것 같았다. 그래도 좀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는 생각으로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방비엥은 비록 작은 규모때문에 실망할 법도 하지만 나에겐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도시였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다.


비엔티안(위앙짠)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나온 공터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따로 버스 터미널이라는 장소가 없었는데 이 넓은 공터가 방비엥의 버스터미널이었던 셈이다. 상민이형은 여행사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버스를 예약했기 때문에 여행사쪽으로 갔고, 우리는 이곳 공터로 왔다. 그렇지만 버스를 타기가 무섭게 상민이형이 뚝뚝을 타고 이쪽으로 왔다. 결국 같은 버스를 타고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얘네들은 왜 여기서 놀고 있는 걸까?


우리가 타고 갈  VIP버스였는데 역시 한국의 중고버스를 수입해서 운행하고 있었다. 말이 VIP지 사실 그냥 낡은 중고버스에 에어컨이 달려 있다는 것 뿐이었다. 


우리나라 버스임을 확인시켜주는 의자의 뒤에는 부산의 은혜장식이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한글이 떡하니 있는 것을 보고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비는 50000킵(약 5000원)이었다.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처럼 보였지만 라오스답게 한참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았다. 애초에 출발시간이 의미가 없었던만큼 언제 출발할지 알 수가 없었다. 라오스 여행을 하면서 정시 출발은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였다.

그렇게 한참 후 드디어 출발한 비엔티안행 버스는 또 다시 산을 넘고 넘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사고가 발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는 비교적 뒤쪽에 앉았는데 맨 뒤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뒤에 있던 사람들은 연기가 난다고 소리를 질렀다. 출발한지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버스는 잠시 정차했고 아저씨는 뒤쪽 에어컨을 만져보더니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뒤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다들 너무 다급하게 "불이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뒤쪽에 있었기에 에어컨에 나오는 새까만 검은 연기와 함께 에어컨의 틈 사이로 시뻘건 불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급해져서 그런지 항의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이제는 불난 버스를 구경하는 것도 잠시 이 버스에 우리가 타고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뒤를 쳐다보더니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앞쪽이야 별로 다급한걸 못 느꼈지만 맨 뒤쪽과 우리들은 다급해지기 시작해서 "빨리 좀 내려요!" 라고 외치며 앞사람을 다그쳤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VIP버스에는 불길이 치솟아서 버스는 정차했고, 기사 아저씨는 물을 부으며 불을 껐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버스의 하단부에 있는 배터리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면 원래 버스에 있던 에어컨과 별도로 이 버스에는 따로 배터리를 설치하고 뒤쪽에 에어컨을 설치해 놓았는데 그 뒤쪽에 있던 에어컨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불이 났던 것이다.

참 별의별 상황을 다 겪는다고 생각했다. 비엔티안으로 출발한지 30분 만에 버스는 길바닥에 누워버렸고, 사람들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짐칸에 있던 배낭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니 무섭다기 보다는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었다.


멀리서는 꼬마 아이들이 신기한 듯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대체 언제 비엔티안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