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라서 어울릴만한 이국적인 관광지가 있다. 아니 어쩌면 조금 뜬금없을지도 모를 곳인데 그곳은 바로 모아이 석상이 있는 선멧세 니치난이었다. 처음 미야자키에 모아이 석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 무척 재미있는 장소라고 여겼다. 칠레 이스터섬에서만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모아이를 일본에서 본다는 것도,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아이 석상을 놓은 곳이 미야자키의 대표적인 관광지라는 것도 신기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 모아이 석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끌리는 장소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모든 짐을 다 챙겨 나온 뒤 바로 미야자키역으로 향했다. 오후에 구마모토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미야자키에서는 서둘러 움직이지 않으면 버스 배차시간이 길어 일정을 제대로 맞추기가 어려웠다. 미야자키역에서 내 배낭을 코인락커에 보관하고, 가고시마를 거쳐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표를 예매했다.
미야자키에서 구마모토로 바로 가는 열차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열차는 없어졌다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없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구마모토로 가려면 꼭 가고시마를 거쳐가야 했다. 대신 가고시마에서 구마모토로 갈 때는 잠깐 신칸센 구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열차는 1시 32분으로 예매했다. 그래야 구마모토에 적당한 시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나왔긴 했지만 선멧세 니치난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거리였으니 서둘러야 했다. 몇 시간 남아있다고 해서 결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몸도 마음도 뛰어다녔다. 우선 미야자키역에서 미야코시티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정확한 버스를 몰라서 항상 사람들에게 물어서 버스를 탔는데 지난번에 탔던 버스 정류장과는 다른 곳을 알려줬다. 미야자키역에서 미야코시티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대체 몇 번인지 어느 버스인지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미야코시티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미야코시티에 도착해서 16번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선멧세 니치난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16번이었는데 문제는 버스가 무지하게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야자키를 벗어나 미야자키 현으로 가는 버스들은 대부분 배차시간이 길었는데 니치난으로 가는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40분을 기다렸던 것 같다. 어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니치난으로 가는 버스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렇게 초조할 정도로 오래 기다린 끝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내가 전날 갔던 아오시마를 지나갔다. 시골마을의 풍경을 벗어나 점점 해안가로 향하고 있었는데 정말 너무 멀었다. 물론 처음에는 언제 도착하는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눈꺼풀이 감겨와 정신없이 졸기 시작했다. 가끔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떠보면 여전히 버스는 조용한 마을을 달리고 있었다.
한 40분쯤 달렸을까? 버스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니치난과 우도신궁으로 가는 버스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어느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아니면 버스를 이용해서 가는 사람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사실 오전에 세운 계획으로는 선멧세 니치난과 우도신궁 두곳을 가보는 것이 목표였다. 어차피 같은 방향에 있었고, 우도신궁과 선멧세 니치난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금방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버스를 1시간 넘게 타면서 자칫하다간 일정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모아이 석상을 먼저 보고 시간이 남으면 우도신궁도 가보자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우도신궁은 커녕 모아이도 제대로 보기 힘들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던 것이다. 게다가 버스 배차시간 때문에 제시간에 이동하기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야코 시티에서 버스를 타고 약 68분 뒤에 선멧세 니치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엉뚱한 장소라서 어디가 모아이 석상이 있는지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버스에 타고 있었던 할머니께서 반대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셨다. 멀리 모아이 석상이 보였다.
바로 옆 바다에서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선멧세 니치난에 도착했다는 기쁨도 잠시 모아이 석상을 보려면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물론 모아이 석상이 해안가나 평지에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겠지만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야 하니 생각만해도 피곤함이 더해졌던 것이다. 그때 작은 트럭을 타고 온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올라타라는 것이었다. 정상까지 태워주겠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난 아주 편안히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이 아저씨는 이 언덕에 있는 과일나무들을 가리켜 알려주기도 했고, 당시 있었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시끌한 한국이 어떠냐는 질문도 했다.
선멧세 니치난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나는 호텔 관광센터에서 할인권을 얻었기 때문에 원래 700엔인 입장권을 500엔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선멧세 니치난에 들어서고 나서야 왜 여기를 버스로 오는 사람이 없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버스로 여기까지 온다는게 오래 걸리기도 하고, 힘들기도 할 뿐더러 버스 배차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개인 차량이나 단체 관광객의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듯 보였다. 그래야 선멧세 니치난의 언덕도 걸어서 가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드디어 선멧세 니치난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힘들긴 힘들구나!
확실히 모아이 석상이 있는 장소이다보니 캐릭터는 물론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꽤 많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어떤 사람의 모아이는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일본 사람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계속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일까?
그래도 유명 관광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조용했다. 관광객은 일본인 관광객 딱 2명이 전부였고, 선멧세 니치난도 안내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모아이 석상을 보러갔다.
잠시 후 정말 멀리서 모아이 석상이 보였던 것이다.
넓은 공터에 모아이 석상이 일렬로 서있었고, 그 뒤에는 석판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사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미 나에게 친숙한 유적지들이 꽤 많이 보였다. 아마도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이 있는 곳이라 이런 컨셉으로 공원을 조성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스터섬에 가본 일이 없어 실제 모아이 석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모아이 석상은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몸집은 좀 더 커보였고, 얼굴은 둥글둥글해 보였다. 7개의 거대한 모아이 석상은 일렬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 크기도 얼굴도 조금씩 달랐다.
언제 이스터섬에 가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미야자키에 와서 모아이 석상을 대신 봤다고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모아이 석상은 칠레 이스터섬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며, 현지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모아이 석상 아래에는 몇 개의 동전이 놓여져 있었다. 아마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는 것과 비슷한 행위가 아닌가 싶은데 동전 사이에서 100원도 볼 수 있었다.
모아이 석상의 얼굴을 올려다 보기도 했고, 뒤로 돌아가 뒷통수를 살펴보기도 했다. 올라가서 만져보는데도 아무런 제약이 없어서 구석구석 살펴보며 구경할 수 있었다. 모아이 석상의 뒤에는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조금 흐리긴 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아서 적당한 날씨였다.
이스터섬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모아이 석상을 여기서 보게 되었는데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멧세 니치난에 관광객이라고는 일본인 2명이 전부였는데 다행히 모아이 석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서 다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아이 석상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일본 여행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칠레 여행을 다녀왔다고 속이면 어떨지 괜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깔끔하게 갖춰진 이 공원은 미야자키 사람들에게는 산책의 장소로도 무척 좋아보였다. 물론 도시와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바다와 모아이 석상을 같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장소라서 가족들이 즐기기에 더 좋아 보였다. 게다가 여기에는 모아이 석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장도 있을 정도로 꽤 넓은 공간이었다.
확실히 선멧세 니치난이라 그런지 모아이 석상으로 보이는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40분이었다. 갑자기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염두해 두지 않았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생각해보니 여기로 오는데만 거의 1시간 10분이 걸렸는데 지금 버스를 타도 겨우 도착할까한 시간이었다. 헐레벌떡 뛰어 내려가 내가 내렸던 장소의 반대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다음 버스는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버스 시간표를 살펴봤다.
'망했다!'
버스 정류장에 있던 시간표를 살펴본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면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배차시간이 1시간 간격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버스는 12시 15분, 그 다음은 13시 25분이었는데 가장 빠른 12시 15분 버스를 타더라도 열차 시간을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우선 12시 15분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앞에 보이던 가게 앞의 자판기로 가서 음료수라도 뽑아 마시기로 했다. 재미있던 것은 음료수를 뽑아 먹으려고 갔던 곳에도 모아이 석상은 있었다. 재미있어할 때가 아니지. 나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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