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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참 많이도 헤매고 다녔다. 사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홍콩의 이정표가 분명 이상했다. 항상 지도를 보면서 잘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덕분에 다리는 아프고, 습한 날씨 탓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 빨리 돌아가서 씻고 싶었다. 그럼에도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길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몸을 맡겼다.

도심을 향해 내려오던 도중 빅토리아 피크(The Peak)의 이정표가 보였다. 앗, 빅토리아 피크라면 그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빅토리아 피크로 향했다.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가는 역에 도착하니 입구에는 과거 운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열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가기 위해 열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가지고 있는 옥토퍼스 카드로 결제가 가능했다.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한 번에 탈 수는 없었다.

열차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이거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탔던 것과 무척 흡사했다. 차이점이라면 페낭에서 탔던 열차는 페낭힐의 주민들을 위한 교통수단이었다는 것과, 빅토리아 피크의 열차는 금방 정상까지 올라갔다.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탈 수밖에 없었다. 창 우측으로 빌딩이 보이자마자 사람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전망대에 오른 것도 아닌데 높은 곳에서 바라본 홍콩의 전망은 시원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내부는 쇼핑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더 올라갈 수 있었다. 쇼핑에는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올라갔다.



바로 옆 창문으로 홍콩의 멋진 전망이 펼쳐져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상당히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이 나왔다. 그냥 쳐다보는 것에만 만족하고 마지막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순간 입장료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마지막 장소는 스카이 테라스라 불리는 전망대였는데 25홍콩달러(약 4000원)를 내야 했다. 근데 나는 이 순간에도 25홍콩달러를 내고 올라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25홍콩달러라... 들어갈까? 말까? 기껏 전망대를 들어가는데 25홍콩달러씩이나 내야돼?'

이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내 스스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25홍콩달러면 별로 비싼 것도 아니다. 입구에서 옥토퍼스 카드를 보여주며 이걸로도 입장이 가능하냐고 묻자 입구에 서있던 안내원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홍콩에 있는 동안 옥토퍼스 카드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스카이 테라스에 올라오니 그간 더위에 지친 나에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고, 더불어 넓은 공간에서 경치를 바라볼 수 있어 공간적인 시원함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스카이 테라스라는 이름처럼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멋진 경치였다.



멀리 보이는 IFC빌딩(중앙에 가장 높은 빌딩)이나 중국은행 타워China Bank Tower(맨 오른쪽 빌딩)가 독특한 외형 탓인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스카이 테라스에서는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이런 멋진 장면을 배경으로 해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항상 이럴 때는 혼자 여행하는 게 무척 외롭고 고달프다.



스카이 테라스 뒤로 가보니 빼곡히 늘어선 건물이 보여 정면의 시원함과는 정반대였다. 근데 저기 위에 있는 건물들은 뭘까? 설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일까?



스카이 테라스까지 와서 사진을 안 찍을 수는 없어서 셀카도 찍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찍어달라고 했는데 죄다 이상하게 나왔다.

홍콩의 날씨는 원래 덥기도 하지만 이날은 비가 오기 직전의 습한 날씨 탓에 무척이나 끈적였다. 캠코더를 들고서 사진을 찍는 내 손도 끈적거릴 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기름기가 흘러넘칠 정도였다.



마치 흐르는 강처럼 보이던 홍콩의 바다와 그 옆에 어우러진 빌딩들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이게 그 유명한 홍콩의 끝내주는 경치구나!


그렇게 꽤 오랜 시간동안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있을 때 모녀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목소리 때문에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주머니는 사진 찍는 게 서투르신 듯 해서 내가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살짝 놀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찍어준다는데 마다하시지는 않았고, 혼자인 나를 위해 사진을 찍어주셨다.



캠코더가 열을 받아서 그런지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나는 남들처럼 많은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대신 여기 스카이 테라스에서 '끝내주는 경치'를 질리도록 감상했다. 그것도 몇 시간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