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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던 쉐다공 파고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아저씨가 나를 향해 접근했다. 키는 조금 작은 편이었고, 웃음기를 띈 얼굴로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는데 단번에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봤던 것이다. 보통 미얀마에서 나를 보며 거의 대부분 일본인이냐고 물어봤던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이례적이긴 했다. (심지어 일본 사람도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어봤다)

그냥 사진 찍어준다고 하길래 혼자였던 나로써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침 쉐다공 파고다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싶었을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위치에 따라와서는 사진도 찍어주면서 차 한 잔 마시자는 제안을 했는데 솔직히 조금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는 대체 왜 이렇게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친절한거지? 혹시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불연듯 과거 어느 나라에서 여행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 하면서 음료에 약을 타고 돈을 훔쳐갔던 사건이 떠올랐다.

분명 친절해 보이는 아저씨였지만 난 혼자였고, 여기는 나에게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던 미얀마의 양곤이었다. 내가 이런 사실을 넌지시 말하자 이 아저씨는 가까운 곳이고, 가격이 싼 차를 마시자는 것이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슬리퍼를 집어 들고 이 아저씨를 따라 쉐다공 파고다의 아래로 내려갔다. 쉐다공 파고다의 바로 앞에 있던 거리에 몇 개의 노점이 형성이 되어있었는데 이 아저씨는 그 중 한 테이블에 나를 앉히고는 이 곳이 자신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안심도 되면서 너무 섣부른 의심을 한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물론 아무리 안전한 나라라고 해도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할 필요는 있다)


차를 한잔 시키고는 주변을 둘러 보는데 이 곳에서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첫 날에 거의 커피 같았던 차를 마셨던게 생각나서 이번에는 꼭 러펫예로 달라고 강조했다.


가지고 온 차는 커피믹스처럼 생긴 러펫예였다. 뜨거운 물에 러펫예를 타고 숟가락으로 저은 뒤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이 아저씨를 비롯해 그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는 나를 반응을 살폈다. 게다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주변에서 웅성대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어때?”
“괜찮은데요?”

홍차에 우유를 섞은 밀크티와 매우 흡사했다. 내 짧은 지식으로 러펫예의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미얀마를 오랜 기간 지배했던 영국의 영향이거나 그 때 넘어왔던 인도인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자리 앞에 앉아있던 아이가 빤히 나를 쳐다봐서 사진을 찍는데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와서 웃어보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부끄러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이 곳은 황금빛이 나는 쉐다공 파고다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 자리를 비록 거리 노점의 목욕탕 의자 같은 곳이었지만 황금사원 아래에서 맛보는 차는 나쁘지 않았다.

내친김에 전 날에 실패했던 미얀마 음식을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어나서 음식을 살펴보니 딱히 내가 먹을만한 음식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면요리를 손으로 가리킨 후에 자리에 앉았는데 잠시 뒤에 직접 손으로 비빈 면요리가 나왔다.


라면이나 국수처럼 면을 끓여서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나로써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천천히 면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 보았다. 알 수 없는 냄새와 맛이 나를 사로잡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최대한 먹어보기는 했지만 약간 비린듯한 냄새 때문에 먹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많이 먹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맛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최대한 먹어 반 정도까지 먹었다. 그리고는 왜 안 먹냐는 물음에 머쓱해 하면서 방금 전에 저녁을 많이 먹어서 배불러서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고 얘기를 했다.

미얀마는 영어가 통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하지는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나 주요 관광지에서는 영어 사용에 지장이 없을 정도였지 일반 사람들과 만나서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꼭 영어로만 대화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책을 펼쳐보이고는 더듬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쩌노... 꼬레야 루묘바(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뛔이 야다 원따바대(만나서 반갑습니다)"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이분들은 정말 친절했던 미얀마인이었고, 나는 그 현지인들과 만나고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 역시 너무 즐거웠다. 나는 갑자기 저녁 먹었을 때 레스토랑에서 봤던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싶어졌다. 마치 그 개념없는 한국인 아저씨들은 진짜 한국인이 아니라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을 살펴 보셨다. 이제는 의심했던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어린 아이들도 몇 명이 다가와서는 TV에서 본 한국어로 나에게 "미안해", "오빠"라고 말을 했다. 미얀마에서는 더빙되지 않은 한국 드라마가 항상 방영되고 있기 때문에 언어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 덕분이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다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내 옆에 계신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연신 "뷰티풀~ 뷰티풀"이라고 칭찬을 해줬다. 나는 차 한 잔과 음식의 가격이었던 800짯(약 800원)을 내고, 아저씨의 배웅에 따라 택시에 올라탔다.

술레 파고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지만 바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지 않고 주변을 거닐었다.


너무나 어두컴컴한 도시를 걸었지만 그리고 외국인이라고는 나뿐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분은 상당히 좋았다. 태국에서 지루하게 느껴졌던 여행이 미얀마에서는 즐거움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여행 여건은 최악에 가까웠던 미얀마였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갈증에 물 한 병 사들고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게스트하우스 문 앞에 있는 TV에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시청하고 있었는데 한국말이 들렸다. 진짜 너무 신기했다. 나도 살짝 앉아서 시청을 했는데 전혀 모르는 드라마였다. 간간히 자막으로 나타났던 '최강 울엄마'가 드라마 제목인듯 했다.

같이 TV를 조금 보다가 나는 씻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루 일과가 정말 길었다. 아침부터 보족시장을 찾아가 돈을 환전하고, 깐또지 호수와 쉐다공 파고다를 걸어서 갔다. 그리고 차욱타지 파고다를 갔다가 써야산 로드까지 걸어서 가서 개념 없는 한국인을 발견한 뒤 기분이 상해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쉐다공 파고다에서 만났던 아저씨의 식구들로 인해서 미얀마가 괜히 미소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던 계기가 되었다.

딱 하루 경험했던 미얀마였지만 앞으로의 일정이 점점 기대가 되었다. 내일은 어디로 갈지 가이드북을 뒤치닥거리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