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진 찍어준다고 하길래 혼자였던 나로써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침 쉐다공 파고다의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싶었을 정도였다.
분명 친절해 보이는 아저씨였지만 난 혼자였고, 여기는 나에게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던 미얀마의 양곤이었다. 내가 이런 사실을 넌지시 말하자 이 아저씨는 가까운 곳이고, 가격이 싼 차를 마시자는 것이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슬리퍼를 집어 들고 이 아저씨를 따라 쉐다공 파고다의 아래로 내려갔다. 쉐다공 파고다의 바로 앞에 있던 거리에 몇 개의 노점이 형성이 되어있었는데 이 아저씨는 그 중 한 테이블에 나를 앉히고는 이 곳이 자신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안심도 되면서 너무 섣부른 의심을 한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물론 아무리 안전한 나라라고 해도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할 필요는 있다)
“어때?”
“괜찮은데요?”
홍차에 우유를 섞은 밀크티와 매우 흡사했다. 내 짧은 지식으로 러펫예의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미얀마를 오랜 기간 지배했던 영국의 영향이거나 그 때 넘어왔던 인도인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친김에 전 날에 실패했던 미얀마 음식을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어나서 음식을 살펴보니 딱히 내가 먹을만한 음식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면요리를 손으로 가리킨 후에 자리에 앉았는데 잠시 뒤에 직접 손으로 비빈 면요리가 나왔다.
하지만 내가 많이 먹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맛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최대한 먹어 반 정도까지 먹었다. 그리고는 왜 안 먹냐는 물음에 머쓱해 하면서 방금 전에 저녁을 많이 먹어서 배불러서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고 얘기를 했다.
미얀마는 영어가 통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하지는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나 주요 관광지에서는 영어 사용에 지장이 없을 정도였지 일반 사람들과 만나서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꼭 영어로만 대화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책을 펼쳐보이고는 더듬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쩌노... 꼬레야 루묘바(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뛔이 야다 원따바대(만나서 반갑습니다)"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이분들은 정말 친절했던 미얀마인이었고, 나는 그 현지인들과 만나고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 역시 너무 즐거웠다. 나는 갑자기 저녁 먹었을 때 레스토랑에서 봤던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싶어졌다. 마치 그 개념없는 한국인 아저씨들은 진짜 한국인이 아니라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몇 명이 다가와서는 TV에서 본 한국어로 나에게 "미안해", "오빠"라고 말을 했다. 미얀마에서는 더빙되지 않은 한국 드라마가 항상 방영되고 있기 때문에 언어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 덕분이다.
술레 파고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지만 바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지 않고 주변을 거닐었다.
같이 TV를 조금 보다가 나는 씻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루 일과가 정말 길었다. 아침부터 보족시장을 찾아가 돈을 환전하고, 깐또지 호수와 쉐다공 파고다를 걸어서 갔다. 그리고 차욱타지 파고다를 갔다가 써야산 로드까지 걸어서 가서 개념 없는 한국인을 발견한 뒤 기분이 상해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쉐다공 파고다에서 만났던 아저씨의 식구들로 인해서 미얀마가 괜히 미소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던 계기가 되었다.
딱 하루 경험했던 미얀마였지만 앞으로의 일정이 점점 기대가 되었다. 내일은 어디로 갈지 가이드북을 뒤치닥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반응형
'지난 여행기 > 밍글라바! 아름다운 미얀마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타터웅 파고다에서 만난 아저씨의 정체 (31) | 2010.11.19 |
---|---|
술레 파고다에서 알게된 나의 동물 (28) | 2010.11.19 |
쉐다공 파고다의 환상적인 황금빛 야경 (35) | 2010.11.19 |
미얀마에서 본 개념 없는 한국인 (92) | 2010.11.19 |
거대한 와불상이 있던 차욱타지 파고다 (52) | 2010.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