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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인디오 시장을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챙겼다. 오타발로에서 너무 짧게 머무르긴 했지만 심심했던 터라 떠남이 아주 아쉽진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빨리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편이 낫다. 

 

묵직한 배낭을 메고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버스터미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시장은 더 북적이는 듯 보였지만 이미 충분히 구경했기에 빠르게 지나쳤다.

 

콜롬비아로 가는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뚤칸(Tulcan)이라는 도시로 가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버스터미널에서는 뚤칸 행 버스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걷다 보니 도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어디까지 가야 버스를 탈 수 있나 했더니 오타발로를 관통하는 E35 도로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직감적으로 여기서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걱정하지 말라며 여기서 타는 거라고 알려줬다.

 

잠시 후 그들의 말처럼 뚤칸 행 버스가 보였다. 버스에 타자마자 피곤함에 절로 눈이 감겼다. 뚤칸까지는 약 3시간이 걸렸다. 

 

뚤칸에 도착하자마자 에콰도르 사람들과 정신없이 섞여서 택시를 합승했다. 이미 이런 일에는 익숙한 듯 보이는 아저씨를 따라갔던 것인데 국경까지는 3.5달러였으니 3명이 나눠 내면 되니까 나쁠 건 없었다.

 

드디어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향했다. 우루과이를 제외하면 남미에서 가장 짧게 머문 에콰도르였지만 최대 관광지인 갈라파고스 섬을 가지 않아 크게 아쉬움이 남진 않았다. 남미 최남단에서부터 비로소 가장 북쪽에 있는 나라, 콜롬비아에 가게 된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 콜롬비아에서 3년 간의 길고 길었던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지 않을까?

 

에콰도르 국경을 넘으면 콜롬비아의 국경 도시인 이피알레스(Ipiales)가 나온다. 다만 시내까지는 거리가 있어 걸어서 가기엔 무리였고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는 3달러였는데 국경이라 그런지 에콰도르 동전인 센타보(에콰도르는 미국 달러를 사용하지만 동전은 에콰도르 동전인 센타보와 혼용하고 있다)를 받았다. 보통은 국경 도시엔 볼거리가 없는 편인데 이피알레스에는 협곡에 위치한 화려한 대성당이 유명한 편이고, 많은 여행자들이 필수로 거쳐간다. 이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던 나는 곧장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칼리(Cali) 행 야간 버스를 탔다.

 

꼬박 12시간을 달려 새벽 6시 40분에 칼리(발음은 깔리)에 도착했다. 페루나 에콰도르에 비하면 콜롬비아는 생각보다 정돈되고 깔끔한 느낌을 받았다. 마침 칠레에서 여행을 같이 했던 종원이형과 연락이 닿아 칼리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곧장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지역으로 이동했다.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잠깐 쉬다가 밖으로 나갔다. 칼리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니 일단 근처에 있던 시장을 가볍게 둘러봤다.

 

남미의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규모가 꽤 컸다. 잠깐 돌아보다 먹거리가 많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그 자리에 앉아서 하나 주문했다. 페루에서 많이 먹었던 세비체와는 약간 다른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새콤한 새우 세비체였다.

 

특이하게도 과자 위에 올려 먹으라고 했다.

 

시장에서 나와 걷다 보니 반데라스 공원(Parque de las Banderas)이 보였다. 여기는 가족 단위로 나와 휴식을 취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로 여유가 느껴졌다. 분수대 앞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분수대 근처에 작은 노점이 몇 군데 자리 잡고 있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역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달콤한 간식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얼음을 직접 갈아 알록달록 색상의 시럽을 넣고 그 위에 과자를 곁들어 주는 옛날 스타일의 빙수였다. 

 

빙수를 하나 들고 있을 때 공원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가 다가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꼬레아 델 수르"라고 말하니 껄껄 웃으며 콜롬비아에 와서 너무 반갑다며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사진도 같이 찍자고 했다. 콜롬비아 첫 느낌이 무척 좋았다.

 

칼리의 밤이 궁금해 구경하러 나갔다. 당시에는 콜롬비아에서 활동하는 마약 카르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나 칼리는 콜롬비아 내에서 메데진(Medellin)과 더불어 마약으로 무척 유명한 곳이라 주의하는 게 좋다. 게다가 소매치기나 강도를 만난 여행자도 있어 치안도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

 

시끄러운 대로변을 따라 한참을 걸었더니 축제의 현장처럼 환하고 북적이는 곳이 나왔다.

 

군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났지만 일단 더 걸었다.

 

칼리 시청으로 향하는 길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했고,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아마 크리스마스 시기에 맞춰 거리에 다양한 조형물과 조명을 설치한 것 같은데 늦은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즐거워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사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뭐가 뭔지도 모르지만 일단 앞으로 걸었다.

 

칼리가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인 줄 몰랐다. 아니,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해야 하는 게 더 맞으려나.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는 건 콜롬비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인파에 휩쓸려 걷게 되면서 예쁘게 꾸며 놓은 조명이나 장식보다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길의 끝에는 커다란 별 조형물이 있었다.

 

조명에 밝게 빛나는 에르미타 교회가 눈에 띄었다.

 

교회 옆 다리를 통해 칼리 강을 건너 가면 시청이 나오는데 시청 앞 넓은 공원 역시 여러 색깔의 조명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보니 뿌연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노점이 나왔다. 이미 주변에 앉을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스페인식 소시지인 초리소(Chorizo)은 남미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야시장에 온 것처럼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많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럴 때는 목마를 탄 꼬마가 부럽다.

 

남들처럼 사진을 몇 장 찍다가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마치 축제의 현장에 있다 온 것처럼 정신이 없었는데 그 나름대로 연말 분위기가 느껴져 즐거웠다.

 

마침 호스텔이 있던 동네도 집집마다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을 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호스텔에서 지내는 동안 스텝들과 친해져 요리를 하면 같이 먹자고 하곤 했다. 

 

낮에 보는 칼리는 어떤 모습일까?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봤다.

 

도로 바로 옆에 노점들로 가득해 도심의 중심이라고 하기엔 시장에 가까워 보였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거리를 걸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교회(Iglesia de San Francisco)와 광장이 나왔다. 

 

또 다른 광장(Plaza de Cayzedo) 주변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어 흥미로웠다.

 

지난밤 북적이던 거리는 무척 한산해 보였다. 

 

밤에는 그렇게 화려했었는데. 

 

점심은 근처 저렴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해결했다. 

 

외국인의 등장이 신기했던 것인지 어디에서 왔냐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엄청 반가워하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하더라.

 

여행자들에게 칼리는 그리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다. 그런데 딱 하나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살사였다. 종원이형도 갑자기 춤바람이 났는지 살사 배우느라 칼리에서만 몇 주 동안 지냈다고 한다. 칼리는 춤바람 나기 딱 좋은 곳이었다.

 

대체 살사가 뭔지 궁금해서 학원을 가봤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은 흥미로웠지만 아주 기초적인 스텝과 턴을 배우는 것조차도 몸치인 내가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저 춤꾼들의 현란한 발놀림에 감탄만 하다 왔다.

 

칼리에서는 동네를 돌아보며 시간을 때우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어느 날은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앞다리 살을 사다가 수육을 했다. 잡내를 없애 줄 수 있는 양파, 마늘, 생강 등을 넣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커피를 된장 대신 넣어봤다.  

 

마침 근처에 칬던 호스텔 스텝과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었는데 같이 먹자고 물어보니 당연히 좋다고 자리에 앉았다.

 

냄새가 날까 봐 커피 가루를 일부러 많이 넣었더니 거뭇했다.

 

쌈장이나 김치가 없어 아쉽긴 했지만 다행히 고기가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워 괜찮았다. 게다가 외국인 친구들은 너무 맛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나름 성공했나?

 

여행처럼, 일상처럼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벌써 8일이 지났다.

 

맥주도 마실 겸 살사 바에도 가봤다. 그냥 흔한 동네 술집처럼 보였는데 음악이 흘러나오자 너나 할 거 없이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흥겨운 음악에 아무나 붙잡고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과연 살사의 도시답다. 칼리에 오면 왜 춤바람이 날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