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콰도르를 여행한다면 거의 무조건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올릴 만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나는 부족한 시간, 돈으로 인해 포기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린 오타발로(Otavalo)였다. 

 

키토에서 오타발로행 버스를 타려면 북쪽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 했다. 도시 구조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라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지역별 버스 회사가 엄청나게 많은지 간판이 많이 보이고, 직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상반신만 쭉 내밀고 영업을 하고 있다.

 

버스 회사는 트란스 오타발로(Trans Otavalo)였고 2.5달러였다. 오타발로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오타발로에 도착해 일단 숙소로 향했다. 빈센트가 오타발로에 있을 때 지냈던 곳이라며 알려줬는데 호텔 예약사이트에는 나오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보니 빈센트가 왜 여기로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10달러짜리 저렴한 숙소인데 침대가 3개나 놓인 커다란 방을 나 혼자 썼다. 사람이 많으면 도미토리로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도 없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뒤에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오타발로는 그리 북적이는 도시가 아닌가 보다. 

 

딱히 오타발로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일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동네의 중심지로 보이는 볼리바르 공원(Parque Simón Bolivar)이 나왔다. 남미의 큰 도시에서 봤던 거대한 광장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공원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당이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근처에 있는 동네 끝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만 돼지 머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미에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으면 시장을 찾았다. 오타발로 시장에도 허름해 보이는 현지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점심을 먹은 터라 메뉴만 구경했다.

 

정육점과 야채 코너가 있다.

 

산딸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0.5달러에 한 주먹 샀다.

 

보통 시장이 가장 북적이고 그래서 남미를 여행할 때는 소매치기 위험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오타발로 시장은 무슨 일인지 북적이는 느낌 없이 한적했다. 평소 오타발로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공원으로 돌아오니 아까는 못 봤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계절이 반대였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조금은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네를 조금 돌아봤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타발로에 대해 몇 번 들었던 적이 있어 나름 관광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콰도르의 전통 옷이라고 해야 할지 돌아다니면 자주 보게 되는데 이렇게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튼 날씬한 사람이 입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숙소에서 쉬다가 배고픔과 무료함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진 공원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근처에 가니 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심심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아 들어가 가장 만만한 '뽀요'를 달라고 했다. 남미에서는 워낙 치킨을 많이 먹으니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익힌 스페인어는 '뽀요'가 아니었을까.

 

다음날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타발로는 살아있는 가축을 사고파는 '가축시장'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열리는 날과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축시장이 열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디오들의 일반 시장도 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시장이 열린다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로 재래시장이 있었다. 

 

공터에는 벌써 노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몇 군데는 분주하게 준비 중이었다. 

 

오타발로에 온 이후 한 번도 여기가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인디오 재래시장에서 여행자들이 흥정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원주민(인디오) 비율이 유난히 높은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오타발로는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인디오 마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인디오들의 전통적인 의상이나 먹거리, 공예품을 쉽게 볼 수 있는 편인데 그래서 이런 시장이 열리게 된 것 같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독특한 무늬나 그림이 있어 기념품으로는 딱이다. 단지 여행이 아직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는 나에겐 이런 기념품은 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가방이 너무 사고 싶어 졌다. 그런데 가방의 모양은 다 비슷해 보여도 색깔과 패턴이 워낙 다양해 마음에 드는 걸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방만 구경했는데도 금방 시간이 갔다. 결국 가방을 사버렸다.

 

남미의 원주민들이 많은 볼리비아부터 북쪽으로 올라오니 직접 손으로 짠 옷이나 스웨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가격을 물어보면 그리 싸지 않다. 흥정을 더 해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루 쿠스코가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커다란 기념품 가게로 보면 된다. 

 

인디오 시장은 이제 막 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인디오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많다. 돌아다니다가 인디오가 그려진 냉장고 자석을 잠깐 구경만 했을 뿐인데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1달러를 깎아준다고 강매 아닌 강매를 당했다. 그래도 에콰도르 최고봉인 침보라소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오의 모습을 누군가가 직접 그린 거라 꽤 마음에 들었다.

 

어제 갔던 현지 시장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시장이다.

 

에콰도르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간다면 여기서 카펫을 하나 사고 싶다.

 

가방도 사고, 자석도 샀으니 더이상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적당히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나왔다. 오타발로 시장이 남미 최대 인디오 시장이라고 하는데 낮에 조금 더 북적인다면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념품 구경하는 재미로 가보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돼지머리가 있는 식당을 보고 곧장 들어가 봤다. 주문을 하기 전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르나도(Hornado)라고 한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말이다. 커다란 돼지머리가 귀엽게 보이까지 했다.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퍼서 담아줬다. 3달러였다. 고기는 보쌈을 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돼지 껍데기가 있었고, 상큼한 양파 샐러드가 있어 기름진 돼지고기와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