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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현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리 유명한 동네는 아니니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뉴스도 마찬가지다. 예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도 그랬지만(웨스트뱅크가 서쪽에 있는 줄 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니 그냥 포격에 탱크가 파괴됐다는 식의 수준 낮은 기사만 양산할 뿐이다.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지역이다. 그대로 읽기도 참 힘든 이 땅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내에 있는 일명 '미승인국'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는 분리독립성향이 매우 강한 곳이다. 아제르바이잔 영토이긴 하나 다른 나라 분리주의가 짙은 지역과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이미 1991년에 독립을 선언했고, 아제르바이잔이 아닌 아르메니아를 통해서만 입국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가 아무리 분리독립을 원해도 아직은 영국의 일부이고 자유로이 왕래가 가능하나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영토임에도 국경이 그어진 셈이다.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은 독립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수도 스테파나케르트

 

스테파나케르트 시청

 

아무튼 이 나고르노카라바흐가 핵심이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금 전쟁은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분리주의 움직임으로 인한 문제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직접적인 전쟁은 아니라고 말을 하던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아도 사실 같은 나라나 다름없다. 아르메니아를 통해서만 입국할 수 있고,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아르메니아 군대가 들어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니까. 심지어 ATM에서 돈을 인출하면 아르메니아 드람이 나온다.

그러니까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이라고 해도 결국 아르메니아 군대가 참전할 수밖에 없다. 단순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는 자국의 문제가 아닌 국가 간의 문제다.

 

원인

기독교(정교회)와 이슬람으로 서로 종교가 다르지만 일단 종교 문제는 아니다. 이 지역은 아주 오래전부터 분쟁이 있었고, 가장 최근에 문제가 된 것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스탈린의 결정이 주요하다고 본다.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결정하면서 분리주의 움직임을 강하게 키웠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갈등이 증폭되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역사적이나 소비에트 시절에도 아르메니아 영토로 결의했다는 근거로 독립과 아르메니아와 병합을 주장하고,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연방의 결정과 현재도 내 땅인데 누구 마음대로? 라며 무력 다툼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스테파나케르트에 있는 전쟁박물관

 

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직후 갈등이 폭발했다. 1991년 독립 후, 1992~1994년 간 두 나라는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많은 병력, 그리고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살고 있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피난을 가야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제르바이잔의 국력이 더 강해 보이는데 상황은 아르메니아가 더 유리해졌다. 전투에서 계속되는 패배에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바뀌고, 더 많은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나고르노카라바흐 일대는 아르메니아가 점령했다.

아마도 아제르바이잔 입장에서는 험준한 산악지대라서 점령이 쉽지 않을 것이고, 아르메니아 군대가 실전 경험이 더 풍부했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대인처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주의가 각 국의 로비(예를 들면 미국)로 이어지고, 주변국들이 약간이나마 아르메니아를 더 지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정전이 되었기 때문에 누가 승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전쟁의 결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국제법 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지만 실효지배는 아르메니아가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참혹한 전쟁의 흔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아그담

 

모든 것이 파괴된 도시

 

아제르바이잔의 입장

아제르바이잔은 자기네 땅인데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아르메니아를 향해 경고하는 중이다. 아무튼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수복해야 할 영토이자 학살을 자행한 아르메니아 실상을 알리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92~94년 전쟁 때는 오히려 영토를 빼앗겼으니. 

 

아르메니아의 입장

역사적인 이유로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살고 있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당해 터키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고, 아제르바이잔에게도 학살을 당했다며 비난한다. 

지금은 작은 나라로 볼폼이 없지만 예전에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한 나라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들이 노아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터키에 있는 아라랏 산(대홍수가 났을 때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고 하는 곳)을 무척 신성하게 여긴다. 아르메니아에서 아라랏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아라랏 산이 보인다

 

터키의 입장

흔히 한국은 터키를 형제의 나라로 알고 있는데 터키 사람들이 생각하는 형제의 나라는 아제르바이잔이다. 터키는 아제르바이잔 및 아제르바이잔의 자치 주인 나흐치반에 개입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러시아의 입장

캅카스 지역은 모두가 친 서방을 표방하는 곳임에도 러시아의 입김에 수그러 들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전쟁에 개입한 적도 많고, 군대를 주둔하기도 한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경우는 중립에 가깝지만 방관자는 아니다.

 

이란의 입장

이란의 북서쪽은 일명 '남아제르바이잔'이라고 불리며 아제르바이잔 전체 인구와 맞먹는 8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란 전체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인은 약 1500만 명. 이처럼 많은 인구가 이란에 거주하고 있고, 특히 남아제르바이잔의 경우 강하진 않지만 간혹 분리주의 움직임이 있어 이란의 신경을 건드린다. 이란은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이슬람, 심지어 비주류인 시아파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은근히 아르메니아를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입장

친러 국가에 가까운 아르메니아지만 놀랍게도 92~94년 전쟁 당시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편이었다. 국제 사회에서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관련 미국의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편이고, 서서히 친미 성향에 가까워진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 때문인지 이번에는 어느 한쪽만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행

당연하지만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국경은 닫혀 있었다. 더불어 아르메니아에서 직접 터키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내가 여행할 당시에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한 후 조지아를 거쳐 아르메니아로 들어갔다. 아르메니아를 여행한 후 아제르바이잔 입국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아제르바이잔 여행 후 아르메니아 입국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르메니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여행했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그야말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미승인국이다. 입국한 뒤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 있는 외교부에 가서 비자를 신청했다.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에 열악한 환경이 더해져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항상 만나 기억에 남는다. 부디 다음에는 캅카스의 화약고가 아닌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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