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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시마 끝에 있던 치고가후치까지 봤으니 이제는 가마쿠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가마쿠라로 이동한 뒤 다시 나리타 공항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니 그닥 여유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난 한 곳을 더 들렸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장소, 이름하여 ‘용연의 종’이었다.


특별한 무언가 있을까 싶어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볼거리는 없었다. 언덕 중간지점에 작은 종이 하나 있던 게 전부였다. 그나마 수많은 자물쇠가 매달려있는 모습이 조금 특별해 보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용연의 종은 연인이 함께 종을 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에 유명한데 이 풍경만 보면 자물쇠를 매달아야 사랑이 이뤄지는 것 같다.


남산에도 자물쇠가 엄청나게 많은데 이는 일본에서 유래된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니면 자물쇠는 만국 공통의 상징물일까?


용연의 종 앞에는 친절하게도 카메라 스탠드가 있었다. 아마도 커플이 오붓하게 용연의 종을 붙잡고 사진을 찍을 때를 위해서 설치한 모양이다. 둘이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부탁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용연의 종을 뒤로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목을 끄는 상점이 많았다. 여러 상점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섬이다 보니 해산물 꼬치가 눈에 띄었다. 하나 먹어보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운 크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해산물 꼬치 대신 양갱 파는 곳에서 멈췄다. 처음에는 뭔지 몰라 호기심에 쳐다보기만 했다. 나중에야 모양을 보고 양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선물용으로 몇 개 사가지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망설이는 나에게 양갱을 작게 썰어서 맛보게 해줬는데 난 당연히 공짜일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계산을 해보니 100엔을 더 내야했다. 양갱 작은 덩어리 하나에 참 매정해 보였다.


아무도 없던 아침과 달리 좁은 골목길에는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오전에 왔던 길을 따라 계속 걸었더니 에노시마에서 처음 마주했던 헤노미야 신사로 돌아왔다.


이제는 좁은 골목길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중심이 되는 골목길에서 유난히 인기 있던 가게가 있었으니 바로 커다란 쥐포를 파는 곳이었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압착을 한 쥐포를 파는데 그 크기가 사람 얼굴보다 더 크고, 오징어나 바다가재 모양이 있어 먹는 재미가 있어 보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그냥 지나쳤지만 맛은 ‘꾸이맨’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에노시마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너무 상업화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런 것조차 하나의 볼거리로 제공된 셈이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경치를 걸으면서 돌아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침부터 걸었더니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게다가 방금 섬의 끝에서부터 힘겹게 걸어왔으니 후식으로 망고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망고와 바닐라 맛이 섞인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렇게 난 아이스크림을 홀짝홀짝 먹으면서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가면서 본 후지산이 정말 가깝게 느껴졌다. 원래는 곧바로 가마쿠라로 가야하지만, 다리 옆에 시원하게 펼쳐진 해변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해변을 걷고 싶어 곧장 달려갔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에서 무언가 내 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에노시마 하늘을 맴맴 돌던 매가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달려드는 것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주머니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짝 웃기만 했다. 난 얼른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렸다. 후덜덜. 정말 무서웠다.


이 녀석들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에노시마 해변에는 매가 날아다녀 먹을 것을 들고 오지 말라는 경고판도 있다고 한다. 나에겐 왜 경고판이 안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추운 겨울인데도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여름이 되면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까지 늘어 정말 붐빌 것 같다.


검은색 모래사장이라 좀 특이했다. 여름에 온 해변이 아니라서 좀 아쉽긴 하지만, 나름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모래사장을 거닐며 사람 구경, 바다구경 하는 것으로 에노시마 여행을 마무리했다. 바로 이곳이 만화 <슬램덩크>의 마지막 배경지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해변에 앉아 소연이의 편지를 읽던 강백호가 이 근방에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