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마카오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처음 지도를 봤을 때는 넓게 퍼져있는 관광지를 어떻게 돌아보나 했는데 사실 걸어서도 거의 대부분의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마카오에서 본격적으로 돌아다닌 때가 점심 이후로 어쩌면 조금 늦은 시각부터 돌아다녔는데 그럼에도 충분했다.



로우 카우 저택(Lou Kau Mansion)이라고 하는데 1889년에 건설된 중국 상인의 집이라고 한다. 마카오는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고 할 정도로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득했는데 이 로우 카우 저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냥 내 느낌으로는 오래된 집이라는 것 밖에 모르겠다.



마카오 구 시가지를 걷다 보면 뭐든지 다 유적지 같아 보였다.



세나도 광장을 지나면 관광객들이 무척 많다. 이 근처에 유명 관광지가 특히 많았는데 사실 지도가 없더라도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가 되어 있어 찾기에 어렵지 않다. 또 각 유적지마다 멀지 않았다는 게 무척 좋았다.



마카오는 포르투갈에 의해 400년이 넘는 동안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동서 문화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카오에서는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오래된 성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역시 포르투갈의 영향 때문이다.



대성당(The Cathedral)을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다. 어쩐지 태국에서 동네방네에 널려있는 사원처럼 느껴졌는데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성당에 갔음에도 사진은 거의 찍지도 않았다. 나는 재빨리 성당을 뒤로 하고, 가장 큰 볼거리인 성 바울 성당의 유적으로 향했다.



마카오는 정말 화려한 홍콩과는 달리 오래 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 바울 성당으로 가기 위해 다시 삼거리로 나왔고,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지나가다가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이용해 무언가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당시 나는 호주에 있었기 때문에 '꽃보다 남자'를 전혀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이 드라마 촬영을 마카오에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명해진 가게인가 본데 나는 신기하다며 잠시 사진만 보고 바로 지나쳐버렸다.



북적대는 마카오의 거리에 접어들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들고 시식해보라고 주고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먹기는 했는데 중국식의 전통 과자인 듯 텁텁한 느낌이 들었다. 공짜로 주면서 가게 안에 들어와서 구경 좀 하고 가라는 식이었는데 신기한 게 많이 보여서 살 마음은 전혀 없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곳에는 말린 고기 가게들이 보였는데 생김새는 딱 육포였다. 종업원이 나에게 고기 조각을 줬는데 육포처럼 딱딱하지 않고 상당히 부드러웠다. 냠냠 먹으면서 살짝 구경해 주는 척 하다가 바로 나왔다. 맛있긴 했는데 이런 걸 살 돈은 없었다.



이 거리를 지나자마자 널찍한 광장이 나왔는데 저 멀리 짠하고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이 보였다.



성 바울 성당은 매우 독특한 건축물이다. 성 바울 성당은 1580년에 건설이 되어 1595년, 1601년 2차례의 훼손과 1835년 화재로 인해 정문과 그 앞 계단을 남긴 채 전부 소실되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다. 오래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융합된 형태의 정문, 그리고 화재로 인해 벽만 남아있어 마카오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이 멋진 건축물에 사로잡혀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바라봤는데 사실은 성 바울 성당의 유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고 싶었다. 여기도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서 사람은 많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제대로 나온 사진은 거의 없었다. 혼자 여행할 때 가장 힘든 점이라면 바로 사진 찍는 순간일 것이다.



마카오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아까 관광안내센터에서 가지고 온 무료 안내서 표지에도 이 성 바울 성당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고 근처에서 있던 커플에게 다가갔다. 서로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살짝 놀라기도 했는데 두 분은 내게 혼자서 여행하고 있냐고 물어왔다. 혼자서 여행하는지라 사진 찍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셨다. DSLR을 가지고 있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잘 찍는 분이신거 같았다.



성 바울 성당을 배경으로 내 예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역시 사진은 한국인이 가장 잘 찍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분들이 사진 찍어주기 전까지 3명의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전부 실패작이었다.



나는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 성 바울 성당의 바로 앞으로 갔다. 어쩜 이렇게 벽만 앙상하게 남아버렸을까? 나는 물끄러미 성 바울 성당을 올려다봤다.



성당의 정문을 지나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는 공터만 나온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영화 세트장 같은 벽만 보였다. 마치 예전부터 저렇게 서있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과거에 과연 온전한 형태가 있었을지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계단을 따라 유적지에 더 다가설 수 있다. 여기로 올라갈 때 아까 내 사진을 찍어준 커플도 보였고, 마카오에 처음 도착해서 버스에 올라탔을 때 만났던 서양 여자 2명도 볼 수 있었다.



살짝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끈적끈적한 내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높은 곳은 아니었음에도 마카오의 주변을 바라보기 좋았는데 건물들이 대부분 낡아 보였다.



성 바울 성당의 벽면 틈으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광장과 계단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내려다 본 곳이 어쩜 이렇게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