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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북 하나 없이 떠돌아다녔던 여행은 사실 평소보다 더 고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었다. 길을 잘 몰라서 헤매다가도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 좋았고, 예상치 못했던 명소가 나타나면 새로운 장소에 대한 즐거움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비슷한 이유로 마카오도 가보고 싶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공항에서 가지고 왔던 지도 한 장뿐이었는데 구룡반도(Kowloon)에서 출발하는 뱃길 중에 마카오행(To Macau)이 보였다. 분명 마카오까지는 가까울 거라는 예상만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무작정 선착장으로 향했다.



아침에 홍콩섬을 바라보니 구름이 자욱해서 그런지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청킹맨션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걸어서는 시간이 꽤 걸렸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는 홍콩의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가 분명했다. 저 멀리 높이 솟아 오른 빌딩들은 밤에는 그렇게 화려하게 빛났는데 아침이 되자 무척이나 얌전했다.



혹시 이 배를 타고 마카오를 가는 것일까? 물론 내 예상은 가차 없이 빗나가 버렸다.

나는 우선 마카오로 가는 티켓을 끊으러 이 배의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쇼핑몰로 보이는 이 건물의 내부는 상당히 넓었는데 배를 타기 위해서는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듯 했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간인지 에스컬레이터도 작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막상 올라가보니 창구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막연히 기다렸는데, 한참 뒤에야 이곳은 마카오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이 아니었다.

홍콩에 있을 때는 항상 헤매던 기억 밖에 없었는데 이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도를 자세히 보니 더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다른 건물을 찾아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대형 쇼핑몰에서 헤맸다. 그러다가 그 건물을 나오고 다시 다른 건물에 들어가는 헤매는 일이 계속됐다. 결국 마카오로 가는 터미널을 찾긴 찾았는데 이미 40분 이상을 헤매고 난 뒤였다.



마카오로 가는 티켓을 구입하고, 홍콩 출국심사를 거쳤다. 홍콩과 마카오는 전부 중국의 땅이었지만 거의 독립적인 영토라고 보는 게 맞을 정도로 이런 입국 심사, 출국 심사 과정이 존재했다. 홍콩은 영국의 영토였고,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영토였다가 중국에 반환되었기 때문이다.



내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배에 올라탔는데 이 배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필리핀 세부에서 보홀로 이동했을 때 탔던 작은 배와 매우 유사하게 생겼는데 안에는 이런 기차나 버스처럼 의자가 있었다.



드디어 마카오로 향하는 배가 출발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출발 전부터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배의 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배라서 그런지 파도에 따라서 심하게 요동쳤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놀이동산의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온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파도가 심하게 몰아칠 때마다 배는 공중에서 붕 떴는데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환호성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배를 타고 난 후 약 30분 뒤부터 환호성이 아니라 구토 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배의 움직임이 너무나 심해서 그런지 멀미 환자가 속출했다.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차례대로 "우웩~ 우웩~"거리는 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몸이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5분 간격으로 토하는 소리가 들리니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파도가 심하긴 했다.

원래 마카오까지는 1시간이면 도착하는데 기상 상태 탓에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웠던 것은 마카오에 도착했을 땐 비가 그쳤다. 나에게는 멀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 바로 관광인데 비 때문에 못 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카오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입국심사를 하고 도장을 찍은 뒤에 터미널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근처에 있던 마카오 지도를 입수 한 뒤에 우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삐끼 아저씨들이 달려들면서 관광 상품을 소개하는데 열변을 토했다. 주요 관광지를 한 바퀴 돌아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것으로, 사실 다른 여행지보다는 가격이 덜 비쌌던 것 같지만 도착하자마자 저런 걸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여태까지 이용해 본적이 없었다.

바로 앞에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니 금방 버스가 왔다. 사실 나는 마카오에서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고, 어디가 주요 관광지인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버스 타기를 망설였다. 그러다가 옆에 있던 아저씨한테 "중심지까지 가나요"이라는 간단한 물음에 간다고 해서 탔다. 그리고 홍콩달러를 내도 되냐고 물었는데 된다고 했다. 그제야 마카오에서는 마카오 화폐인 파타카와 홍콩달러가 1:1로 통용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무작정 마카오 여행을 떠났다.

버스에 올라타니 2.5파타카라고 해서 10홍콩달러를 집어넣었는데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다. 이럴수가! 마카오 버스에서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황당해 하고 있는데 내 옆에 있던 외국인 2명은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며 안 됐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 정신없이 버스에 올라타서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무진장 혼란스러웠다. 분명 중국풍의 느낌은 나긴 했는데 홍콩의 거리와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 지도와 창밖을 보는 것을 반복하다가 그냥 지도를 꾸깃꾸깃 접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라고는 창밖만 쳐다봤다. 어차피 지도를 봐도 어디가 어딘지 난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15분정도 달렸을까? 내 옆에 있던 여자 2명은 "저기가 세나도 아냐? 세나도네!"라고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저기가 중심지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덕분에 나도 얼떨결에 버스에서 내렸다.



마카오의 첫인상은 무척 고풍스러워 보였다. 마치 20~30년 전에 멈춰 버린 듯한 분위기가 현대화된 홍콩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홍콩은 세련되고 화려한 젊음이 느껴졌다면, 마카오는 무언가 고풍스럽고 중후함이라고 해야 할까? 도로는 좁았고, 새 건물은 별로 없었다.



여기가 바로 세나도 광장이다. 마카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왔는데 세나도 광장은 나를 금방이라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이 넘쳐 보였다.



세나도 광장 맞은편에 보였던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나도 광장 앞에는 작은 분수대가 있었고 그 주변을 연꽃이 감싸고 있었다.



여기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중국계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와 다른 국적의 아저씨 그리고 아이들이 근처로 와서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몇 장 찍어줬는데 이 아주머니는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며 내 캠코더를 넘겨받았다.



세나도 광장 옆에는 관광안내센터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혹시나 작은 지도라도 얻을까 해서 들어가 봤다. 터미널에서 얻었던 지도는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니기에 불편했기 때문이다. 지도를 얻을까 해서 들어갔는데 예상 밖의 수확이랄까, 한글로 적힌 마카오 안내서가 있었다. 당연히 얼른 집어 들었다.



단지 지도만 있었던 게 아니라 마카오에 대한 소개, 주요 관광지의 소개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매우 유용했다. 심지어 어느 버스를 타면 이동할 수 있는지 교통편도 간략하게 나와 있었다. 보통 이런 한글화된 안내서는 어색하기 마련인데 이건 글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나는 마카오에서 가이드북 하나 없이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다.

세나도 광장에는 확실히 관광객들이 많았다. 세나도 광장이 독특했던 것은 주변 건물 탓도 있지만 바닥에 보이는 물결무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나도 광장 넓은 바닥에 물결이 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광장 한 가운데서 사진을 찍는 건 거의 필수코스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이 광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물면서 아까 가지고 온 안내서를 다시 살펴보니 의외로 수많은 관광지가 있어서 오늘 하루 여길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매우 부족할 것 같았다. 햄버거를 허겁지겁 집어넣고는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이제 바닥의 물결을 따라 한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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