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포도농장으로 이동해 볼까? 모험은 본래 예측하지 못한 때 일어난다고 했던가. 내가 있었던 포도농장은 무척 컸지만 당시 포도의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 하루 포도를 피킹하는데 그 양이 점점 적어졌고, 자연적으로 임금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 곳 시스템이 기본 시급 + 포도 박스 갯수로 정해져 있었고, 그 가격도 매일 매일 변했었다. 어떤 한 주 동안에는 아무리 많이 포도를 따려고 해도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계속 가위로 잘라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포도를 피킹하는 양이 무척 적어졌고, 하루에 20박스도 못 만든적도 있었다. 당연히 돈이 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같은 캐러반파크에 있었던 형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다는 얘기도 오고 갔다. 사실 포도가 너무 좋지 않아 일을 하면서 ..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
텐트에서 살다가 캐빈으로 들어오니 군대에서 훈련뛸 때 텐트생활을 며칠동안 했던적은 있었지만 2주, 3주 이렇게 텐트에 살게될 줄이야. 그것도 넓디 넓은 호주라는 땅에서 말이다. 근데 여기 세인트조지에 있을 때는 고작해야 3주정도였지만 나중에 나는 배틀로라는 곳에서 사과를 딸 때 3개월가량 텐트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쨋든 텐트를 접고 캐빈으로 옮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완전 쾌재를 불렀다. 예상보다 빠르게 캐빈으로 이동하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텐트를 접고 짐을 옮겼다. 짐도 워낙 많아 여러번 날라야 했고, 텐트까지 철거해야 했으니 그 짧은 거리의 이사인데도 꽤나 오래 걸렸다. 캐러반파크 내에 있었던 캐빈의 형태는 쉽게 말하면 원룸이라고 봐야했다. 각 캐러반파크마다 그 모습은 다르지만 주로 침대와 조리시설이 갖춰져 있는 경우가 대..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
호주에서 보냈던 새해는 밖의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며 2009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누군가 헐레벌떡 오더니 TV에서 방송을 한다고 해서 우리도 같이 봤는데 멜번에서 엄청난 불꽃을 터트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저기 한가운데 있으면 마치 축제처럼 신날텐데 여기는 너무나 조용하다. 우리만 웃고 떠들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 같았다. '지금 한국은 어떨까?' 세인트조지에 온지 3주가량 되었을 무렵 나는 호주에서 새해를 보내게 되었고, 큰 돈은 아니지만 꾸준히 일을 해서 약간의 돈도 모을 수 있었다.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5시 반부터 포도 따는 일을 반복했지만 결국 나의 호주 생활의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은 피곤해도 심적으로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새해엔 맥주 마셨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 것을 보면 ..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
2008 티스토리 베스트 블로거 선정되었을 당시 나는 이랬었다 참 운이 좋게도 캐빈(호주 캐러반파크 내의 숙소형태)에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 텐트를 치고 사는 동안 춥고, 더운 것 뿐만 아니라 참으로 여러 가지 불편했었다. 우선 밥을 먹을 때 항상 후라이팬을 들고 조리대로 가서 요리를 해야했고, 어두워지면 밥 먹기가 참 난감했었다. 그리고 캐러반파크 주인 아주머니가 텐트를 옮겨달라는 말에 구석으로 옮기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가장 대박이었던건 비가 왔을 때였다. 아마 크리스마스 때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녁 때가 되자 비가 무지 쏟아지는 거였다. 텐트가 무너질까봐 밖에서 보수 공사를 하고 있을 때 비가 쏟아지는데 이게 갑자기 우박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앗! 따가워! 이러면서 텐트는 마저 보수해야 했기 때문에 쫄딱 비와 우박을 맞아야 했다. 텐트를 겨우 단단하게 ..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
한산했던 호주에서의 크리스마스와 생일 매일 같이 똑같은 일을 하고 도시락을 싸고, 텐트에서 잠이 드는 과정이 반복이 되는 동안 몸은 확실히 적응을 해나갔다. 초기에는 일을 잘 못해서 큰 돈을 만지지는 못했지만 내 손으로 벌었던 돈이 통장으로 들어왔고, 이제는 완전히 집에서 손을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이 곳에서는 주 7일 일하는 혹독한 곳이었지만 실제로 주 7일 계속 일 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12월이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26일) 때 쉬었고, 1월 1일은 뉴이어스데이로 역시 쉬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휴일이 지난 후에는 쉬는 날이 너무 없어서 제발 비 좀 오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도 했었다. 역시 휴일 없이 일을 한다는건 체력적으로 힘이 들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예상보다 1시간정도 일찍 일이..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
이사갔지만 다시 시작된 텐트생활 농장에서 계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고 난 후 계속 텐트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빛에 쉴 곳도 없었고, 밤에는 추위의 고통에 몸부림을 쳐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태워주던 사람들은 다른 캐러반파크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사를 가는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우리가 있었던 캐러반파크에도 캐빈(캐러반 파크에 있는 주거형태)이 있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어차피 이 근처 모든 캐러반파크에 남는 캐빈이 없었지만 우선 다른 쪽으로 이사를 간 다음에 그 곳에서 방이 비는 것을 기다리는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끝나고 우리를 태워다 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워낙 짐도 많았기 때문에 차가 없이는 도저히 이사를 할 수 없었다. 어쨋든 이사..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
호주 농장에서의 하루 일과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날아가 처음으로 시작한 일이 포도 피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로 날아가 농장을 많이 가는데 소위 대박을 꿈꾸며 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거야 나도 경험해 보고서야 돈 버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쨋든 나의 경우는 참 우여곡절이 있었고, 초기에는 텐트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을 할 수 있다는건 호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호주의 농장은 대부분 규모가 무척 컸다. 내가 세인트조지에 있었을 당시의 포도 농장의 규모는 피킹하는 사람만 200명이 넘었을 정도였으니 왠만한 기업 못지 않다. 물론 사람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가 피킹할 때이다. 포도 농장의 하루 일과는 매우 이른 시각부터 시작되었다. 세인트조지에 있었을 때가 12월이었으니 호..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
호주 워킹홀리데이 = 생존게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내가 너무 쉽게 봤나? 하나가 해결되면 하나의 문제가 생기고, 다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하지만 이미 수 많은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했던 사람들도 이러한 일들을 겪었을터 나 역시 고생을 알고 온거 아닌가? 나는 그래서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 생존게임 특히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사람은 어떻게해서든 호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돈도 없이 무작정 떠났기에 우선 돈을 벌어야 했고, 요리도 하나 제대로 못했지만 먹고 살려면 뭐든 만들어 먹어야 했다. 유난히 사람과의 갈등도 쉽게 일어나는것 같았다. 여기는 호주, 남한의 55배나 넓은 광활한 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 어떻게서든 살아야 한다.' 차를 가지고있던 형이 .. 지난 여행기/대책없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4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