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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도톤보리의 밤거리는 번화가답게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사실 여기가 유명한 이유는 단지 번화가라서가 아니다. 도톤보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마 거대한 간판이 있기 때문인데 이제는 이곳의 명물이 되어버렸다. 하나 같이 거대하면서도 독특한 간판은 지나다니는 사람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재미있다. 이런 간판이 서로 경쟁을 하듯 사방에 있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하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 간판의 역사가 무척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간혹 망해서 없어진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이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고, 간판도 식당과 함께 상징이 되어버린 형태가 많다. 이는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우리나라의 영업 방식과 비교되는 부분이라 역사를 강조하는 그들의 정신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도톤보리는 꼭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그냥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관광지인 셈이다. 나는 딱히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도톤보리의 화려한 간판 아래에서 구경하고, 걷기만 했다.


문어나 복어처럼 식당을 대표하는 메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간판도 볼 수 있었다.


타코야끼를 먹으면서 반대편을 바라보니 역시 독특한 간판이 눈에 띄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들고 있었다. 이 가게는 라멘을 파는 곳이었는데 탁 트인 공간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라멘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일본 라멘을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여기에도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 아저씨가 보였다. 홍대를 거닐다 보면 능글맞게 한국어로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 아저씨를 볼 수 있는데 오사카에도 똑같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손님에게 줄 듯 말 듯 놀리는 것도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어로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일본이나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어디서 본 사람마냥 친숙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 근처에는 라멘집이 많았다. 어떤 가게는 유명하다는 것을 홍보하려고 TV 라면대회에 출연한 방송분을 틀어 놓고 있었다.


확실히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한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나 같은 까막눈도 어렵지 않게 주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부르지만 않았더라면 여기에서 라멘 한 그릇을 먹어 보는 건데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신세카이에서 먹었던 꼬치튀김 전문점 다루마는 도톤보리에도 있었다. 역시 인상을 쓰고 있는 커다란 아저씨 얼굴이 눈에 띈다.


너구리로 보이는 동물의 간판도 재미있다. 이렇게 개성이 강한 간판이 가득한 거리는 처음이었다.


날씨는 많이 추웠지만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도톤보리인데 일찍 돌아가면 아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걸으니 도톤보리 강이 나왔다. 강이라고 보기엔 규모가 너무 작지만 배가 운영이 되어 간혹 관광객들이 타고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도톤보리 강이 정말 더러웠다고 하는데 몇 십 년간의 노력 끝에 지금은 많이 깨끗해진 편이라고 한다.


난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끝도 없이 어이진 골목은 여전히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했고, 사람도 많았다. 다만 중심지와 그리 멀지 않은 뒷골목은 우리로 치면 홍등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 조금 놀라기도 했다. 확실히 유흥의 중심지라 그런지 삐끼도 참 많았다.


그렇게 크게 골목을 한 바퀴를 돌다보니 도톤보리의 상징과도 같은 달리는 아저씨 글리코맨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잊고 있었다. 도톤보리에 온 사람이라면 손을 번쩍 들고 있는 글리코맨을 꼭 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일부러 간판을 찾아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글리코 간판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이곳은 도톤보리 강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넓은 광장이었는데 늦은 밤이었지만 사람은 정말 많았다.


웬만한 건물만큼 거대한 간판이 주변에 여러 개가 있었는데 의외로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역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글리코맨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살펴봐도 이곳은 신세카이에 비해 젊은층이 즐겨 찾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혼자서 할 것도 별로 없었지만 원래는 더 오래 머물고 싶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하고, 날씨가 추워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도톤보리의 밤거리도 적당히 구경했다고 생각되어 이제는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근데 12시가 넘어 지하철은 끊긴 상태였다. 어쩔 수없이 택시를 타야했다.


12시가 넘자 화려했던 도톤보리도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간판의 불이 꺼지고, 가게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았는데 일본의 밤이 이렇게 짧았나 조금 의아했다.


다른 곳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그리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데 이 거리에서는 유난히 남자가 페달을 밟고, 여자는 뒤에 남자의 어깨를 잡고 서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이 모습이 재미있다고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모습 그 자체가 순수해 보였나 보다.

화려해던 도톤보리를 뒤로 하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도톤보리에서 텐노지까지 멀다고 느껴졌다. 이미 천근 만근이 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난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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