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운젠의 지옥순례를 마치고 시마바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아침부터 돌아다니느라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버스에 타자마자 졸기 시작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을 타고 달렸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 버스는 어느새 산에서 내려와 평탄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버스의 맨 앞에는 내릴 때 요금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었는데 나는 요금을 계산하면서 내가 대충 어디쯤에서 내리면 좋을지 계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시마바라 역에서 내릴 생각이 아니었다. 시간은 매우 촉박했지만 잉어가 수로에서 노닐고 있는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을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마바라 역에서 이사하야로 가는 열차의 시간표를 살펴보면서 내가 탈 열차를 17시 32분으로 잡았다. 그러니까 시마바라의 어딘가에서 내려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을 둘러보고 시마바라 역까지 뛰어가든 택시를 타고 가든 그 시간에 맞춰서 갈 생각을 했기 때문에 조급함은 극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어디에서 내려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어느덧 버스는 시마바라에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우선 앞으로 다가가 기사님께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을 가고 싶으니 어디쯤에서 내리면 좋겠냐고 물어봤고, 기사님은 내릴 곳을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나는 시마바라의 어딘지 모르는 장소에 떨어졌다.

커다란 지도를 펼치고는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 이 방향이 맞는지 몰라서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무척 수줍어했다.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본 애들처럼 말이다. 꺄르르 웃기만 하던 아이들 옆으로 한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멈추고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쳐주셨다.

또 뛰었다. '대체 오늘 얼마나 뛰는 거냐. 눈물이 다 나오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뛰었다.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지도를 살펴봐도 이곳에서 시마바라 역까지도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빨리 살펴보고 열차 시간에 맞춰서 돌아가야 했다. 아무튼 땀이 맺힐 무렵 수로를 발견했다.


정녕 이곳이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이 맞단 말인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르게 잠잠했던 분위기, 그리고 잉어는 몇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은 수를 보고 무척 실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작 이것을 보려고 이렇게 뛰어왔나 싶을 정도로 별로였다.


게다가 추워서 그런지 잉어는 전부 숨어있었다. 그래도 명색에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인데 헤엄은 커녕 잉어의 모습조차도 보기 힘드니 이래저래 실망이 컸다.


잉어는 잠깐 밖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깊숙한 곳으로 숨었다.


실망이 크긴 했지만 힘들게 와서 그런지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주변 사진을 더 찍으면서 잉어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찾는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이 여기가 정말 맞나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곳이라고 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나는 나가사키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 시마바라 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시마바라에서 가장 기대를 했던 곳인데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도를 보면서 대충 시마바라 역을 확인한 후 다시 또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기한 장소가 눈에 보였다. 내가 뛰던 마을의 거리에 수로가 보이더니 그 수로에 잉어가 헤엄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찾았던 잉어가 헤엄치는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가이드북이나 시마바라 지도에서 보아왔던 잉어가 헤엄치는 거리의 모습이 나타나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마음은 조급했지만 시마바라의 대표적인 명소인데 이대로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웠다. 과연 잉어가 헤엄치고 있는 마을이었다. 거리의 구석에는 좁은 수로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수로에는 잉어가 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신기했고,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조금 더 이동하자 이곳에는 아예 잉어가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고작해야 수로에서 잉어가 헤엄치고 있을 뿐인데 이곳이 시마바라의 대표적인 명소로 알려져있다. 물론 잉어로만 놓고 본다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독특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마을을 이 거리가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잉어와 함께 어우러져서 살고 있는 마을은 그만큼 시마바라와 잘 어울렸다. 거리의 이름도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이라니 정말 재미있는 장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