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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달레이로 향하던 날이 밝았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6시 20분에 로비로 나가니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너무 일찍 나왔다면서 7시 버스는 분명 제 시각에 오지 않을거라고 얘기해줬다. 나는 그럼 로비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자 나의 차림새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반팔로 다니면 안 춥냐고 물었다. 하긴 1월 바간의 아침은 무척 쌀쌀했다. 

잠시 후 직원은 6시 45분쯤에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을테니 옥상으로 올라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해줬다. 원래 이렇게 이른 시각에 아침이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일부러 일찍 준비를 해줬던 것이다. 


옥상으로 올라가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거리를 바라봤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미얀마에서 보통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 아침 식사로 토스트, 빵, 커피, 쥬스 등이 나오고 후식으로 다양한 과일 등이 나왔다. 그런데 확실히 과일은 옆나라였던 태국에 비하면 당도가 많이 떨어졌다. 

내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도중에 한 외국인이 올라왔는데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미리 준비해 놓은 과일봉지를 건네줬다. 아마 급히 떠나는 외국인에게 아침을 제공해주는 것 같았는데 그런면에서 이 게스트하우스는 참 친절해서 마음에 들었다. 


많은 파고다와 엽서를 팔던 아이들로 기억되던 바간도 이젠 안녕!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로비에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바로 문 앞까지 왔다. 역시 게스트하우스 직원의 말대로 7시가 넘은 15분쯤에 왔다. 


버스에 올라타려고 하니 버스 직원은 내 배낭을 들고는 의자 아래의 좁은 틈으로 쑤셔 넣었다. 배낭커버가 없었던 나로써는 더러워진 배낭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사실 이 버스에는 짐을 실을 공간이 없었다. 앞에서 2번째 내 자리에 앉으니 곧바로 버스는 출발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맙소사! 이 버스 안에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뿐이었다. 


버스는 당연히 무지하게 낡았다. 도로의 포장상태도 좋지 못한데다가 버스도 고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승차감 같은건 애초에 있을리가 없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위에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며 주변의 시골스러움을 넘어 문명과 단절되어 있었던 삶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예전에 뽀빠산으로 가던 그 길로 가고 있었다. 

미얀마의 버스 시스템은 매우 웃겼다. 버스의 좌석을 미리 예매하기도 했지만 이 버스가 가는 도중에 언제든지 고객이 있다면 멈춰서서 태우곤 했다. 버스에는 운전하는 아저씨 외에도 2명의 직원이 더 있었는데 이들은 몸의 반을 버스 밖으로 내빼고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손짓을 했는데 이는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버스를 타라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운전하는 아저씨는 클락션을 빵빵거리며 울려대는데 이거야 말로 노이로제 걸릴 정도였다. 

허허벌판의 좁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계속해서 경적소리를 울리고, 나머지 아저씨들은 "달래 달래~(?)"라고 외쳤다. 서로 박자라도 마추듯 빵빵거린 뒤에 곧바로 사람의 목소리가 울리는게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버스는 사람을 태우기 위해 도로 곳곳에서 멈춰섰다. 


버스는 2시간정도 달리다가 잠시 쉬기 위해 멈춰섰다. 


아까 버스 위에서 열심히 외치던 그 아저씨는 꽁야(씹는 담배)를 씹어대면서 버스에 나뭇가지들을 꼽았다. 물어보지 않아서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추측으로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차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밖에서 혼자 어슬렁거렸다. 이거 참 말동무도 없어서 그런지 너무 심심하고 지루했다. 


버스는 잠시 후에 다시 출발했다. 꼭 저렇게 1명씩 돌아가면서 교대로 문 앞에 서서는 손짓을 하며 외치곤 했고, 틈만 나면 꽁야를 씹다가 붉은물을 밖으로 내뿜기도 했다. 미얀마인들은 저 꽁야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항상 씹고 다녔는데 덕분에 입안은 온통 붉게 부식되어 보기 흉한 모습이 된다. 


밖의 창문을 내다보다가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보니 맙소사 버스 위에도 이미 사람이 타고 있었던 상태였다. 미얀마에서는 이렇게 버스나 차량 위에 사람이 타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이 버스만큼은 내부에만 탄다고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달레이까지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창 밖을 구경하는 것도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뿐이었으니 이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만달레이까지는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 시간동안 외국인은 단 한명도 못봤다. 


어느 작은 마을의 식당에서 버스는 정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식당에 앉아 식사를 했는데 대체 뭘 먹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생각보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냥 밖에서 서성였다. 여기가 대체 어디쯤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지만 점심 때였으니 반정도는 온 것 같았다. 


해바라기씨나 과일, 그리고 과자 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데 다른 버스를 탈 때 저기에 있는 감자칩을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30분 뒤에 버스는 출발했고, 버스는 또 열심히 달렸다. 지루함을 넘어서자 나는 겨우 잠이 왔는데 사실 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에어컨 시설이 없던 이 버스는 그저 창문을 열고 달리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여전히 클락션을 울려대고,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휴게소로부터 2시간정도 갔을까? 갑자기 버스는 어느 길가에 멈춰섰다. 무슨 일인가 밖으로 나가보니 바퀴가 펑크가 났는지 바퀴쪽으로 몰려들어서는 정비를 하고 있었다. 


도로 한 복판에 멈춰섰던 버스는 직원들이 땀을 흘려가면서 바퀴를 분리해냈다. 제대로 달려도 만달레이에 8시간만에 도착할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미얀마에서는 이렇게 버스가 고장이 나서 지체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바로 앞에 정비소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듯 타이어가 많았던 곳에서 정비가 시작됐다. 마치 자전거 땜질하는 것처럼 튜브를 꺼낸 뒤에 구멍이 난 곳을 메웠다. 결국 이 사건때문에 1시간이나 지체됐다. 

정비가 완료된 후 버스는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열심히 달렸다. 꽤 큰 도시도 여럿 지나간 후 몇 시간이 지나 버스는 어느 길가에 멈춰섰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내가 버스 아저씨한테 "서인지엥?"이라고 물으니 맞다고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했다. 의자 아래에 깔려있던 내 배낭을 직접 끄집어 내주기까지 했는데 이미 내 배낭은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어쨋든 배낭을 메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수 많은 삐끼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였다. 너도 나도 만달레이까지 가느냐?, 내 택시를 이용해라는 외침이었는데 난 그들에게 손바닥을 내밀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이거 원 협상을 하기전에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케이, 알았어요. 그나저나 만달레이까지는 얼마죠?" 이 말이 끝나자마자 아저씨는 5000짯을 불렀다. 나는 기겁을 하면서 무슨 5000짯이냐며 "쩨찌대(비싸요)"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몰려있던 아저씨는 내가 미얀마어를 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웃으면서 비싸지 않은 거라고 나를 설득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4000짯이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쩨찌대"라고 말을 하면서 더 싼거 없냐고 물었다. 어떤 아저씨가 2000짯을 불렀는데 다른 아저씨들은 저건 오토바이라면서 내껀 택시라서 좀 더 비싼거라 얘기했다. 하지만 택시라고 해봐야 낡아 빠진 고물 차량이 분명했는데 나에겐 오로지 가격만 중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줄다리기를 하다가 한 아저씨가 2000짯을 불렀는데 택시라고 했다. 결국 그 아저씨의 차량에 올라타기로 했는데 택시라고 말했던 차량은 정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그런 차였다. 파란색 차는 택시 아저씨의 거대한 몸집을 태우기에도 부적절해 보일 정도로 정말 작은 차였다. 그것도 2인승이라는게 문제다. 힘겹게 배낭을 내 앞에 들고 올라 탔다. 


택시 내부에는 계기판 따위는 있을리가 없었고, 거대한 덩치의 아저씨는 꼭 수그려서 운전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달레이는 서인지엥 터미널(사실 터미널인지도 모를 공터였지만)에서 15분정도 달리니 도착했다. 미얀마 제 2의 도시 만달레이에 힘겹게 도착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