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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에 프놈파켕이라는 곳에서 일몰(혹은 일출)을 보는 장소가 있다면 바간에는 쉐산도 파고다가 있다. 쉐산도 파고다에 올라서 일몰을 바라보면 환상적이라는 말에 당장에 쉐산도 파고다를 찾아 나섰다. 의욕적으로 찾아 나섰던 것은 좋았는데 문제는 우리가 계속 헤매고 다녔다는 거다. 


사람들의 생활 터전인 동시에 시장이었던 곳으로 꽤나 큼지막한 편이었다. 이곳은 아난다 파고다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시장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던 곳은 아니고 정말 현지인들을 위한 시장이었다. 나와 비키는 시장을 가로질러 갔다. 지도를 보니 이 근처 어딘가에 쉐산도 파고다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걸음은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빨라졌다. 일부러 일몰을 보려고 쉐산도 파고다를 찾아가는 것인데 해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생고생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열심히 걸었는데 어째 우리가 찾는 쉐산도 파고다는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금방 나올 것처럼 보였는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나오기는 커녕 길은 점차 사라져갔다. 우리가 발길을 돌리지 않은 것은 멀리서 보이던 어느 사원이 쉐산도 파고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디가 쉐산도 파고다야?


해는 점점 저물어가고 우리는 이제 걷는 것으로는 해를 따라 잡을 수 없었기에 빠르게 걷다가 이내 뛰기 시작했다. 

"오~ 안돼! 우리는 일몰을 봐야 한다고!!" 

우리의 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쉐산도 파고다는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더이상 우리 눈 앞에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길이 아닌 그 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거대한 파고다의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거의 뛰다시피해서 도착한 뒤에 사람들에게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물어봤다. 한 아저씨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서 우리를 안내해줬다. 

계단은 무척 험난했다. 자칫 미끄러진다면 머리가 깨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기에 아주 충분했다. 그만큼 어둡고 계단은 좁았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허리를 숙여 작은 문을 통과하니 "와~"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의 멋진 경치가 나타났다. 


우리는 정말 아슬 아슬하게 쉐산도 파고다에 올라 일몰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넓게 펼쳐진 땅 위에 신비롭게 솟아오른 파고다의 모습은 바간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장면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를 안내해줬던 아저씨에게 여기가 쉐산도 파고다가 맞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대답은 아니라고 여기는 담마양지 파고다라고 했다. 나와 비키는 무척 허탈해 하면서 한편으로는 왜 여기에 관광객들이 한명도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일몰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간의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다는 쉐산도 파고다를 제대로 찾지는 못했지만 관광객들은 전부 쉐산도 파고다에 몰려있었던 까닭에 우리는 아주 조용히 저물어가는 해를 구경할 수 있었다. 다른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담마양지 파고다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그만큼 멋졌던 것이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자 넋을 잃고 바라본 우리는 꿈속에서 깨어난듯 정신이 돌아왔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살짝 아찔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한 남자가 나에게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하길래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곧바로 미안하다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이 남자 농담을 계속해서 날리면서 우리를 꽤 웃기게 만들었다. 

 
바간의 일몰을 바라본 뒤에 우리는 올라올 때 안내를 해줬던 아저씨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나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는 알고보니 우리를 안내해줬던 아저씨의 아들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어린 정도로, 역시 파고다에서 그림을 팔고 있었다. 나와 비키는 또 다시 그림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했지만 이 친구는 우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끝까지 보여주겠다면서 여러 그림을 펼쳐서 보여줬다. 


그림을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학교를 나와도 마땅히 일을 할 곳이 없는 미얀마의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나는 이런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 여긴다. 우리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기로 했고, 이 가족들과 인사를 하니 그들은 나중에 그림을 살 생각이 있으면 이쪽으로 오라고 싸게 주겠다고 했다. 


쉐산도 파고다를 찾다가 헤맨 끝에 도착한 담마양지 파고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본 일몰은 나름 괜찮았다. 모든 가이드북에서 쉐산도 파고다에서 일몰을 봐야한다고 제안을 했지만 우리는 담마양지 파고다에서 다른 관광객들이 전혀 없이 조용히 일몰을 보았다. 


돌아가는 길은 빛도 없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심지어 땅이 안 보이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뾰족하게 솟아오른 파고다를 바라보니 또 다시 신비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사방에 보이는 파고다는 그림의 배경처럼 보여졌다. 우리는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 최소한의 방향 감각을 유지한채 걷고 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