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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잘 못했지만 새로운 농장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요리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었지만 배틀로에 왔을 때는 왠만한 요리는 직접 만들줄 알게 되었다. 그래봐야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역국이나 된장국을 만들고, 오이무침도 직접 담궈서 먹기도 했다. 가끔은 카레도 해먹었다.

저녁을 먹고 도시락을 싸고 추위와 싸우며 텐트에서 잠을 잔 뒤 새벽에 일어나서 사과를 따거나 빈을 고치는 일을 했다. 사실 사과 피킹을 하자마자 우리한테 일이 당분간 없을거라고 했지만 곧바로 빈 고치는 작업에 투입되어서 하루종일 망치를 두들기며 못을 박았다. 팔이 무척 아팠지만 그래도 시간당 18.5불이라 좀 괜찮았다.

그렇게 농장에서 지내는동안 함께 팜스테이 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 외에도 한국인 3명이 더 있었고, 뉴질랜드인 4명과 호주인 2명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어차피 깊은 산속 할 일도 없었기에 주말이되면 항상 같이 맥주를 마시곤 했다.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이 주말에 항상 고기를 구워먹는 것이었는데 귀신같이 냄새를 맡은 맥스가 코를 킁킁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고기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녀석이었다.


일반적으로 호주의 VB나, 칼튼, 포엑스 등을 많이 마셨는데 이 날은 중국의 칭따오 맥주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중국에서 칭따오 맥주를 마신 기억이나서 내가 사자고 졸랐는데 중국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좀 별로였다. 중국에서 먹었던 칭따오는 이보다  큰 하얀병에 담겨있었는데 맥주가 황금색이 났었다. 기분탓인지 아니면 실제로도 맛이 틀린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계속해서 안주거리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밤에는 쌀쌀하긴 했지만 이 때까지만해도 견딜만했던 추위였다.

우리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도중 뉴질랜드 친구들이었던 리와 윌리 그리고 호주인 앤드류가 왔다.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쉴새 없이 떠들어 댔는데 이 친구들은 술만 먹으면 무지 시끄러워졌다. 평소에는 얼마나 과묵한지 술마셨던 밤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사신(사과 피킹의 신) 앤드류도 예외는 아니었다. 술만 먹으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셔댄다. 이 날도 술마시고 혼자 땅바닥에서 엎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주말을 보냈다. 나야 술을 적당히 먹는 편이었지만 주변에 뉴질랜드 친구들이 워낙 술을 좋아해서 계속 받아먹기도 했다. 얼마나 술을 좋아했냐면 리는 주말 낮에도 우리 캐러반을 두들기며 'Dringking Time!' 이라고 외쳤었다. 내가 술을 사오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이 술 한 박스가 있다며 맥주를 계속 꺼내주었다.


산 속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었고, 마을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워낙 작아서 역시나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매주 사람들과 어울려 양고기, 돼지고기 등을 굽고 맥주를 마시는게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