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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을 하면서 항상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기념품조차 사지 않았지만 베트남에서는 몇 개 구입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2~4달러짜리였지만 어설프게나마 한국말을 하는 아줌마와 즐겁게 대화하며 쇼핑을 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에 이 거리를 좀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하노이 구시가는 태국의 카오산로드에 비할 수는 없지만 밤이 되면 꽤나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변하게 된다. 물론 낮에도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밤이되면 카오산로드처럼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거리가 붐비기 때문에 여행자의 거리라는게 실감이 났다. 이런 거리와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출출했기에 우리는 케밥 하나를 집어 물고 걸었는데 엄청나게 파격적인 가격인 2천동(약 150원)에 맥주를 파는 가게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굉장히 허름하기는 했는데 이는 오로지 맥주 한잔의 가격이었고 변변치 않은 테이블 하나 없었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맥주 한잔을 마시면 되는건데 이마저도 단속이 뜨면 의자를 치워야 했다. 아마도 거리에 의자를 놓고 영업을 하는건 불법인가 보다.

그런데도 무척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과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라 많이 애용하는 듯 보였다.

2천동짜리 맥주 한잔을 집어들고 의자에 앉다보니 자연스럽게 옆에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핀란드 사람이라고 소개한 야니는 무려 14년동안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 옆에는 베트남 여자가 있었는데 자꾸 우리보고 젊은 누나라고해서 우리가 말도 안 된다고 놀리기도 했다.

나는 왜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보자 자신은 아시아의 예절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유럽과 같은 문화에 싫증을 느꼈다고 했다. 베트남의 쌀국수도 너무 좋아하고, 한국 음식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적은 없다고 했다.

갑자기 이라크가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일을 가지고 너무 잘 됐다고 얘기했다. 한국이나 일본은 잘 사니까 괜찮겠지만 이라크 같은 경우 불행한 나라이기 때문에 아시안컵의 계기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짧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 아시안컵 축구이야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한다는 하키 이야기도 하며 맥주 한잔을 더 마시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과 중국 사람이 일본 사람을 그렇게 싫어한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물어보기도 했고, 그에 대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이렇게 짧은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갔는데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다.

짧은 만남이지만 150원짜리 맥주 한잔에 이렇게 재밌고 좋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흔쾌히 응했는데 옆에 있던 일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에 돌아가서 사진을 꼭 보내 주겠다고 말하고 이메일을 받은 뒤 이들과 헤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나는 약속대로 이메일을 보내면서 이 사진을 보내줬다. 며칠 뒤 야니에게 답장이 왔는데 무척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은 그때 맥주 마시면서 축구 이야기 한 것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이렇게 약속대로 사진을 보내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사진을 보내주겠다는 말은 어쩌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로 들렸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메일을 통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맥주를 마시면서 그렇게 분위기 좋고, 기분 좋았던 밤도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