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트빌리시의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아무래도 지나온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과는 달리 배낭을 메고 걷는 여행자가 간간이 보이는 게 나름 내가 여행자의 무리에 합류한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확실히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보면 친근하다. 언젠가는 나와 길에서 마주칠 사람, 친구가 될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올드 트빌리시 중간지점에 있는 식당을 자주 갔다. 여행자의 구색에 맞춘 분위기나 빵빵하게 터지는 와이파이는 생각할 수 없는 그냥 ‘식당’이지만, 순전히 가격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았다. 게다가 허름해 보여도 무려 24시간 영업을 하는 이점도 있었다.
사실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생각보다 먹을 데가 많지 않은 올드 트빌리시라 이곳을 유난히 자주 찾았는데, 심지어 어떤 날에는 점심 먹고, 저녁도 이곳에서 먹었던 적이 있다.
아무튼 난 이곳 야외 테라스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곤 했다. 조지아식 거대한 빵을 나르는 사람을 구경하거나, 그냥 말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 구경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유럽피언 스퀘어를 가볍게 산책한다. 멀리갈 생각도 안 했다. 딱 광장 중앙만 돌아보기만 할뿐 계단을 올라갈 생각도, 케이블카를 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난 후 평화를 상징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그 다리를 건너 다시 돌아오는 게 어쩌면 하루를 마치는 의식처럼 이루어졌다.
올드 트빌리시의 야경을 화려하진 않지만 제법 괜찮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언덕 위에 있는 성을 밝혀 주는 노란 불빛 아래 몇 개의 괜찮은 식당과 펍이 자리 잡고 있다. 난 그 좁은 골목 사이를 몇 번이고 걸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펍이라도 들어가 볼까 하다가도 이내 접고 그냥 또 걸었다. ‘스트립쇼’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종이를 건네받고 한동안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사실 이 동네 분위기는 여행자의 거리치고 좀 어두운 편이다.
다음날이 되면 또 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적당한 식당을 찾는다. 여긴 생각보다 싼 식당이 없어 케밥으로 때운 적이 많았다. 기존에 내가 알던 케밥보다 고기도 많이 들어가고, 갖은 채소가 들어가 풍성하지만, 며칠 사이 물린다.
근데 케밥을 사들고 오는 도중 어떤 아주머니가 내 팔을 잡고 놓질 않아서 깜짝 놀랐다. 돈을 달라고 말을 거는 사람은 있어도 이렇게 매달리는 사람은 처음이라 적잖아 당황했다. 올드 트빌리시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구걸하는 고양이와 강아지도 많다.
심심하면 와인을 마시러 갔다. 조지아는 와인의 원산지라 불릴 만큼 유명한데 올드 트빌리시에도 와인샵이 엄청나게 많다. 와인샵에서 와인을 시음해 볼 수도 있고, 구입해서 그 자리에서 마실 수도 있다.
처음에는 길거리 와인샵에서 마셨다. 주인장과 몇 마디 나누곤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지만 조지아 와인은 나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가 느끼기에도 괜찮았다. 근데 길거리에서 몇 잔 마시는 것보다 그냥 사서 마시는 게 훨씬 싸고 맛있다.
와인과 더불어 조지아에서 빠질 수 없는 레모네이드와 킨칼리. 킨칼리는 만두처럼 안에 고기나 버섯 등이 들어간 조지아 요리로 내가 자주 먹었던 것 중 하나다. 레모네이드도 내가 생각했던 그것과는 달라 처음에는 굉장히 황당했는데(마치 술처럼 느껴져서), 나중에는 맥주 대신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사실 더 유명한 건 조지아식 피자라고 할 수 있는 하차푸리인데 내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다.
하루는 마음을 크게 먹고 좀 멀리 나가보자는 생각으로 올드 트빌리시 밖을 걸었다. 그냥 무작정 걸었다. 프리덤 스퀘어를 한 바퀴 돌고, 공원을 걷고, 성당을 봤다.
그런데 이내 어색함을 느끼고 올드 트빌리시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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