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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원래 나도 잘 모르던 사람이기에 소개하자면 복잡한데, 파리다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만난 친구로 내 초등학교 동창의 친구다. 그러니까 친구의 친구를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난 셈이다. 원래 미국에서 지내는데 잠깐 고향으로 온 시기와 맞물려 내가 아제르바이잔 여행을 하게 됐고, 친구는 파리다와 연락할 수 있도록 연결해줬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거라 사실상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원래 계획도 없는 여행이라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 딱히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그리하여 늦은 저녁 파리다와 그녀의 가족을 만났다. 혼자 나오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적잖아 놀랐다. 이것부터 재미있는 경험인 셈이다.

처음 만났으니 당연히 "반갑다" 인사부터 하고 차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왜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하는지, 보고 싶은 곳은 없는지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어딜 가고 싶냐고 했을 땐 그거야 말로 내가 알고 싶은 질문이라고 했다. 난 바로 어제 도착한 여행자였으니깐.

근데 파리다라고 바쿠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상 미국에서 계속 살고 있어서, 1년 내에 아제르바이잔으로 돌아오는 기간이 한 달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2주라고 했던가. 아무튼 자신도 바쿠에 대해 잘 모른다고 웃음 짓는 친구와 함께 본격 바쿠 여행에 나섰다.

파리다 아버지가 모는 차는 플래그 스퀘어를 돈 뒤, 내가 플레임 타워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고 하자 언덕 위로 올라갔다. 내가 창을 통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갑자기 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세워 주기도 했다.


우리는 바쿠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갔다. 어딘지 모르고 따라갔지만 내가 딱 보고 싶었던 장면으로, 바로 왼쪽으로는 바쿠의 상징 플레임타워가 큼지막하게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바쿠의 야경이 펼쳐져 상당히 멋진 곳이었다. 만약 걸어서 왔다면 언덕이라 상당히 힘들었을 거다.


바쿠의 야경은 정말 화려했다. 처음 바쿠에 도착했던 새벽만 해도 노란 불빛의 으슥한 동네라 생각했는데 휘황찬란한 불빛덕분에 오히려 낮보다 더 밝아 보였다.


파리다는 이 사진을 상당히 좋아라 했다.


플레임타워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임에도 플레임타워의 조명이 화염이 아닌 국기 색깔일 때 찍은 것은 좀 아쉽다. 근데 화염일 때보단 국기가 색깔이 여러 개라 배경으로 더 적합할지도.


다시 차에 올라타고 공원으로 갔다. 좀 걷자고 하는 건데 뭐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적국인 아르메니아 이야기를 나누는 심각한 주제부터 내 여행 이야기나 내 친구 영어 이름 '봅'은 좀 어울리지 않다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확실히 바쿠의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답다. 파리다도 이 말에 동의했다.

날씨가 살짝 쌀쌀해 차를 마시기로 했다. 여기서도, 그것도 외국인에게 신세를 지게 될 줄은 몰랐다. 물가가 상당히 비싼 아제르바이잔인데 딱 보기에도 공원 한 가운데 있는 비싸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가자마자 그들에게 가족사진을 인화해서 줬다. 난 여행을 하면서 어떤 소중한 만남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인화해 주곤 했다. 솔직히 의외의 만남이었지만 상당히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추억을 전해주고 싶었다.

저녁을 먹지 않은 나를 위해 치킨을 주문해주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이슬람 국가라(메뉴에 술은 있는 개방적인 국가다) 블루베리 주스를 마셨다. 원래 차를 마시려고 했더니 차는 나중에 후식으로 마시는 거라며 주스를 권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었던 닭고기. 정말 맛있었다.


파리다의 가족, 그리고 손님으로 온 분과 사진도 찍었다.

정말 웃겼던 사건은 바로 다음이다. 사실 파리다와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친근해진 상태지만,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은 어른들과는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감돈 것도 사실이다. 그냥 미소만 지은 채 먹기만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 자리로 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멀리서 누군가 우리 자리로 왔는데 난 파리다가 소개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우리 숙소에서 함께 묵고 있는 이란인으로, 이란 가라데 코치였다. 같은 숙소에 머물러서 단순히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린 침대도 같이 사용한 사이다. 말이 좀 이상한데, 숙소에 개인 침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큰 침대에서 함께 잤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다들 빵 터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15분간 말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혹은 숨넘어갈 정도로. 초대한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인 것도 모자라, 지난 밤에는 같은 침대에서 잤다고 하니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특히 파리다의 아버지는 (양 집게손가락을 마주치며) 아제르바이잔 인구가 4백만인데 어떻게 ‘휙~’ 만나게 되었냐며 웃어댔다.

당연히 몰랐을 파리다의 아버지는 아제르바이잔의 가라데 협회장이었고, 마침 이란의 국가대표 가라데 선수였다가 지금은 코치인 이 남자가 바쿠에 왔기에 여기로 부른 것이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우연이 또 어디 있을까. 아무튼 뭔가 이야기가 끊어질만하면 나와 이 이란 남자의 만남에 대해 다시 언급하고, 또 다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셨다. 이제는 러시아를 비롯해 캅카스 지역을 여행하다 보니 차문화가 익숙해졌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술이 아닌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게 일상이다.


보통 차를 마실 땐 달달한 간식과 함께 하기도 한다.


파리다의 통역으로 이란 남자와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사람도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설마했다고 한다.


우린 유쾌한 만남을 기념하며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었다.


만난 시각도 늦은 저녁이었으니,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라 밖으로 나가 파리다의 가족을 배웅을 했다. 우리 숙소는 아주 가깝다고 말해도 차를 타라고 해서 아주 잠깐 차에 올라탔다. 사실 아제르바이잔은 입국부터 출국까지 여러 사건들로 가득한 곳이었지만(정확히 말하자면 비자), 파리다를 만난 짧은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왓츠앱으로 대화할 땐 무척 깐깐해 보였는데, 아마 그땐 만나기 전이라 서로 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파리다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이란 남자와 숙소로 돌아갔는데, 돌아가는 길에 우린 파리다의 통역 없인 아무런 대화를 나눌 수 없어 서로 웃기만 했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