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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야끼를 다 먹고 난 후 약간 이제는 맥주가 절로 생각났다. 사실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도 때울 겸 맥주도 마시자는 생각을 했는데 난 혼자서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고, 다른 안주는 필요 없이 맥주만 마실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말 그대로 그냥 맥주만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도부츠엔마에역으로 가는 길에 소규모 주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차피 역으로 갈 생각이기도 했고, 그런 곳이라면 맥주만 마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시끌벅적한 가게들 사이로 작은 주점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에서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 들어갔다. 이런 곳은 대게 앉을 수 있는 자리조차 없어 서서 맥주를 마셔야 한다. 흔히 일본식 선술집이라고 부르는 이자카야와는 다른 분위기로 가볍게 마시기엔 제격이다.

안에는 나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여자 3명이 운영하고 있었고, 손님은 할아버지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너무 좁기도 하고,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난 입구 근처에 서서 생맥주를 주문했다.


맥주와 함께 간단하게 감자튀김 몇 개가 나오긴 했는데 맛은 별로 없었다. 대신 맥주는 정말 맛있었다.


분위기 자체는 소박하지만 원래 이런 곳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쉽다는 점이 좋다. 당연히 주문을 받은 여자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열심히 대화를 시도했다. 비록 영어가 안 된다는 사실이 조금 답답했지만 그래도 무척 재미있었다.

여행 중이냐는 그들의 물음에 난 오사카 여행을 마치고 잠시 뒤엔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바로 앞에 있던 여자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는지 걱정했다. 물론 저녁 비행기라서 이정도의 여유는 괜찮았다.


주로 내 앞에 있던 여자가 대화 상대였는데 그녀는 이번 주에 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한국에 가봤다는 줄 알았는데 달력까지 보여주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사실 이정도로 의사소통은 잘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전달은 되긴 했나 보다. 아무튼 그녀는 한국에 가서 쇼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다며 어디를 가야 되냐고 물었다. 특히 부침개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내가 가이드북이 있냐고 물으니 그녀는 집에 놓고 왔다면서, 손바닥을 치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내가 오사카에 있는 동안 스미요시타이샤를 다녀왔다고 하니까 다른 한 여자는 자신도 가봤다면서 나에게 휴대폰에 들어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기모노를 입고 결혼식에 갔던 사진인데 꽤 잘 어울렸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잘 나왔다는 반응을 보이니까 자기는 키가 작아 미니멈이라고 한다.

“혼또니(정말) 미니멈!”

혼또니는 한국말로 하면 ‘진짜’, ‘정말’이라고 알려주니 곧바로 “진짜 미니멈!”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너무 웃겼다.

한국의 김이 맛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역시 일본 사람들은 한국의 김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서로 나이를 묻기도 했다. 예상은 했지만 전부 나보다 어렸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20대 초반이었는데 이런 가게를 운영해 나가는 것을 보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맥주를 한잔 마시고, 두 잔을 마실 무렵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히 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내 옆으로 와서는 “일본에서는 목도리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이상하게 묶었다. 내 목을 조여와 옆의 여자를 바라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술에 진득하게 취해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그냥 상대를 하지 말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난 술을 다 마셨고, 이제 난바로 이동해야 했다. 나름 재미있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사진이라도 같이 찍자고 말하니까 오히려 더 좋아했다. 자리를 옮겨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장소가 협소해서 참 힘들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나도 사진에 나오는지 물으면서 지긋이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뚝뚝한 인상의 어떤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나와 같이 찍자고 했다. 말을 한마디도 안 해서 조금 놀라긴 했는데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난 가게 주인이었던 3명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정말 너무 좁았다. 게다가 때마침 손님이 몰려와 서둘러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일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렇지만 이들은 특히 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괜히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나도 함께 양해를 구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은 뒤 난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이메일도 받았다.

사실 말은 안 통해서 힘들긴 했지만 여행자에게 만남이란 언제라도 즐겁기 마련이다. 간단하게 맥주만 마실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난 즐거운 기분을 가득 안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확실히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몰라도 누구와도 쉽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은 이런 주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