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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다른 여행블로그와 차별화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블로그는 단순히 여행지만 소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항상 좋은 것만 알려주는 그런 블로그는 아닙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배낭여행에 대한 소소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것입니다. 

저는 여행과 배낭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를 엮는 만남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가장 재미있고, 소중한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는 이유는 여행은 인연을 만들고, 인연은 추억을 다시 새기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펼쳐놓으려고 하는데 그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베트남에서 만났던 핀란드 친구입니다.

"How are you?"

며칠전이었다. 페이스북에는 항시 접속하고 있기 때문에 하단에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요청한 상대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는 대화를 해야할지 고민을 했다. 우선 어줍잖은 영어 실력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없을거라는 것이 첫번째 고민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가 그만큼 친근한 사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야니, 핀란드 사람이었다. 2007년 베트남을 여행하는 도중에 우연히 하노이의 노점에서 만나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던게 전부였다. 딱 그 1~2시간이 우리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하노이에는 거리에서 싸구려 맥주를 팔던 노점들이 있었는데 테이블도 없이 플라스틱 의자만 갖다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보기에도 열악해 보였는데 간혹 단속이 뜨면 의자를 접어버리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손님은 맥주를 손에 들고 멍하니 서있는 진기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 한잔에 3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은 여행자들이 몰려들기에 충분했다. 


야니는 그곳에서 맥주를 마시다 만난 친구다. 바로 옆에 앉아있었던 전형적인 아저씨타입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이 잡수신 그런 아저씨는 아니었고, 마치 친구나 삼촌처럼 같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상대였다. 맥주를 2잔 마시면서 정신없이 대화했었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꼭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아주 당연하게도 사진을 보내줬다. 며칠 뒤에 온 답장은 진짜 사진을 보내줄 줄은 몰랐다며 놀랍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이메일을 한번 주고 받은 뒤 나중에 페이스북을 가입하자마자 자동으로 친구가 되었고, 반가워서 쪽지 두번정도 주고 받은게 전부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안부를 물으며 채팅을 요구한 것이다. 

채팅은 자신없었지만 그래도 인사를 하며 응했다. 그렇게 야밤에 시작한 채팅은 멈출줄 모르고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외국 친구랑 채팅하면서 이렇게 배꼽 빠지게 웃을 줄이야. 오죽하면 채팅을 하면서 너때문에 지금 웃겨 죽겠다는 소리를 몇번이나 했다. 

야니는 현재 베이징에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베트남에 있었던 그가 베이징에 있다니 조금 의외이긴 했다. 베이징에서 캠핑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나에게 사이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언젠가 북한을 가보고 싶다고 아마 그게 내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한번 그 위대한 김(김정일)의 제국을 보고 싶기도 하네."

물론 그는 남한과 북한의 엄청난 차이를 알고 있었다. 내가 굳이 "남한과 북한은 전혀 다른 곳이야!" 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엿같은 북한의 시스템을 비판하며 9시면 암흑이 된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건넸다. 그러면서도 북한이라는 나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가 보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저절로 론리플래닛이 나오게 되었다. 세계적인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의 창시자인 토니휠러는 북한을 방문하고 '나쁜 나라들'이라는 책을 쓴적이 있는데 나는 그에 대해서 설명을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야니는 론리플래닛이 여행자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완벽한 책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당연하다. 어떤 여행 가이드북도 현지에서 살던 사람만큼 잘 알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론리플래닛은 맞지 않는게 너무 많아. 베트남에 오래 있었던 나도 베트남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게 많거든."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야니는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가장 웃긴게 뭔지 알아? 론리플래닛에서는 베트남 여행을 약 1달이면 충분하다고 했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날봐. 나는 베트남에서 무려 9년동안이나 있었다고!"

나는 이말을 듣고 한밤중에 배꼽이 빠지도록 웃기 시작했다. 아니 론리플래닛에서는 1달이면 충분하다는 나라가 야니에게는 9년동안 머물게 만들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가이드북이란 말인가. 새벽에 미친놈처럼 웃던 나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영어로 채팅을 이어가다 보니 가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고, 어떻게 해야 내 생각과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래도 대화가 이어진다는 것에 놀라웠다. 사실 그래봐야 기초적인 영어수준이지만 말이다.

"좀 이해해줘. 내가 영어가 미숙하잖아. 가끔 단어도 생각이 안 나기도 하고, 문법도 틀리기도 하니깐."
"너 영어 실력 괜찮아. 아주 좋다고."
"에이... 말도 안돼. 거짓말!"
"아니야. 너의 영어는 내 한국어 실력보다 훨씬 좋다니깐."
"오... 근데 너 한국어 할 줄 알아?"

물론 그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데 그거보다 내 영어가 낫다는 소리는 즉 거의 못한다는 소리가 아니냐고 하니까 또 그건 아니란다. 자신은 100% 이해하고 있으니 내 영어가 나쁘지 않다는 소리를 하면서 오히려 나보고 겸손한척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심지어 2007년도에 만났을 당시에도 내 영어가 좋았다고 뻥을 치는 것이다. 내가 말도 안된다고 그 당시 취한거 아니냐고 하니까 자신은 확실히 기억한다며 나보고 취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무튼 좀 웃겼다.

야니는 한국에는 방문해 본적이 없지만 한국음식은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김치도 먹어봤다고 했고, 놀랍게도 소주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소주는 너무 쎄지 않냐고 물어보니 한국인들처럼 몇 병을 마실 수 있다고 늘어놓는다.

"만약 한국에 놀러오면 내가 한국식 바베큐를 대접하도록 하지."
"소주도 있어야겠지?"
"하하하. 그래 소주도 마시자고!"
"당장 내일 서울로 출발할까?"

무척 유쾌했다. 베이징으로 놀러가면 자신이 중국음식을 대접한다고 얘기도 하고, 원한다면 베트남이나 핀란드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4년전 거리에서 단 2시간을 만났던 것이 전부인 인연인데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게 바로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우리가 언제 만나게 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주 가까운 베이징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능성은 조금 더 열려있겠지만 여전히 해외는 해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야니를 만나 진득하게 여행 이야기를 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날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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