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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차를 타고 잉와를 계속 둘러봤다. 스위스 친구들은 마부 아저씨한테 "아까 그 꼬마 매니저 너무 까칠하던데?" 라고 말을 하니 그저 웃기만 했다. 

다음 장소에 도착하니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만달레이 지역 입장료를 받는 곳이 없었는데 그 장소가 다름 아닌 잉와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10달러를 내고 만달레이 지역 입장료를 내야 했다.


10달러짜리 지역 입장권을 받아 들고는 스위스 친구들 역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거 너무 비싼거 아니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곳은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은 곳이라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앞에 안내판이 있어서 바가야 수도원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혹시라도 이곳의 이름을 까먹을까봐 사진을 찍어뒀다. 이 앞에서는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물이나 콜라를 마시라고 물어보곤 했다. 


사실 이곳은 그냥 목조 건축물로만 보일뿐 별로 볼만한 그런 장소도 아니었다. 여기가 학교의 역할도 하는지 아니면 불교를 배우러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꼬마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바닥을 걸을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났다. 


잉와는 계속 이런식인가 보다. 


아까 콜라를 마시라는 아주머니가 다가와서는 저기 들어갔다가 나왔으니 이제 뭐 마실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던 스위스 친구는 담배만 피겠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그럼 성냥이 필요 없냐고 물었다. 그 때 이 친구는 성냥보다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서 라이터를 꺼내 마치 마술쇼를 하는 것처럼 불을 켰다. 그러면서 "매직쇼"라고 외치니 아주머니도 그 광경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스위스 친구들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차 위에서 꽤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 중에서 한 친구는 한국에도 자주 왔다고 했는데 심지어 이번 휴가가 끝나면 출장때문에 곧바로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한국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고 했는데 우리가 한국 이야기를 하니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 내가 일본보다는 싸지만 그래도 꽤 비싼 편이라고 하니 한국에 자주 왔던 스위스 친구가 동의를 하다가 지금은 환율 때문에 무척 저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확실히 그 때는 유로나 엔화의 가치에 비해 한화는 무지하게 떨어졌던 시기였다. 


마차 위에서 우리는 비스듬하게 서 있었던 건물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살짝만 누르면 쓰러질 것 처럼 보였을 정도였는데 이 근처가 사실 잉와 왕궁의 터라고 한다. 


와치타워 앞에도 물건을 팔던 작은 노점들이 있었는데 쓸만한 물건보다는 오래된 골동품을 팔고 있었다. 심지어 옛날 돈도 팔고 있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지도자 중에서 네윈었나 그 사람이 점술가의 말만 믿고 돈의 액수도 이상하게 정해버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보통 10, 100, 100 이런 식으로 단위가 정해지기 마련인데 15, 45, 90이라는 지폐도 만들었던 것이다.  15짯에는 미얀마의 영웅이라 불리는 아웅산 장군의 얼굴이 있었다. 


허름해서 올라가는 내내 불안했던 와치타워에 올라가 봤다. 여기도 다른 잉와의 유적지처럼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위에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웠냐면 또 그것도 아니었으니 와치타워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다만 저 멀리 다리가 보였고 그 쪽에 보였던 하얀색 파고다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저기가 바로 사가잉이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겁이 날 정도로 나무 다리는 무척 부실했다.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삐거덕거리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느껴졌다. 


기울어진 와치타워를 옆에서 살펴 봤다. 그 때 스위스 친구들이 재미있는 생각을 했는지 와치타워를 누르거나 받히는 듯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내가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찍어줬다. 


나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힘껏 밀어버리는 사진을 찍었다. 조금 더 정교했다면 재미있는 사진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충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시 마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마하 아웅웨 뿡장이라는 곳이었다. 이름 참 이상하게 들렸다. 잉와 투어에서 가장 마지막에 들렀던 곳이었는데 그나마 잉와에서 가장 볼만한 건물이었다. 

마하 아웅웨 뿡장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달려와서 관광객들에게 엽서를 팔려고 했다. 그 때 어느 아저씨는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얘네들은 대체 왜 이 시간에 있는 거야? 너희들 학교는 안 가니?" 라고 말을 했다. 우리는 학교 안 가냐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는데 우리는 방학이라서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엽서를 팔려고 온 아저씨가 있었는데 엽서에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계속 따라와서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우리들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나는 하루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그런지 얼굴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스위스 친구는 부처상을 발견하더니 "오~ 부다 여기에 있었구려!" 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마하 아웅웨 뿡장의 독특한 외관은 인상적이긴 했지만 여기도 오래 구경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니 작은 상점의 아주머니가 음료를 팔고 있었다. 스위스 친구들은 마지못해 하나 사겠다고 콜라 3개에 얼마냐고 물었는데 3000짯이라고 했다. 내가 옆에서 "제찌대(비싸요)"라고 말을 하니 스위스 친구들은 나를 보더니 어떻게 미얀마어를 아냐면서 무척 신기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쇼빼바(깎아주세요)"라고 말을 하니 아주머니도 웃었다. 그렇게 5분동안 쇼빼바라고 외치니 결국 3개에 2000짯으로 살 수 있었다. 

이들은 콜라를 마시면서 관광객들이 나타나면 "자~ 여기 콜라! 물!" 이렇게 아주머니가 했던 것처럼 따라하기도 했다.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우리는 이제 모든 잉와의 관광지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마차에 다시 올라타고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갔다. 마차에서 한국에 자주왔다고 하는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취업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글쎄..." 여전히 나는 무성의한 답변만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만큼 취업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일까?
"뭘 공부했는데?"
"광고홍보학이랑 경영학을 전공했어. 이제 이 여행이 끝나면 취업을 해야겠지..."
"후후... 너는 이제 거친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겠구나!"

나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한국은 일만 하는 나라였다고 말을 하면서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을 해보면 새벽 2시에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스위스 친구가 그 말이 진짜냐고 무척 놀랬다. 

"아마 한국은 1년에 5일만 쉴껄? 현대나 삼성이나 정말 큰 회사는 많은데 그런 회사는 죽어라 일만 시키던데?" 나는 그제서야 이 친구가 거친 세계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한국이 때로는 열심히 일하는 나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만 하는 나라로 인식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는데 그게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끔 주객이 전도된 삶을 우리는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그의 말에 부정을 할 수는 없었고,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배를 타는 선착장에 돌아왔다. 마차를 빌려탔던 비용을 합쳐서 지불하고 난 뒤 보트를 타기 위해 가까이 갔다. 배는 잠시 뒤에 돌아왔는데 스위스 친구는 나에게 "너 아까 가지고 있던 보트 티켓은 가지고 있지?" 라고 물어봤다. 순간 내가 티켓을 받았던 기억이 나지 않아서 "글쎄? 아마도... 있겠지?" 라고 말을 하니 이 두 친구들은 나의 엉뚱한 대답에 크게 웃었다. 

이 친구들은 사가잉을 갔다가 잉와에 온 상태였고, 나는 이제 사가잉을 갈 차례였다. 내가 다음 목적지는 어디냐고 물어보니 예상대로 아마라뿌라라고 했다. 

"그럼 아마라뿌라에서 보면 되겠네?"
"좋지. 거기서 우리는 기다리고 있을께." 


보트를 타고 돌아갔다. 


우리가 배에서 내리자 아이들이 몇 명 보였는데 여태까지 아무렇게 발랐던 타나카와는 틀리게 나뭇잎 모양으로 타나카를 바른 아이가 무척 귀엽게 보였다. 물론 내가 팔찌를 사주지는 않았지만... 참 예쁘다고 말해줬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내가 나온 것을 보고는 곧바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여전히 할 수 있는 말은 "Let's go?" 밖에는 없었지만 내 오케이 사인에 쏜살같이 사가잉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