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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 26번 거리와 83번 거리의 교차지점에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가 있었다. 오랜만에 인터넷이라도 하려고 들어가보았는데 꽤 괜찮아 보이던 인터넷 카페는 자리에 앉아 해보니 이건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느렸다. 메일 하나 확인하는데도 5분이나 걸렸으니 말 다했다.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겨우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얀마에서는 태국에 비하면 인터넷 환경은 최악에 가까웠고, 내가 가보았던 나라 중에서도 가장 느린 인터넷 속도를 자랑했다. 하긴 전화서비스도 잘 갖춰져있지 않았는데 인터넷을 기대하는 것조차가 무리긴 했다. 그리고 인터넷의 경우는 군사정부 답게 철저하게 검열을 받는다. 즉 아무리 세계적인 서비스라도 미얀마에서는 접속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서야 접속이 잘 되는 사이트가 늘어난 편이긴 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인터넷을 하려고 들어왔는데 1시간 이용 중에서 50분이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마우스만 이리저리 흔들어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달레이에서 첫 날이었는데 밥먹고 나니 할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다니는 외국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거리는 그냥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엉켜 다니는 모습뿐이었다. 그렇다고 도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냐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가로등은 전혀 켜져있지 않아 이 거대 도시 전체가 암흑 그 자체였다. 


26번 거리를 조금 걷다보니 시계탑 주변으로 시장이 보였다. 평소에 시장이라면 무지하게 좋아하는 내가 이런 야시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구경하기로 했다. 여기가 바로 제쪼 야시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통 야시장의 분위기는 낮 못지 않게 환하게 밝은 빛과 사람들이 가득찬 열기가 있기 마련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곳은 그런 모습이 거의 없었다. 더욱이 가로등 불빛이 전혀 없던 만달레이에서는 이 야시장조차 으슥해 보여 별로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야시장은 잡다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지만 내가 관심을 끌만한 상품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불빛이 거의 없어 발전기를 돌려서 전등을 켜놓고 있었는데 이런 푸르스름한 불빛에 상품이 제대로 보이는지 그것도 조금 궁금했다. 만달레이는 굉장히 큰 대도시였는데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이런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마 내가 봤던 야시장 중에서 가장 재미없었던 곳이었다.  


나는 숙소 근처로 돌아와서 나일론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었던 나일론 아이스크림 가게 의자에 앉았다. 만달레이에서 괜찮은 식당이나 휴식처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나에게 이 나일론 아이스크림가게는 매우 괜찮은 장소였다. 여전히 매연과 오토바이 소음에 시끄러운 만달레이 거리였지만 나는 그 옆에서 밀크 쉐이크 한잔을 시켜놓고는 지난 하루 일과에 대해서 적을 수 있는 여유를 즐겼다. 


그렇게 밀크 쉐이크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내 앞에 누군가가 이 가게 앞에서서는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살펴 보고 있었는데 아주 익숙한 모습들이었던 것이다. 바로 바간에서 만났던 이탈리안 커플 마시모와 바라밤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가까이 다가가서 어깨를 톡톡치니 마시모는 뒤를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고 잠시 멍해있다가는 이내 "오~ 야니!"라고 외쳤다. 물론 같은 지역으로 이동하긴 했지만 이렇게 거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너무 반가웠던 것이다. 

이 둘은 내 앞 자리에 앉아서는 여기 어떠냐고 맛있냐고 물어본 뒤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탈리안 커플에게 바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찾아갔다고 얘기했는데 이들은 무척 놀라면서 나를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서 일출을 보러 갔다고 얘기를 했다.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늘 만달레이에 도착한 나는 갑자기 궁금한게 생겼다. "여기 만달레이 어때? 난 여기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난 솔직히 만달레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마시모는 자신도 만달레이에 처음 왔을 때는 무척 싫었다고 했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그 순간에도 여전히 별로라고 했는데 대신에 오늘 만달레이 주변의 도시들을 둘러보니 무척 좋았다고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서 얘기를 하니 너무 재미있고, 신기해서 좋았다. 


다시 만났으니 꼬마 직원에게 부탁해서 사진도 찍었는데 이 아이는 사진을 몇 번 찍어보지 않았는지 몇 번의 흔들린 사진 끝에 겨우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마시모의 경우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조금 인상이 강해보였는데 몇 번 만나고 보니 생각보다 어눌한 표정과 행동이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결론은 둘 다 매우 착한 이탈리안이었다. 

이 둘은 다음 날 밍군에 간다고 했고, 나는 만달레이 주변의 도시 투어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함께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녁 때 나일론 아이스크림에서 또 보자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저녁 시간 때에 만나기로 했는데 사실 시간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살짝 의문이긴 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TV를 봤다. 미얀마에서 지내는 동안 유일하게 TV가 있었던 방이었는데 화질은 별로였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더빙이 되지 않은 한국 드라마가 매일 저녁에 방영이 되고 있었는데 이 날도 역시 한국 드라마가 나왔다. 다른 나라에 와서 한국 드라마를 보다니 이처럼 신기한 일이 있을까? 그것도 한국어로 말이다. 내가 봤던 드라마에는 익숙한 배우는 나오는데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강적들'이라는 드라마였다. 가끔씩 나오는 무지하게 유치한 미얀마 광고를 보고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 '데스티네이션'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