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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냥우에서 뉴바간까지 왔지만 아무런 소득없이 다시 올라갔다. 이름 모를 작은 파고다에서 거의 정신을 놓고 한참 동안 쉬었더니 그래도 다리의 감각이 살아나서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뉴바간에서 올드바간으로 가는 길은 무지막지한 오르막길이었다는 거다. 

너무 심한 오르막길은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걸었다. 그 때마다 내 옆을 쌩쌩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이 자전거를 당장이라도 버리고 마차를 타고 싶은 심정이었다. 1.5달러에 빌린 자전거는 이제 나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올드바간으로 가는 도중 멀리서 어떤 서양 여자가 파고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멀리서봐도 비키일거라는 생각에 그쪽 파고다로 가봤다. 신발을 벗고 파고다에 들어가니 역시 비키가 있었는데 엉망진창이 된 나의 모습을 보고 그 동안의 고생을 알아봤는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마차를 타고 올 때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갔다고하니 마부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엔 너무 힘들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무지하게 힘들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쨋든 그것보다 바간에는 수 많은 파고다가 있는데 이렇게 우연히 비키와 만나다니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이 파고다는 규모는 무척 작았다. 게다가 뉴바간으로 가는 길에 있었으니 당연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없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왕 여기에 들렀으니 파고다 내부에라도 들어가봤는데 안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하길래 촬영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크게 둘러볼만한 것은 없었다. 


나를 보며 친구라고 부르던 이 아저씨는 나에게 그림을 구경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살 돈은 없다고 하니 그래도 괜찮다며 앉아서 쉬다가 가라고 했다. 비키는 내 옆에 서서 "내 친구는 정말 돈이 없다고요. 호호홋" 라며 거들기까지 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나와 비키와의 관계에 대해 무척 궁금한지 애인사이냐고 물어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솔직히 그림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지만 그림들이 전부 예술 작품같았다. 미얀마에서 간혹 그림을 구경할 수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느낀 것이었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예술적 감각이 무척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비키는 그림을 구입하고 싶었는지 여러 그림을 구경하다가 가격도 물어봤다. 다만 가격이 예상보다 비싼 가격이었는데 깎아달라고 해도 아주머니는 금가루를 뿌린 것이라서 깎아줄 수 없다고 무척 완강하게 나왔다. 비키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깐깐한 성격이긴 했지만 그림의 가격이 문제라기 보다 다음 날 양곤으로 돌아가야 했고, 남은 돈이 거의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림 가격 흥정때문에 아주머니와 비키가 협상을 벌이는 동안 나는 자전거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바닥에 그냥 철푸덕 주저 앉아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눴다. 간혹가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그림도 한번 보지 않겠냐고 말을 했다. 그러면 나는 손사레를 치면서 그림이 너무 비싸서 못산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원의 이름이 궁금해져서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말로 들어서는 도저히 기억이 안 날거 같아서 정확한 글자를 물어보니 내 책에다 'ABEYADANAR'라고 적어줬다. 아베야다나 파고다... 바로 이 곳의 이름이었다. 

"어이~ 친구! 혹시 나에게 한국어 좀 알려줄 수 있나?" 

나와 미얀마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에게 한국어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아직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고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게 한국의 인사말이예요. 안녕하세요."
"아뉭세요?"

한 5번을 반복해서야 조금 따라할 수 있었다. 무척 어렵다고 하길래 내가 '안녕'이라고 하면 어린 사람이나 친구들한테 쓰는 간단한 인사가 있다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은 '안녕하세요'가 쓰인다고 이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감사합니다'도 알려주고 난 뒤 다시 말을 했는데 발음이 많이 이상했다. 

"저기... 인사말을 뭐라고 했지? 아능해요?"
"안. 녕. 하. 세. 요."


이렇게 말을 하니 이제는 주섬주섬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받아적기 시작했다. 보기에 신기했던 미얀마어를 직접 쓰는 모습을 보니 약간이지만 글자의 원리가 보이긴 했다. 완전히 내 추측이긴 했지만 내가 말을 할 때마다 문장의 위나 아래에 글자를 추가하는 것으로 보아 동글동글했던 미얀마어를 쓰면 위와 아래에 글자를 추가하면서 소리가 바뀌는 듯 했다. 

혹시라도 한국 관광객들이 오면 한국어로 그림을 팔고 싶다고 하길래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구경하다가 가세요', '싸고 좋은거 많아요' 라고 알려줬다. 그걸 또 그대로 적더니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연습하기도 했다. 

정말 한국인 관광객이 이 파고다까지 갈지도 의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어로 말을 한다고 해서 물건을 구입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경우 한국어로 말을 한다고 물건을 구입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저씨가 열심히 받아적는 모습을 보며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알려준 것은 조금이라도 이 아저씨가 한국어로 열심히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거라는 상상하며 즐거워질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알려준 몇 마디의 한국어가 정말 도움이 된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