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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할 게 없었던 나는 아무 트램이나 잡아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트램이었지만 그냥 홍콩에서 트램을 한 번 타보고 싶었다.



트램에 타자마자 2층으로 올라갔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의자의 대부분이 젖어 있었다. 홍콩의 트램은 외관으로 봐도 그렇겠지만 실제로도 상당히 좁았다.



좌석에 앉아 홍콩의 도심을 구경했다. 잠시 후 무지막지하게 소나기가 쏟아지니 사람들이 허겁지겁 문을 닫기 시작했다. 창문은 아래로 내려져있는데 그걸 위로 잡아 올리면 닫힌다. 근데 쉽게 닫히지는 않았다. 비를 맞으면서 창문을 닫아도 문제였던 건 내부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후덥지근할 정도로 더워졌다. 겉보기에는 트램 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생각만큼 쾌적하지는 않았다.



홍콩에서 가장 멋있었던 빌딩은 단연 중국은행타워(China Bank Tower)였다. 아마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생겨난 빌딩이 아닐까 추측을 해봤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건물보다도 훨씬 세련되고 미래적인 느낌이 났다.

트램에 앉아서 홍콩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나는 그대로 졸아버렸다. 정신없이 졸다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도심을 한참이나 벗어난 뒤였다. 트램에 내려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가 어디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상관없다.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버스를 잡아타든 트램을 잡아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센트럴(Central)이라고 적혀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2층 구조로 되어있었다. 이왕이면 2층으로 올라가자는 생각에 계단을 따라 올라갔는데 트램과는 달리 에어컨 때문에 무지하게 추웠다.



비가 오니까 돌아다니기도 힘들어서 그런지 그냥 버스 위에서 홍콩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센트럴에 도착했음에도 나는 내리지 않았다. 다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버스에 내렸을 때는 홍콩인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으로 보였고, 근처에는 작은 공원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이런 것도 여행일까?

이미 비는 그쳤고 나는 주변을 터벅터벅 걸었다. 이미 홍콩에서 야경도 보고, 중심지도 걸어봐서인지 딱히 다른 목적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원래 내 여행이 멋있는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적도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공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구룡반도로 넘어 갔다.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에는 바다가 있는데 지하터널 때문에 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했다. 원래는 침사추이로 직접 갈 생각이었지만 버스는 침사추이 근처만 가고 다시 어디론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맙소사! 한참 뒤에 내린 곳은 거대한 아파트만 몰려있던 곳으로 나 같은 여행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근처에 있던 쇼핑센터를 구경한 후에 아래에 있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몇 정거장 뒤에 보였던 MTR역 앞에 내렸다. 확인해 보니 메이푸(Mei Foo)역이었다. 이제는 쉽게 MTR을 타고 침사추이로 갈 수 있었다.  홍콩섬에서 헤매다가 구룡반도로 넘어와서 다시 헤매고, 그러다가 침사추이로 돌아오는 어찌 보면 한 것도 없는데 무척 힘든 여정이었다.



침사추이로 돌아오니 이 거리가 너무 반가웠다.



거리에 사람은 많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숙소로 돌아가 좀 쉬기로 했다.



청킹맨션 내부도 역시 사람이 많았다. 주로 인도계 사람들이 가득했던 곳이라 그런지 카레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여행자를 위한 싸구려 숙소가 많아서 그런지 오래된 건물이어도 여전히 인기가 많은 곳이다.

나는 다시 좁디좁은 숙소에 돌아와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트램 타고, 버스타고, MTR을 타고 다녔지만 몸은 걸어 다녔을 때보다 더 피곤했다. 우선 잠이나 자자!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 어두워졌다. 당장 내일 한국으로 들어가는데 인터넷이 하고 싶어서 PC방으로 향했다. 스타페리 근처 옆 건물에 있었던 PC방에 가서 잠시 인터넷도 좀 하고, 시간을 보냈다. 나의 긴 여정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어졌다. 다시 또 언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장 생각나는 건 집에서 편히 쉬는 싶다는 것뿐이었다.



PC방에서 나오니 또 비가 쏟아졌다. 홍콩에 있는 동안 비도 무지하게 맞고 돌아다녔는데 마지막 날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너무 고파서 저녁을 먹으러 템플 스트리트로 향했다.

이번에는 싸구려 국수를 먹지 않기 위해 새로운 식당을 찾아보고 싶었다. 주변을 걷다가 한 식당에서 면요리를 먹었다. 30홍콩달러였는데 생각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어째 홍콩에서는 싼 음식이 더 맛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배가 차지 않아 곧바로 다음 음식을 먹으러 갔다. 항상 여행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지 않는가.

이 주변에는 먹고 싶었던 음식이 많아 무척 좋았다. 이번에는 딤섬 가게로 갔는데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영어 메뉴판을 보여줬다. 하지만 영어 메뉴판을 봐도 도무지 무얼 주문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그래서 자주 먹는 딤섬이 뭐냐고 물어보니 한 가지를 추천해 줬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었던 딤섬도 하나 추가했다.



하나는 새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하나는 돼지고기였던 것 같은데 배부르긴 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배가 너무 불러 천천히 숙소를 향해 돌아가고 있는데 또 먹을 게 보였다. 이곳을 지나가다 자주 봤었는데 특이한 간식거리인 듯 언론에 소개되어있다는 종이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유명해 보여서 하나 사서 먹었다. 아주 저녁은 계속 먹기만 하는구나. 이름은 모르는 이것의 맛은 바삭한 땅콩과자에 땅콩이 없는 그런 맛이랄까. 아니면 붕어빵 옆에 붙어있는 부스러기 맛? 생각보다는 평범했다.



늦은 밤, 나는 홍콩의 마지막 야경을 보기 위해 바다로 향했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는데 몰두하고 있었고, 나 역시 바람을 맞으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이자 홍콩에서 마지막 밤에 바라본 야경이었다. 이제 1년간의 여정이 끝이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다시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6개월 뒤에 나는 미얀마로 떠났다)



분위기는 으슥해보였지만 나름 괜찮았던 청킹맨션도 왠지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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