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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여행자는 보츠와나를 그냥 지나친다. 아무래도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데다가 물가도 비싸 굳이 여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보츠와나는 오카방고 델타를 비롯해 야생 동물이 가득한 국립공원이 있어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누군가는 보츠와나를 다이아몬드가 많이 매장되어 있어 '보석의 나라'라고 하는데 비단 눈에 보이는 것만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잠비아 리빙스톤에서 보츠와나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대신 쉐어택시로 쉽게 국경을 갈 수 있었다. 물론 4명 꽉 채워서 가는 택시이긴 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대여섯 명을 태우던 것에 비하면 훨씬 쾌적하게 국경까지 갔다. 게다가 거의 1시간 달리는데도 35콰차 밖에 하지 않았다.

 

잠비아에서 보츠와나 국경을 넘을 때는 그 사이를 막고 있는 잠베지 강을 건너야 했다. 당연히 다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배를 타야 했다. 2콰차 혹은 2풀라를 내면 반대편까지 데려다 준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 사람의 사진을 찍어 주던 한 잠비아인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이 부근에 한국 사람이 많다고 일러줬다. 알고 보니 이 강을 연결하는 다리를 한국 기업이 건설 중이다.

 

국경 부근 카사네(Kasane)에서 게임 드라이브(일종의 사파리 투어라고 보면 되는데 주로 남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야생 동물을 보러 가는 것을 게임 드라이브라고 부름)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하고 한 번에 많은 동물을 볼 수 있어서인데 나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카사네를 지나쳤다. 대신 배낭을 메고 도로를 걸을 때 무수히 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줘 웃음이 절로 났다.

 

나타(Nata)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가 넘어 이곳에서 하루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목적지는 마운(Maun)이었으나 아무리 빨리 가도 3시간 이상 걸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기란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숙소를 찾는 도중 미국인 여행자를 만나 같이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버스가 없었다. 남한의 6배나 큰 나라임에도 인구는 고작해야 200만 명에 불과해서인지 이곳의 대중 교통은 최악이었다. 현지인들도 히치하이킹이 일상이었다. 다만 내가 유럽과 중동에서 하던 그 히치하이킹과는 개념이 조금 다른 그야말로 버스 대신 타고 돈을 내야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차를 타려고 기다리느라 좀처럼 우리 차례는 오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해는 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오늘 꼭 마운까지 가겠다는 미국인 친구와는 헤어지고 다시 숙소를 찾아 나섰다. 가장 저렴한 숙소에 가서 가격을 물어봤는데 무려 300풀라나 했다. 가격은 절대 안 깎아주고, 마땅히 텐트를 칠만한 장소도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묵게 되었다. 역시 보츠와나 물가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비쌌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마운으로 가는 차를 쉽게 잡았다. 외국인이 탔으니 여러 질문을 했고 그때마다 나름 훈훈한 분위기 속에 대화가 이어졌다. 애초에 돈을 안 받을 것으로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운에 도착하마자 60풀라를 주니 원래 70풀라를 받아야 한다며 10풀라를 더 요구했다. 당연히 줘야 하는 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뭔가 어색했고, 아쉬움이 느껴졌다. 히치하이킹을 하며 돈을 줬던 적도 처음이었다.

 

여행자들이 묵는 숙소는 대부분 시내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무거운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말라위 이후 물가가 급격하게 비싸져 텐트를 치는 일이 많았는데 특히 보츠와나에서는 이틀을 제외하고 항상 텐트에서 지냈다.

 

숙소 부근을 잠시 걸어봤다. 특별히 볼만한 것도 없었고, 날씨도 무척 더워 금방 돌아왔다.

 

숙소 앞에는 작은 못이 있는데 이곳에는 악어가 산다. 무시무시한 악어가 이런 곳에 산다니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는데 아침에 숙소 직원이 믿지 못하는 나를 불러서 확인까지 시켜줬다.

 

마운 시내는 제법 도시처럼 보였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고, 30분 정도 걸어보니 정말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운은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 서양인 여행자가 꽤 보였다.

 

보츠와나가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나 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이나 먹거리는 하나에 50원, 100원 정도다.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어린 아이들의 간식 거리인 싸구려 아이스크림을 하나 집었다. 색소와 설탕을 넣어 얼린 것에 불과하지만 이런 더운 날에는 비싼 아이스크림 보다 훨씬 낫다.

 

마운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의 목적은 오카방고 델타(삼각주)로 딱 하나다. 앙골라부터 내려오는 오카방고 강의 하류인 보츠와나에서 늪지가 형성되는데 여기를 배를 타고 둘러보고, 야생 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 마침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 체코인 마틴과 독일인 사이몬과 친해져 함께 오카방고 델타에 가기로 했다. 우리 외에도 다른 여행자 몇 명이 함께 하게 되었는데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행자였다. 그들은 오카방고 델타에 가는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조금이라도 싸게 가고자 하는 우리는 텐트와 음식을 모두 준비해서 갔다. 물론 1박 2일간 친해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와는 거리감이 조금 있었다.

 

오카방고 델타 여행을 시작하면 모코로라는 나무 배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무로 만들어진 배였다.

 

사막으로 가득한 보츠와나에서 오카방고 델타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바다처럼 거대한 호수를 많이 보곤 했는데 이곳은 강의 하류에 형성된 늪지다 보니 잔잔했고, 바닥이 보일 정도로 얕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노가 아닌 긴 막대기로 바닥이나 주변에 있는 바위 등을 밀어 배를 움직였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소음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이 공간에서 조용히 배는 앞으로 나아갔고, 우리는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활짝 핀 연꽃이 주변에 가득했다.

 

파란 하늘 아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약 1시간 가량의 이동 끝에 육지에 도달했다. 여기가 오늘 하루 머물 베이스캠프였다. 돈을 많이 내고 투어를 신청한 다른 여행자들에게는 커다란 텐트뿐만 아니라 의자, 그리고 저녁 식사까지 준비되었다. 우리는 알아서 남는 공간에 텐트를 쳤다. 의자가 없는 우리는 그냥 땅바닥에 앉았다.

 

오카방고 델타 투어는 모코로를 타고 늡지를 여행하는 것 말고도 국립공원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다만 우리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프로그램이 부실해 베이스캠프에서 2시간 이상 쉬기만 했고, 해기 지기 직전에야 나갔다. 이런 와중에 날씨가 급격하게 안 좋아져 비까지 내렸다.

 

아프리카에서 정말 흔하게 보던 얼룩말은 여기에도 있다. 얼룩말은 어찌나 경계심이 많던지 아주 멀리서부터 우리를 쳐다보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동물을 보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야생 동물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풍경은 평범했다.

 

저녁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준비된 다른 여행자와 달리 마틴과 사이몬 그리고 나는 직접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전날 미리 장을 봤던 재료로 밥을 하고, 통조림 콩과 보츠와나에서 많이 먹는 소스를 끓여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가 다 된 후에는 밥 위에 올려 비벼 먹었는데, 이건 콩덮밥이라고나 할까?

 

우리 베이스캠프 바로 옆에는 트럭킹(개조한 트럭을 타고 남아프리카 지역을 도는 투어) 여행자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캠프파이어를 하며 가이드를 비롯한 보츠와나인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아프리카를 7개월 동안 여행했지만 어떤 게 아프리카스러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략 그런 느낌의 음악과 환호로 여행자를 즐겁게 해줬다. 공연을 마치고 베이스캠프 바로 옆길로 잠시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멈췄을 때 플래시를 모두 끄라고 했다. 그제야 작은 불빛이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딧불이었다.

 

우리 가이드로부터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마운으로 돌아간다고 들었을 때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짧은 일정에 우리는 약간의 황담함을 드러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셋에게 이야기 했던 것과 나머지 다른 여행자가 알고 있던 내용이 조금 달랐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새벽 6시에 출발하려는 것이 늦춰지게 되었고, 3시간 가량 더 하이킹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비가 내릴 때도 우리는 돌아가지 않고 더 걷겠다고 했다.

 

여기가 어딘지 계속 비슷한 길만 나와 분간하기 힘든 곳이다. 그런데다가 반바지만 입고 걸으니 풀에 베여 평지였음에도 마냥 편한 하이킹은 아니었다. 비 맞고, 풀에 베이다 보면 나무 사이로 기린이 보이기도 한다.

 

3시간 정도 걸었을 때 하마 무리를 만났다. 30마리가 넘는 큰 무리였지만 대부분 물 속에 있어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평온한 분위기를 망치는 두 마리의 하마가 있었다. 서로 누가 입이 더 큰지 커다란 입을 벌리며 싸움을 하는 모양인데 커다란 하마의 몸집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우리는 한참 동안 하마를 구경하다가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이렇게 1박 2일간 오카방고 델타 투어를 마치고 다시 모코로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는 삼각주로 들어오는 많은 여행자를 만났는데 좁은 길목에서 모코로가 부딪혀도 인사를 하며 서로의 배를 밀어주는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운에 도착한 나는 텐트를 다시 치고 휴식을 취했다. 그에 반해 마틴과 사이몬은 떠날 채비를 했다. 아무래도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고 있었으니 나보다 이동이 자유로워 조금 늦어도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유럽에서부터 서아프리카를 여행한 이 친구들을 만나서 조금 자극을 받았다. 처음 내가 계획한 여행도 서아프리카 여행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잠깐 이제부터라도 서아프리카쪽으로 여행해볼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미 아프리카에서만 7개월이라 지치기도 했고, 비자 받기도 어려운 서아프리카를 여행할 자신이 없어 이내 단념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다시 아프리카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서아프리카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운에서 하루 더 머무른 후 텐트를 접었다. 원래 이른 새벽에 나가려다가 텐트 밖으로 나가지 못한 이유가 너무 추워서다. 낮에는 그리 춥지 않았지만 아침과 밤에는 꽤 쌀쌀했다. 그 때문에 조금 느긋하게 준비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늦은 9시에 수도 가보로네(Gaborone)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보로네에는 11시간 후인 오후 8시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에 도착한 것도 난감했는데 그날 가보로네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버스에 내려 배낭을 챙겨 들고 재빨리 지붕이 있는 곳으로 뛰었지만 이미 홀딱 젖은 뒤였다. 택시를 타고 가보로네에서 가장 저렴하다고 하는 모코로디 백팩커(Mokolodi Backpackers)에 가려고 했지만 터무니 없이 비싼 150풀라를 부른다. 11시간 타고 온 이 버스가 192풀라였는데 택시가 150풀라라니. 그러나 방금 막 도착한 여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남아공과 가까운 가보로네는 훨씬 추운데다 비까지 내려 빨리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쉬고 싶었다. 결국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해서 100풀라까지 깎고 모코로디 백팩커로 갔다. 보츠와나 물가가 비싸지만 수도 가보로네는 훨씬 비쌌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봐도 배낭여행자가 묵을 저렴한 숙소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모코로디 백팩커가 싸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시내에서 엄청나게 멀고, 그 싼 숙소도 평소 내가 묵는 곳에 비하면 2배 이상이었다.

 

간혹 아프리카는 무더운 날씨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남반구에 있는 나라들은 확실히 6월쯤 되면 무척 추워진다. 가보로네는 남아공 국경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확실히 마운에 비해 훨씬 추웠다.

 

모코로디 국립공원 부근이라 그런지 숙소 내에는 각종 동물이 가득했다. 개나 닭은 물론이고 공작도 한 마리 있었으며 수영장에는 오리가 헤엄치고, 커다란 돼지는 킁킁 거리며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아무리 그래도 숙소에 돼지가 있는 건 처음 본다.


말라위나 잠비아도 그랬지만 여기도 쇼핑센터 중심으로 도시가 구성된 모양새다.

 

사실 곧장 다음 나라인 나미비아로 가면 되는데 굳이 남아공과 가까운 가보로네까지 내려온 이유는 딱 하나다. 전 직장 선배로부터 친구가 보츠와나에 살고 있으니 한 번 만나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설령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행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소개해준 선배의 호의였다. 어색하긴 했지만 난 사람 한 명 더 만나는 것이 때론 관광지를 가는 것보다 더 즐겁고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난생 처음 보는 회미 누나를 그것도 보츠와나에서 만나게 되었다. 예상외로 전 직장 선배와 연결점이라는 게 오로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것 하나라는 사실에 놀랐다. 누나는 처음 만난 나에게 점심을 사주고, 저녁에는 맥주를 사주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 담근 김치를 가져다 줬다.

 

내가 묵고 있던 숙소는 캠핑카를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잠깐 거쳐가는 곳이라 배낭여행자는 많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몇 명의 여행자와 친해졌다. 우리는 숙소에서 수다를 떨다가 마운으로 가는 여행자 배웅도 할겸 내 버스표도 예매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나미비아 빈트후크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메인몰(이름은 메인몰인데 거리 이름이었다) 주변을 걷다가 소시지 굽는 냄새에 이끌려 하나씩 집어 들었다.


회미 누나로부터 김치도 받았겠다 한국에 가봤다는 스위스인 앤디에게 김치찌개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앤디는 내가 한국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눈을 반짝일 정도 좋아했다. 너무 기대는 말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다행히 이날 내 김치찌개는 다른 재료 없이 참치와 양파만 넣고 끓였는데 제법 괜찮았다.

 

원래 한국 요리를 정말 좋아하던 친구이긴 했지만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는 말은 수없이 했다. 혹시 김치찌개 때문일까? 앤디는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면 꼭 다시 한국으로 여행갈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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