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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페에서 만났던 인걸이형과 지영누나와 함께 불가리아에 도착했다. 나중에도 계속 등장하는 이 두 사람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한국인 중 가장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다. 물론 인걸이형은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지내 한국어가 가끔 서투를 때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국적은 한국인이다.


소피아에서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 호스텔을 체크인하고 나가려는데 지영누나가 날 다급하게 불러 게시판을 가리켰다. 그곳엔 무려 내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이름에 블로그명까지 같다는 건 우연의 일치라고 넘어가기엔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래서 떼어내 확인해 보니 세르비아에서 만났던 원석이형과 미영누나였다. 엽서를 남긴 날짜를 확인해 보니 4월 21일. 내가 1달 내로 소피아에 올 줄 예상하고 남긴 것 같은데, 실제로는 내가 이 엽서를 확인하기까지 거의 3달 걸렸다. 정말 너무 신기하고 고마웠다.


우리는 호스텔을 나와 곧바로 한식당부터 찾아갔다. 지영누나는 3주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짧은 일정이라 한식을 안 먹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몇 달간 한식을 먹지 못한 나와 인걸이형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 함께 갔다. 맛은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그리스의 한식당보다는 몇 배 더.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비보잉을 구경했다.


다음날 인걸이형은 날씨가 너무 덥다며 소피아를 떠났다. 불가리아가 처음도 아니고 소피아도 이미 여행한 곳이라 시원한 바다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소피아는 그저 바다를 가기 위해 잠깐 거친 것 뿐이었다.


유난히 불가리아에서는 배낭여행자가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터키와 가까워서 그런 것 같다.


소피아는 생각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가볍게 하루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불가리아 정교회가 대다수인 나라지만 간혹 이슬람 사원도 볼 수 있다. 사원 내부를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는 지영누나의 말을 듣자마자 함께 들어갔다. 내부를 둘러보는 도중 어떤 사람이 2층도 안내해줬는데 이곳은 여자들이 앉는 공간이라고 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이슬람 사원을 가봤지만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소피아에서는 온천이 음용수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만져보니 따뜻했다.


가끔씩 보이던 사자들은 한결 같이 표정이 애처롭다.

 

소피아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장미로 유명한 불가리아라 그런지 장미 와인이 있었는데 정말 웃기게도 직원은 프랑스산 장미 와인을 추천해줬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가리아산 와인을 골랐다.

 

오랜만에 트램이 지나다니는 도로를 보니 꽤나 복잡해 보였다.


날씨가 더운 만큼 밤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다.


당연히 맥주가 빠질 수 없다.


날이 더 어두워졌을 때는 알렉산드르넵스키 대성당으로 가서 야경을 구경했다.


돌아오는 길에 본 건물에 붙어 있는 조각상. 조명에 더 무섭게 보인다.


소피아는 오랜만에 큰 도시에 왔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지만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영누나는 일정이 짧았기 때문에 빨리 소피아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나는 그저 쫓아갔다. 먼저 릴라 수도원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버스 타고 거의 3시간 걸려 도착하자마자 파김치가 됐다.


너무 배고파서 먹을 것부터 찾았는데, 굉장히 익숙한 맛이 났다.


불가리아인데 요거트가 빠질 수 없다.


릴라 수도원을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다만 수도원 내의 벽화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동화풍이지만 선악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데다가 매우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해 이전에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의 벽화였다.

 

수도원을 잘 살펴보면 기둥과 지붕 사이에 독특한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릴라 수도원에서 소피아로 돌아오자마자 플로브디프로 이동했다. 저녁 7시 버스를 타서 9시에 도착해 목적지인 올드타운까지 걸어가는데 땀으로 범벅이 됐다.


불가리아에서는 유난히 고양이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실제 고양이도.


플로브디프의 올드타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둡고 조용했다. 도착한 시각이 늦기도 해서 그냥 바로 옆에 있던 바에서 공연도 볼 겸(사실은 듣기만 했다) 맥주를 마셨다.

 

먹을 것을 달라고 기다리는 고양이들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간혹 너무 빤히 쳐다봐서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벨리코터르노보로 가는 버스가 오후 12시 30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일단 플로브디프를 오전에 빠르게 둘러본 뒤 마음에 들면 더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자고 결정했다.


나무로 된 건물과 돌로 이루어진 거리가 인상적이긴 했지만 플로브디프에서 더 머물러야 할 만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로마시대 극장도 멀리서 보기만 했을 뿐 들어가진 않았다.

 

시계탑이 있는 언덕도 올라가봤다. 굉장히 높은 곳에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언덕이 너무 낮아 시계탑까지 금방 갔다. 플로브디프와 올드타운 주변 경치를 바라보다가 바로 내려왔다. 그리고 결정했다. 오늘 벨리코터르노보로 떠나자고.


그래서 짐을 싸고 터미널로 갔다. 여유 있게 도착한 건 아니지만 15분 전에 도착했는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벨리코터르노보로 가는 버스는 여기가 아니라 다른 터미널에서 타야 한다고. 우리는 정말 바보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버스는 여기서 타는 줄 알았던 거다.


택시를 타고 헐레벌떡 달려갔지만 이미 12시 30분 버스는 떠난 뒤였다. 다행히 12시 30분이 막차인 줄 알았는데 4시 30분에 버스가 한 대 더 있었다. 일단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근처를 돌아봤다. 뜨겁고 황량했던 거리 주변에서 카페를 하나 발견해 그곳에서 피자와 맥주로 점심을 해결했다. 거의 2시간 30분 이상 그곳에서 느긋하게 지내다(밖은 너무 더웠다) 터미널로 갔다.


벨리코터르노보행 버스는 이랬다. 버스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더 문제는 버스에 탄 이후였다. 에어컨이 고장이 났는지 아니면 가스가 없는지 그야말로 찜통 그 자체였다. 4시간 동안 땀에 절어 이동해야 했다.


벨리코터르노보에 도착한 이후 곧바로 어른 입맛인 누나와 달리 아이 입맛인 나의 취향을 존중해 아이스크림부터 사먹었다.


산 위에 있는 도시라 다른 경치를 선사해줬다.


마침 벨리코터르노보에서는 포크댄스 축제 중이었다. 늦은 시각에 도착해 할 일도 없었는데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팀은 이미 공연을 마쳤는지 우리가 봤던 날에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긴 우리가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가 10시였으니 그럴 만하다.


성조기를 들고 발랄한 춤을 추던 미국팀은 구경만 해도 절로 신났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중미의 한 나라의 공연은 역시 이국적이라 표현해야 할까.


포크댄스에서 가장 박수를 많이 받았던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조지아다. 굉장히 박력 있는 춤으로 마치 무술을 보는 듯 공중에서 자세를 잡거나 무릎만 이용해 바닥에서 팽이처럼 계속 도는 등 보는 것만으로 눈이 즐겁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분명 이번 여행 중 누군가 나에게 유투브 영상을 보여주며 이게 바로 조지아 춤이라고 알려준 적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조지아에 있을 때였나.


모자나 표정만 봐도 멕시코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움직이면서 바닥에 구두를 치는 식으로 박자를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음날 낮부터 본격적으로 벨리코터르노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성당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독특한 부조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도 고양이는 많다.


해가 너무 강해서 사진을 찍기 힘들었지만 산과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은 제법 괜찮았다.


벨리코터르노보에서 볼거리라 할 수 있는 성, 정확히 말하면 차르베츠 요새를 보러 갔다. 뭐라도 보러 움직이는 건 좋은 일인데 정말 이날은 날씨가 너무 더워 미칠 것 같았다. 얼굴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 눈에 들어갈 정도랄까.


요새의 타워를 따라 이동했다. 지금도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닌데 과거에는 다리로 다른 성까지 연결되어 있어 훨씬 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새 가운데 있는 정교회를 들어가봤다. 평소라면 크기가 작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테지만 내부에 그려져 있던 벽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천천히 이동하는 지영누나 덕분에 요새에서 3시간을 보낸 것 같다.


요새를 보고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맥주병뚜껑을 모으던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던 누나는 새로운 맥주를 마주하자 신났다.


날씨가 너무 더워 수박을 사서 먹었다. 정말 달았다. 최근 먹어본 수박 중 가장 달았을 정도로.


벨리코터르노보의 야경이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차르베츠 요새에서 레이저쇼를 한다면 모를까) 눈에 띄는 장소는 몇 군데 있다. 언덕을 기준으로 아래로 내려가면 말조각상과 함께 거대한 기둥이 있는데 밤에 조명으로 비춘다.


내려가면 마을의 야경도 볼 수 있다.


원래 지영누나는 벨리코터르노보에서 이틀만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꼬임에 넘어가 하루 더 머물게 되었다. 하루 더 같이 여행하게 된 우리는 호스텔 주인 밀라가 동네 음식점을 안내해주며 맛볼 수 있는 ‘음식투어’를 했다. 총 8군데를 이동하며 조금씩 불가리아 음식을 맛봤는데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괜찮았다. 무엇보다 팁을 줘야 하는 ‘프리 워킹투어’와 달리 밀라는 팁도 안 받았다.


여러 가지를 먹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카바르마였다. 우리나라 찌개를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디저트로 먹었던 이것도. 모양이 독특한데 달달했다.


투어를 마치고 지영누나의 기차표 예매를 위해 돌아다녔다. 그리고 시장에서 슬러쉬를 사먹었다. 정말 무지하게 더웠다.


장미로 유명한 불가리아에 장미 음료수도 판다. 호기심에 마셔봤는데 맛은 2% 부족한 그 맛이랄까.


저녁에는 다시 포크댄스 축제를 보러 갔다. 혹시라도 한국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조지아, 불가리아, 멕시코, 콜롬비아 등의 춤이 이어졌지만 한국팀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멀리서 한복이 살짝 보였다.


드디어 한국팀이 등장했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태극기를 보니 괜히 기분이 뿌듯해졌다.


성신여대 학생으로 들은 것 같은데 예상했던 것처럼 장구와 북을 이용한 공연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다른 팀에 비해 차분한 연주와 춤이 이어졌으나 이내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벨리코터르노보에서 3일을 지낸 지영누나는 다음날 오전에 루마니아로 떠났다. 나에게 20레바를 쥐어주며 밥이라도 사먹으라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여행했던 한국인이라 헤어짐이 아쉬웠다.


난 벨리코터르노보에서 이틀을 더 보내기로 결정하고 숙소를 옮겼다.


누군가와 헤어진다고 너무 슬퍼할 것 없다. 여행자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한국말을 꽤 잘했던 프랑스인 힐만과 나이는 나와 10살이나 차이 나던 파릇파릇한 동생 철호를 만났다.


벨리코터르노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흑해에서 가장 큰 도시 바르나였다.


난 7개월 전에도 흑해를 바라봤었다. 다만 그때는 조지아에 있었지만. 아무튼 같은 바다를 다른 장소에서 바라보니 그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있던 숙소는 파티형 호스텔이라 매일 술 마시고 노는 분위기였다. 하루 정도야 괜찮아도 그 이상 오래 있을만한 곳은 아니었다.

 

숙소가 골든샌즈(Golden Sands)와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난 바르나 시내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걸이형을 다시 만났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바르나를 미처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다시 돌아보니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언제든지 바다에 들어갈 수 있고, 카페와 식당은 무척 저렴했다. 정말 늘어지기 좋은 도시였다.


홍합, 안주용 생선, 오징어튀김에 맥주를 2잔씩 마셨는데 1인당 6유로 밖에 안 나왔다.

 

흑해 바다가 예쁜 건 아니지만 서양인들도 휴양을 위해 많이 찾는다.


다른 데서는 주로 비둘기가 거리를 점령하곤 했는데 여기는 바닷가라 갈매기가 많다.


매서운 눈빛의 장군을 쳐다보는 갈매기를 보자 재밌다고 느껴졌다.

 

여행자를 위한 동상이라고 한다. 부디 나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로마시대의 목욕탕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오래된 교회의 벽면에는 나무 줄기가 감싸고 있다.


저녁이 되면 거리가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온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옆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던 이 부부가 인상적이었다. 아이는 옆에서 엄마를 계속 찾던데도 말이다.


밤이 되어서야 뜨거웠던 열기가 겨우 식었다.

 

화려하지 않은 바르나의 밤을 성당의 야경이 책임지고 있다.


바르나에서는 8일간 지냈다. 매일 덥고, 더워 미칠 것 같은 그런 날씨지만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항상 분수대 앞에서 뛰어 논다.


인걸이형은 너무 덥다며 골든샌즈쪽으로 떠났고 난 호스텔에서 다른 여행자를 만났다. 에콰도르인 수지는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만났던 적이 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우연히 이곳에서 다시 만났는데 사실 처음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당시 수지와 같이 여행하던 영국 애들이 술 마시고 새벽 5시에 들어와서는 주사를 부리는 바람에 엄청 짜증났었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며 대신 사과했지만.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미국인 케이틀린으로 강아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웃겼다. 우리는 해변에 가서 반나절 이상 앉아서 낮술 마시며 누워 있었다.


바르나에 있는 동안 일상적인 현지인처럼 움직였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익숙한 동네를 걸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날씨가 더우니 늘어져 있곤 했다.


호스텔에서 다른 여행자와 함께 해변에 있는 클럽에 가기도 했다. 무려 새벽 1시에.


라이브 연주에 분위기도 괜찮고, 맥주 한 병 정도 마시면서 놀기엔 정말 좋았다.


이들은 새벽 3시쯤 다른 곳으로 놀러 간다며 떠났다.


강아지 레미와 여행을 하고 있던 케이틀린의 모습이 재밌어 사진을 찍었다. 케이틀린은 터키로 떠났다.

 

원래 이날은 나도 떠날 계획이었지만 골든샌즈에서 3일만에 인걸이형이 돌아와 하루 더 연장했다.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고 바르나를 거닐었다.

 

블루문이라고 해서 해변으로 갔는데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불가리에서 보는 달이라 그런가.


다음날 엄청나게 망설였지만, 결국 바르나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물론 시간의 제약이 없는 여행자라 이미 바르나에서 8일이나 지냈는데 하루 더 있는다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엉덩이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을 느껴 떠나고 싶었다. 난 즉시 행동으로 옮겨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히치하이킹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 둘을 태우고 있던 스테와라고 했던 여자는 15km 정도까지만 태워줬고, 그 다음에는 미로라고 했던 남자가 목적지인 부르가스까지 태워줬다.


부르가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는 않았으나 딱 하루만 머물고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인걸이형이 추천해 준 소조폴이었다. 부르가스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이라 어렵지 않게 히치하이킹을 했다.


작은 도시인데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과 그들을 맞이하는 상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쩌면 다른 대도시보다 더 번화한 곳처럼 보였다.


흑해 바다는 항상 말하지만 깨끗하거나 다른 유명한 지역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거리에서 서커스를 하는 모습을 나 역시 즐겁게 구경했다.


호스텔에서 만난 호주인 빌과 로즈, 싱가포르인 샐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다음날에도 해변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만 여기는 미역이 너무 많아 수영하기 적합해 보이진 않았다.


소조폴은 바르나에 비하면 물가가 살짝 비싸지만 여기도 역시 늘어지기 좋은 곳이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른 여행자와 만나면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4일이나 머물렀다.

 

여기도 덥다. 그래도 밤이 되면 다른 여행자랑 길바닥에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건 무척 좋았다. 마지막 날에는 영국인 피비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다 새벽 2시에 돌아왔다. 여기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긴 했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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