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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에 도착하자 이런 문자를 하나 받았다.


[외교부] 귀하는 적색경보(철수권고)지역 포함국가 여행 중, 적색경보(철수권고)지역 체류여부 확인 요망.


적색경보(철수권고)는 외교부 여행경보 중 3단계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NATO가 무력을 사용한 코소보 사태가 있었던 곳이자, 수많은 학살이 있었던 곳이라 현재까지도 위험지역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매우 열악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수도 프리슈티나는 상당히 깨끗하고 활기찼다.


수도 프리슈티나의 가장 중심 도로라 할 수 있는 곳이 빌 클린턴으로, 우리가 아는 그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맞다.


코소보의 맥주 페이야(Peja)를 마시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프리슈티나의 규모는 매우 작아 하루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남쪽으로 내려왔음에도 다시 추워졌다. 근데 대낮이고 평일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아주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프리슈티나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내가 여행했던 다른 미승인국(사실 코소보는 미승인국 지위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한데 그 이유로는 세르비아만 격렬하게 반대하기 때문)이었던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수도 스테파나케르트나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 티라스폴에 비해 훨씬 차량이 많았다. 좁은 도로가 차량을 다 수용하기에 턱 없이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중심가를 몇 번이고 지나쳤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신기하게 나를 쳐다봤다. 여행자가 별로 없는 나라인데다가 아시아인은 더욱 보기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시 숙소에는 여행자가 거의 없었다.


숙소에 있던 강아지 한 마리와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시큰둥했다.


프리슈티나에는 몇 개의 독특한 건축물이 있는데 단연 돋보이는 건 도서관이다. 멀리서 보면 무슨 외계인의 우주선처럼 생겼는데, 가까이 가보면 거대한 철망이 건물을 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소보에는 알바니아계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코소보 국기보다도 알바니아 국기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약 8개월 만에 머리를 잘랐다. 앞머리가 너무 길어 입술 아래까지 내려왔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귀찮게 해서 미용실 가서 잘라버렸다. 덕분에 숙소 직원은 나보고 여기서 묵고 있냐는 질문을 했다.


프리슈티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그랜드 호텔 앞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기념품이나 티셔츠도 전부 알바니아 국기다. 코소보 국기를 찾기가 더 힘들다.


저녁에는 혼자 숙소에서 앉아 있었는데 한참 뒤에 이 친구들이 나에게 같이 맥주를 마시지 않겠냐며 말을 걸었다. 이들은 아침에 코소보에 도착한 무리들로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몇 분 이야기를 하다가 내 오늘 머리 기억하고 있냐고 했을 때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그제야 내가 긴머리의 여행자와 동일 인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틀간 묵었던 숙소가 마음에 안 들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같은 가격이었는데 시설은 훨씬 좋아 마음에 들었다. 다만 다음날 하루 더 연장하려고 했을 때 단체 여행객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체크아웃을 했다.


책과 관련된 어떤 행사를 하는지 거리에는 책을 쌓아 놓은 부스를 만들어 놓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살펴봤다.


프리슈티나의 또 다른 상징물인 뉴본(NEW BORN)을 보러 갔다. 사실 대단한 건 아닌데 프리슈티나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꼭 여기다. 잠깐 스위스 여행자를 몇 명 만나 대화를 나눴다.


수도 프리슈티나에는 건물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히 알바니아를 등에 업고 있고, 국제 사회에서도 나라로서 인정하고 있어서 그런지 나고르노카라바흐와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비해 훨씬 도시다워 보였다.


빌 클린턴 동상이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독재자의 동상 같아 뭔가 웃기다.


세르비아의 니슈(Nis)에 비해 처음에는 가격이 비싸다고 여겨졌으나 조금 지내다 보니 비슷한 것 같다. 카푸치노 한 잔에 보통 0.70~1유로 정도다.


날씨가 따뜻해져 바닥에서 물줄기가 올라왔다. 역시 우리나라나 여기나 어린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올드타운쪽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아 천천히 걸었다. 이슬람 사원 중에서도 가장 거대해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한 바퀴 돌아보고 눈을 마주친 할아버지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에게 “포토그래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슬람 사원 바로 옆에는 재래시장이 형성돼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재밌는 게 사람구경과 시장구경인데 당연히 보고도 안 갈 수 없었다.


딱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다.


프리슈티나에서 3일 지낸 후 프리즈렌(Prizren)으로 급하게 떠났다. 그것도 떠나기 1시간 전에 결정할 정도로 사실 다음 목적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떠나기 전에 샌드위치를 사면서 주인 아저씨와 몇 마디를 나눴는데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무척 좋아했다. 어쩌면 여행자를 봐서 즐거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프리슈티나도 마찬가지였지만 프리즈렌은 훨씬 더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들의 눈초리와 웃음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소보가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건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특히 “차이나”라고 말을 걸어올 때는 더욱 더.


프리즈렌은 작은 강을 따라 몇 개의 다리가 있고, 중심가에는 커다란 이슬람 사원이 있다. 중심가는 정말 작은 편으로 몇 분이면 충분하다.


만약 어벤져스를 개봉했다면 여기서 봤을 거다. 아쉽게도 30일에 개봉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다음날 날씨가 좋으면 가려고 했던 요새를 올라갔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프리즈렌 시내가 한눈에 보여 정말 좋았다.


당연히 현지인들에게도 산책을 하기에 좋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요새를 내려와 너무 심심해 혼자 카페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거의 다 마셨을 무렵, 프리슈티나에서 만났던 미국인 그렉과 캐나다인 알렉스가 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엄청 놀라면서 어쩌다가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냐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시내 한 가운데 있던 이슬람 사원을 잠깐 들어 가봤다.


다음날 우리는 브라드(Brod)라는 작은 시골마을로 갔다. 작년 우크라이나 여행을 할 때 만났던 캐나다인 매튜가 며칠 전에 나에게 추천해 준 곳이라 알고 있었고, 이들 역시 다른 여행자에게 들어 브라드를 알고 있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작은 동네였다.


당연히 여행자는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으며 심지어 꼬마 아이들은 우리 뒤를 계속해서 쫓아왔다.


아름다운 산이 품고 있는 마을이 인상적이었다.


마을에는 소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


우리는 이름도 없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카드게임을 했다.


카메라를 꺼내면 수줍어하는 아이는 외국인 여행자가 신기한지 계속해서 쫓아왔다. 그렇다고 말을 거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자 담장 너머로 살펴보는 아이를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당연히 어른들에게도 우리는 관심대상이다. 이런 작은 마을에도 슈퍼도 있고, 바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는데 저녁엔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니 모든 사람들이 쳐다봤다. 때로는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별이 쏟아질 것만 같은 밤에는 마당에 모닥불을 피운 뒤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 우리는 말을 타고 산을 올랐다. 사실 브라드에 온 이유 중 하나가 국립공원인 이곳을 가기 위해서였다.


혼자서 말을 타본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몇 번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 알아서 잘 따라가서 큰 문제는 없었다.


거의 마케도니아 국경 근처까지 온 후 우리는 햇살을 맞으며 휴식을 취했다.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이곳의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기 직전에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말을 탄 채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을로 내려와서는 우리를 가이드해 준 아저씨와도 사진을 함께 찍었다.


마을의 중심부로 오자 빨간 형체가 바닥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름 아닌 소였다. 도축한지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 이제 막 해체를 하고 있었다. 핏덩이와 절단된 다리를 보자 끔찍하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신기했다.


이름도 없는 식당에는 메뉴도 없어 아무 음식을 먹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동네를 탐험한 결과 구멍가게가 무려 3군데나 있고, 식당은 1군데, 카페 1군데, 술집은 2군데 있다.


프리즈렌을 돌아와 바로 떠날까 말까 고민하던 도중 하루를 더 묵기로 결정했다.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던 그렉과 알렉스 역시 하루 더 프레즈렌에서 지내게 되어 우리는 여전히 3명이서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요새를 올라 경치를 감상했다. 역시 여러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고, 몇몇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밤에는 숙소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카드게임을 했다. 이 친구들과는 모이면 맨날 카드게임만 했을 정도로 정말 특이했다.


그렉과 알렉스는 알바니아로 떠났고, 나는 몬테네그로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북쪽으로 이동해 페이야(Peja)로 갔다.


적당한 숙소를 찾지 못해 2시간 동안 걸어 찾은 곳은 가장 쌌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싱글룸(정확히는 트윈룸)이었다. 가격은 무려 20유로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이후 처음으로 비싼 숙소를 묵게 되었다.


딱히 볼만한 게 없어 보였지만 일단 걷기로 했다.


프리즈렌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낯선 여행자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게 관심의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뒤에서 너무 심하게 웃어 때론 불쾌할 때도 있었다.


중심가의 시장에 있던 이슬람 사원을 들어갔다. 어느 할아버지가 마른 수건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포즈에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사원 내부의 불을 하나 둘씩 켜기 시작했다. 낯선 여행자에게 보내는 미소가 고마웠다.


시장을 지나면 카페가 가득한 거리가 나온다. 맥주나 한 잔 할까 했지만 마땅히 그래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발걸음을 돌렸다. 코소보 여행을 마무리할 시기인가 보다.


저는 지금 세계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든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 및 응원(클릭)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 현지에서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에게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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