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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상함’ 그 자체였다. 이른 아침 초인종을 눌렀을 때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 준 뒤 다시 자러 들어간 여자, 거실을 바라보니 좁은 소파엔 거의 껴안고 있다시피 자고 있는 두 남자, 멀뚱멀뚱 그들을 바라보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시간을 때우던 나, 이게 예레반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각자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여행자였지만, 무려 일주일간 좁은 공간에서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고, 그리고 함께 예레반을 여행했다.


우선 카우치서핑 호스트였던 벤과 빅토리아를 소개하자면 영국인과 시리아인이 결혼해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는 점부터 특이했다. 그들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여행객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도착했던 그날에도 저녁에 그리스인이 온다고 했고, 그 다음날에는 프랑스인 2명이 더 왔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카우치서핑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많은 여행자를 한꺼번에 받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행자가 얼마나 머물지 별로 개의치도 않았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호스트가 어디 있나?


물론 벤과 빅토리아 말로는 자신들도 이렇게 많은 여행자를 한꺼번에 받아 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카우치서핑을 통해 다른 여행자를 만나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그들은 최고의 호스트, 그리고 배낭여행자가 틀림없다.


다음은 소파에서 끈덕지게 붙어서 자고 있던 두 형제, 타다스와 레지다. 이들은 리투아니아인으로 영국에서부터 아르메니아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같은 여행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는데 둘째 날 펍에서 5시간 동안 술을 진탕 마시면서 친해졌다.


일단 이 두 형제의 여행은 특이하면서도 재밌다. 그 뿐만 아니라 나에게 도전 정신을 자극시키는 굉장한 여행자다.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그렇고, 여행을 하면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며 꾸준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무지하게 멋졌다. 내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타다스와 레지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날 침낭을 깔고 누워 있는데 타다스가 한국말 좀 들려달라고 했다. 난 아무생각 없이 “오빤~ 강남스타일!”이라고 운을 띄웠는데 빵 터져버렸다. 정말로. 어둠 속에서 타다스와 레지는 10분간 숨 쉬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그리고 프랑스인 여자 두 명 엘로이지와 올가가 있다. 모든 게 용서된다는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지만 이들의 여행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단했다. 사실 좁은 공간에서 침낭만 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바닥에서 잔다는 것 자체도 그리 쉽지 않을 텐데 엘로이지와 올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구멍 난 양말을 다시 신고, 찢어진 옷을 가리키며 웃음을 짓는 긍정적인 친구들이었다.


프랑스부터 아르메니아까지 육로로만 여행을 했고, 이란을 거쳐 인도까지 여행하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남자여도 쉽지 않은 여행일 것이라는 말에는 오히려 여자라고 못할 게 뭐가 있냐는 식의 대답을 했다.


어리지만, 아니 같은 여행자로서 존경을 표한다.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은 몇 명 더 있지만 주로 함께 생활하고 어울렸던 사람은 호스트인 벤과 빅토리아를 포함한 7명이다. 사진에는 항상 혼자 움직였던 그리스인 커스타드 아저씨도 포함돼 있다.


예레반 근교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매일 식탁에 둘러 앉아 저녁을 먹는 것도, 시끄러운 펍에서 맥주병을 부딪치며 밤을 지새운 것도 우리 사이를 가족처럼 만들었다. 아주 끈끈하게.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자 나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이 떠날 시기가 왔다. 떠나기 전날 호스트인 벤과 빅토리아를 위해 각자 자신의 나라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 나 역시 한국 음식인 수제비를 만들었다.


모두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요리를 하느라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지만 결과는 대성공. 최고의 만찬이었다. 심지어 난 내가 요리한 수제비 맛을 보고 내가 더 놀랐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극찬을 했다. 그러나 수제비는 끝내 그들이 아는 유일한 한국어 ‘강남스타일’로 인해 ‘강남스프’로 명명되었다. 수제비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이건 ‘강남스프’란다. 수제비를 수제비라고 부르지 못하다니.


다음날 그들은 떠날 채비를 마쳤다. 여기서 또 무지하게 웃긴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예레반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 와인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간 허름한 식당에서 홈메이드 와인을 한두 잔 마시다가, 아르메니아 아저씨들이 주는 와인을 받아 마시다가, 같은 여행자였던 그리스인 커스타드 아저씨가 와인을 쏜다고 해서 또 와인을 마시다 보니 이미 진득하게 취했고,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다가 밖에서 강남스타일 노래가 흘러나오자 나를 끌고 가더니 춤을 추기도 했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가면 뭐하나. 이미 예레반을 떠나기엔 너무도 늦은 시각이었다. 거리에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들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다시 벤과 빅토리아의 집이었다. 이 상황이 어찌나 웃기던지. 예레반을 떠나고 싶어도 쉽게 떠날 수 없나보다.


하루가 더 연장된 마지막 밤에 ‘강남스프’를 먹은 뒤 마피아 게임을 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와 타다스 뿐이라 게임하는데 혼동이 오긴 했지만, 세상에, 외국인들과 마피아 게임이라니. 뭐랄까. 굉장히 이상하지만 웃긴 상황? 이 마피아 게임 덕분에 우리는 마피아 패밀리가 되었다. 이를테면 “보고 싶다 우리 마피아”라며 서로의 페이스북에서 안부를 묻곤 했다.


와인으로 인해 떠나지 못했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이른 아침, 그들은 거짓말처럼 이란으로 떠났다. 그날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그리고 한동안 이란을 여행하는 그들을 보며 부럽고, 또 부러웠다.


어느새 시간은 한참 흘러 4달이 지났고, 나는 아르메니아에서 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서유럽까지 왔고, 그들은 이란을 여행한 후 동쪽으로 계속 이동해 네팔에 있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다.


덧1) 벤은 당시 있었던 일을 이미 블로그(http://benallen.ca/2014/10/27/a-tribute-to-family/)에 남겼다. 벤과 빅토리아에게도 잊지 못할 한 주였다고 한다.


덧2) 타다스와 레지는 블로그와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업데이트가 살짝 느려서 아직 아르메니아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았지만 정말 재밌다. 아래에 있는 조지아편 영상을 통해 그들의 놀라운 여행을 감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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