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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에 도착해서 구마모토를 제대로 구경할 수 없을거라 여겼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비가 촉촉히 내렸던 구마모토의 밤은 유난히 더 화려하게 보였는데 어쩌면 큐슈 제 1의 도시였던 후쿠오카보다도 밤이 더 아름다웠다. 일본인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거리를 꾸며놔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일본 여행을 하며 항상 지나치는 쇼핑 아케이드였는데 구마모토는 뭔가 좀 달라보였다. 아케이드 양옆에 배치되어 있던 가게의 깔끔한 간판과 더불어 찬장에서 떨어트린 조명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만들어줬던 것이다. 어찌보면 서구권 나라보다 일본이 크리스마스를 더 간절히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구마모토에서는 건물의 외벽과 가로수에도 일루미네이션 장식이 되어있었다. 덕분에 거리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도 않았다. 오히려 알록달록한 색상의 불빛이 거리를 수놓아서 도시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심지어 일루미네이션 관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착각을 하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촉촉해진 구마모토 거리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목적지는 바로 구마모토성이었다. 쇼핑 아케이드를 지나 길을 건너고 다시 멀리 보이는 구마모토 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가까운 거리를 심하게 돌아갔었다.


심지어 지도는 있었지만 방향을 잘못잡아서 더 멀리 가버렸다. 나야 그냥 그러려니하며 다시 방향을 틀어 내려가는 식으로 낙천적으로 생각해버렸다. 


멀리 구마모토성이 보였다. 화려한 조명 덕분에 구마모토성이 더욱 웅장해 보였다. 과연 일본의 3대 성은 뭔가 다르긴 했다. 늦은 시각이라 구마모토성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가까이 가면 구마모토성의 야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구마모토성만 바라보며 걸었다. 

그러나 내가 걸었던 그 길은 아주 좁고 어두웠다. 일본의 작은 집들을 지나 가로등도 거의 없는 어두컴컴한 골목을 걷게 되었다. 약간은 무섭고 으슥한 그런 골목길이었다. 중간중간에 가정집처럼 보이는 곳이 없었다면 경계를 하며 걸었을지도 모른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아주 좁은 도로가 나왔고, 가로등의 불빛은 무용지물이었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나마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많이 있어서 아주 어둡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걷고 걷다보니 결국 구마모토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마모토성의 벽만 볼 수 있었을뿐 입구를 찾아 또 돌아가야 했다. 가까운 곳에 입구는 있었지만 들어갈 수는 없어 보였던 것이다. 구마모토성의 야경을 정말 볼 수 있으려나.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나혼자 구마모토성의 야경을 보겠다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구마모토성 주변을 열심히 돌아봤지만 결국 입구에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야간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야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도 찾지 못했다. 어디로 가면 구마모토성의 야경을 볼 수 있는지 아직도 궁금할 따름이다. 조금 허무하기도 했지만 구마모토의 야경은 구마모토성만 있었던게 아니었으니 이번에는 시내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말 실제로 그랬다. 구마모토의 은은한 도시 분위기에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장식이 더해지니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마침 노면전차는 자동차들 틈바구니에서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가로수에는 밤에만 볼 수 있는 분홍빛 꽃이 피었다. 


밤에 도착한 내가 구마모토의 낮을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구마모토는 밤이라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사방을 둘러봐도 화려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시민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시 호텔이 있었던 아케이드로 돌아왔다. 매번 봤지만 일본의 가게들도 신기했고,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 멈춰선 택시들의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일본의 택시는 자동문이라서 그런지 항상 저렇게 문을 열고 있었다. 


비록 열심히 걸어서 다리는 많이 아팠지만 구마모토의 화려한 밤거리를 걷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원래 내가 이렇게 걸어다니며 도시를 구경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밤거리를 걸어보는 것은 누구라도 좋아했을거다. 게다가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니 더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