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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시계를 찾아 확인해보니 벌써 8시였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는데 내가 누워있던 방은 창문은 있으나마나 아주 작은 환기구 역할을 하던 것 뿐이었고, 침대 2개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공간이 없는 매우 좁은 방이었다. 방도 그리 깨끗하다고 느껴지지 않은 그런 방이었는데 이런 싸구려 방이 7달러였다. 다른 도시에서는 7~10달러 사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방에서 머물수 있었는데 확실히 양곤은 10달러 이상이어야 괜찮은 방에서 잘 수 있었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방의 상태가 아니라 바로 아침식사였다. 이 7달러짜리 싸구려 방에서 머물면서 화이트 게스트하우스의 자랑인 부페식 아침을 놓친다면 거의 3달러 이상을 버리는 셈이었다. 게다가 난 배낭여행자인데 아침식사를 포기하고, 밖에 나가서 먹을 정도로 부유하지도 않았다. 

얼른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있는데로 다 집어먹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으니 무척 배불렀다. 이정도면 점심까지도 문제없을거라 생각될 정도였다. 

곧바로 나는 배낭을 메고 체크아웃을 했다. 어차피 양곤에서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이 7달러짜리 방도 나에겐 사치라고 여겨졌다. 남은 돈도 얼마되지 않아서 하루를 버티기에도 버거울 정도였는데 돈을 아낀다는 생각으로 숙소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양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묵었던 마하반둘라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가격은 4달러로 무지하게 저렴하지만 숙소는 가장 허름했는데 나에게는 그냥 하루 머물기에는 충분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은 무지하게 더웠다.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내가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하반둘라 게스트하우스 부근에 도착하니 아저씨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하반둘라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였는데 나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괜히 반가웠다. 올라가서 할아버지와 다시 대면했고, 체크인을 했다. 4달러를 지불했는데 중간에 포함되어 있는 허름한 돈은 역시 받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런 손상된 돈은 받으면 껄끄럽다는 이야기를 하며 공항에서는 사용이 가능할거라 일러줬다. (하지만 공항에서도 사용이 불가능했다) 

마하반둘라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창문도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는 했으나 좁디 좁은 화이트 게스트하우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짐을 놓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한참동안 걸었는데 문득 내가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요 관광지는 이미 다 둘러본 상황이고, 돈은 별로 없어서 택시를 타고 멀리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날도 덥고하니 우선 인터넷이나 잠깐 하러 들어갔다. 고작해야 30분만 하고 나왔는데 가격은 200짯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카운터에 있던 직원은 나에게 200짯을 주고, 50짯짜리 1장, 10짯짜리 5장 묶음을 거스름돈으로 줬다. 


미얀마에서는 1000짯 아래의 돈들은 거의 걸레나 다름없을 정도로 심하게 지저분한데 이런 10짯짜리는 너무 단위가 낮아(사실은 단위가 낮다기 보다 최근 물가가 심하게 올라 쓸모가 낮아진 화폐들이다) 사용도가 많지 않았다. 대신 거스름돈은 줘야하니 가끔 볼 수 있었는데 그 때마다 스템플러에 찍혀 묶음의 형태로 받기도 했다. 돈이 그냥 지저분한 종이조각처럼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 걸으면 어김없이 보이는 것이 바로 발전기다. 작은 소형 발전기부터 거대한 발전기까지 인도의 한 귀퉁이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그냥 차지하고 있기만 해도 성가신데 하루종일 틀어놓아 양곤의 소음의 핵심 주범들이다. 하루 빨리 미얀마 전역에서 발전기가 필요없도록 전력공급이 좋아지길 소망해 본다. 


북쪽에 있을 때도 더웠지만 양곤은 지리적으로 한참 남쪽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더 더운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로 그 열기가 더해지기 마련이다. 


더울땐 아이스크림이 최고다. 500짯짜리 아이스크림인데 양은 그리 많지 않아서 조금 실망스럽긴 했다. 


다시 양곤 거리를 배회했다. 공원 근처에서는 어김없이 한사람씩 나타나서 나에게 말을 건다. 

"Change money?"

뭔가 음흉한 듯한 미소를 띈 이들은 환전을 하려는 외국인들을 보면 항상 접근을 해온다. 그러면서 허리춤에 있는 1000짯 뭉치를 꺼내 보이는데 "No!"라고 대답하면 금세 다른 친구가 와서 환전을 하겠냐고 물어본다. 친근함의 표시로 나에게 먼저 인사부터 한다. 

"곤니치와?"

이런... 


걷다가 옥수수를 파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분명 아침을 배부르게 먹기는 했지만 난 점심을 굶고 있는 상태였다. 2개에 500짯, 1개에 300짯이었던 옥수수를 보자 점심대용으로 먹겠다는 생각에 1개를 구입했다. 손가락 하나만 들어보이며 300짯을 건네줬다. 이 옥수수 하나가 나의 점심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계산을 해보니 300짯을 줬다고 생각했던 나는 250짯만 줬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스템플러에 찍힌 10짯짜리 5개 뭉치를 100짯으로 착각해서 생긴 문제였는데 괜히 옥수수 아저씨에게 미안해졌다.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랍니다. 

옥수수를 구입하고나니 1500짯만 남았다. 다음날 새벽에 공항으로 가는 택시비 4000짯만을 남겨두고 말이다. 사실 공항까지도 보통 5000짯정도 하는데 무슨 당당함인지 4000짯에 깎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남은 1500짯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양곤 거리는 흡사 시장과 같았다. 명백히 여기는 그냥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 좌판이나 보자기 등을 깔아놓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일부러 시장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긴 했지만 언제봐도 거리의 풍경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미얀마 사람들은 장사외에는 다른 생계수단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달력, 사진, 복제DVD, 라이터, 옷, 과일, 신발, 물, 꼬치 등을 평범한 거리에서 팔고 있었다. 

거리에서 보였던 꼬치는 먹어보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작은 통 옆에 여러 내장을 팔고 있던 형태인데 사람들은 그 통 주변에 앉아 꼬치를 소스에 담궈 먹었다. 생김새가 좀 이상해서 쉽게 도전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먹어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는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지 않았던 도로에 많은 차량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버스나 픽업트럭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람이 타도 금방 출발하지 않았다. 아마 일정 수의 손님이 타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는듯 했다. 픽업트럭이나 버스를 보면 꼭 손님을 불러 모으는 역할의 직원이 존재하는데 손가락 사이에 돈을 끼우고는 사람들을 보고 얼른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거리에는 미얀마에서만 볼 수 있는 씹는담배 '꽁야' 좌판도 쉽게 볼 수 있다. 

옥수수를 담은 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신기한 장면을 봤다. 거대한 얼음이 놓여져 있고 그 아래에는 용기가 있는데 컵으로 물을 담아 얼음 위에 붓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떨어지는 물은 얼음을 거치니 시원해지고, 그걸 물병에 담아서 팔고 있었다. 누구라도 느끼는 생각이지만 이 거리에서 먼지나 매연에 의해서 지저분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물을 담아서 팔다니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양곤 거리는 시장같은 분위기에 조용할 틈이 없었다. 곳곳에서 "자~ 골라골라 3개에 천원~" 이라는 우리의 시장처럼 구수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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