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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의 마지막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을 찾아갔다. 미얀마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지만 만달레이 역시 여행자가 먹을만한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고심끝에 숙소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었던 어느 식당을 선택했다. 식당에는 오래된 TV로 축구를 관람하는 미얀마 사람들이 몇 명 있었고, 조명은 거의 없어서인지 분위기는 조금 어두웠다. 그래도 가끔 이 식당을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외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음식이 맛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들어갔던 것이다. 


뭘 주문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아무거나 선택했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니 탕수육과 비슷해 보였다. 맛은 그냥 그랬는데 여기는 이상하게 밥의 가격을 따로 받았다. 내가 밥을 달라고 했던 것도 아닌데 밥을 주길래 공짜인줄 알았다. 괜히 돈을 더 내고 먹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찝찝하기만 했다. 


숙소로 돌아와 픽업차량이 오길 지루하게 기다렸다. 한참 후 차가 도착했다고 해서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갔는데 밖에서 쏘소와 오토바이 드라이버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떠난다고 하니 쏘소는 다음에 또 오라는 인사말을 했다. 픽업차량에 올라가자 오토바이 아저씨는 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픽업차량은 출발하자마자 1분도 되지 않아서 멈춰섰는데 바로 ET호텔 앞이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이탈리안 커플 마시모와 바라밤이 나타났고, 이 둘도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트럭에 올라탔다. 아무리 같은 장소를 여행한다고는 하지만 이탈리안 커플과는 계속 만나니 무척 신기했다. 마시모는 같아 따라탔던 외국인을 소개시켜줬는데 미국인이었다. 

픽업차량을 타고 만달레이를 돌았는데 정말 지루할 정도로 터미널에 도착하지 않았다. 바로 가면 좋을텐데 여러 사람을 태우기도 하고, 어디선가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니 1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지루함이 계속될수록 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져갔다. 

내 옆에는 엄마와 아이가 앉았는데 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이가 인형의 스위치를 건드리자 "헤헤헤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겹다 못해 졸리고 피곤하던 우리는 인형 웃음소리 덕분에 우리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버스터미널까지는 참 오래 걸렸다. 내 예상대로 나는 이탈리안 커플을 비롯해 미국인과도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니까 인레호수까지 가는 버스는 껄로도 지나가기 때문에 같은 버스였던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가득 메운 상태였다. 이탈리안 커플은 맨 앞자리에 앉았고, 나는 거의 뒷쪽이었다. 자리를 찾아가니 내 옆자리에는 아까 그 미국인이 앉아 있었다. 

버스는 40명 아니 50명도 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미 정원은 초과한 상태였는데 양좌석 가운데에도 의자를 놓고 사람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버스 안은 무척 더웠다.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는 어두운 만달레이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바깥 경치를 구경하고 싶어도 내 자리는 창가가 아닌 이유도 있었지만 어차피 밖에는 어둠만 보일 뿐이었다. 버스는 출발하자마자 TV를 틀어놨는데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짜증이 날 정도였다. 얼마나 시끄러웠냐면 바로 옆에 있는 미국인과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어쨋든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달리던 버스 위에서 나는 미국인과 재미있는 대화를 많이 나눴다. 놀랍게도 한국에 대해서 무척 잘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광주 옆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교사를 하다가 계약이 끝나서 잠시 여행을 하고 있었고, 다시 몇 달 뒤면 새로운 계약이 시작되어서 강원도로 간다고 했다. 나보고 강원도는 어떠냐는 질문도 했다. 자신은 미국의 시골에서 자랐다며, 강원도 생활도 재미있을거라며 웃음을 지었다. 

버스는 너무 더웠다. 그렇다고 창문을 열면 춥고, 다시 닫으면 더워서 못 견딜 정도였다. 잠시 우리는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는데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미국인과 나는 지겨워졌는지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혹시 한국을 여행할 때 불편한 점이 많이 있지 않았어?"
"물론 있었지. 한국은 분명 여행지도 많고, 대중교통도 아주 발달되서 좋은 나라야. 하지만..."

말끝을 흐리자 내가 "English?"라는 대답을 미리 해버렸다. 그랬더니 역시 맞다고 했다.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닌데 영어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면서 조금 더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영어를 좀 더 잘 말하고,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췄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못하는건 언어체계가 틀리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면 영어는 주어 다음에 동사가 나오지만 한국어는 그 반대...." 
"노노노노!"

내 변명에 미국인은 손을 저으면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어를 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못할 뿐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에 나는 "혹시 그건 우리나라가 거의 섬이라서 그런건 아닐까? 사실 우리는 어디를 가고 싶어도 북한때문에 비행기 타고 가야 하잖아." 라고 얘기를 했다. 미국인은 그런 이유도 어느정도 있을거라는 약간의 긍정을 했다. 

우리는 주제를 바꿔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한국 음식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릴 위에 올려 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삼겹살이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하지만 소주는 도저히 못먹겠다고 했다. 근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배가 고파서인지 서로 "오~ 삼겹살이 정말 먹고 싶어졌어!" 라고 말을 주고 받으며 상상을 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참 웃기는 상황이었다. 서로 삼겹살을 먹는 상상을 하며 침을 흘리는 한국인과 미국인은 미얀마 버스 안에 있었던 것이다. 

몇 시간을 달린 버스는 밤 10시쯤이 되었을 때 어느 레스토랑에서 멈췄다. 여기가 바로 휴게소였던 셈이다. 식당은 정신없어 보였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뭘 주문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 식당은 앞으로 나가 접시를 받는 형태였는데 정말 부실했다. 나와 미국인만 밥을 먹었고, 이탈리안 커플은 밥을 먹지 않았다. 


"대체 이건 뭐야? 먹을 수 있긴 한거야?"

실제로 그랬다. 닭날개로 보였던 뼈조각은 입에 물어봐야 아무것도 씹히지 않았다. 뼈만 내 입속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거의 밥만 밀어넣는 수준이었는데 12000짯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밥을 먹고 난 후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감자칩을 사먹었다. 사실 미국인이 먼저 샀는데 몇 개 건넨 과자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나도 샀던 것이다. 800짯에 이름도 없는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 과자를 받았는데 양은 꽤 많았다. 다만 미국인의 과자가 더 맛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이후로는 계속 졸았다. 몇 시간을 또 달리고 달렸는데 갑자기 버스는 멈춰섰고, 내부의 불이 확 켜지면서 "껄로우~ 껄로~" 라고 외쳐댔다. 나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껄로라는 소리에 겨우 잠이 깬 상태였고, 가운데 앉아있던 사람들을 비집고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밖으로 나가기 전에 맨 앞에 앉아 있었던 이탈리안 커플과 악수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미 내 배낭은 꺼내져 있었던 상태였다. 버스 직원은 "이게 네 배낭 맞지?" 라는 간단한 확인만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더니 버스는 정말 휭하고 사라졌다. 버스가 지나가자 주변은 칠흙같은 어둠이 내려 앉았다. 그랬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던 것이다. 나 혼자 버스에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지금 너무 춥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입에서는 입김이 계속 나왔고, 몸은 저절로 벌벌 떨렸다. 

내 뒤에는 위너 호텔이 보였다. 아...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우선 배낭속에 뒤지며 론리플래닛을 겨우 꺼냈다. 손을 떨며 흐릿한 가로등에 겨우 지도를 보며 위치감각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어느 아저씨가 나타나서는 자신은 트레킹 가이드라면서 숙소를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트레킹을 하고 싶냐고 계속 물어왔지만 이 아저씨의 물음은 대충 알았다고 넘어가고, 숙소부터 알려달라고 했다. 솔직히 너무 추워서 숙소가 좋은지 싼지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아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는 것은 저렴한 곳일거라 믿었다. 평소의 나라면 삐끼 아저씨와도 타협을 하거나 아니면 단호히 거절하는게 정상이었는데 춥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순순히 따라갔다. 

그렇게 따라간 곳은 이스턴 파라다이스 호텔이었다. 문을 두들기며 주인을 깨운 뒤 방을 살펴보니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 가격도 6달러로 저렴한 편이었다. 트레킹 가이드는 내일 찾아오겠다고 한 뒤 사라졌다. 나는 여기 체크인 한다고 했는데 주인 아저씨가 뭔가 더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늦은 새벽이니 우선 자라고 했다. 아마 내일 이야기하자는 소리일테다. 

실제로 나는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만달레이에서 껄로까지 무지막지한 소음버스에 몇 시간을 달려 도착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새벽에 도착한 나는 너무 졸려서 정신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 거의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근데 너무 추웠다. 가지고 있던 이불도 꺼내 같이 덮었다. 추위에 벌벌 떨다가 이불을 온 몸에 뒤집어 쓴 채로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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