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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로드가 내가 생각했던 '스타의 거리'가 아니었음을 알고 허무하긴 했지만, 나는 그 주변을 계속해서 걸었다. 당시 나의 상태는 슬리퍼만 신은 채로 홍콩을 누비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사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캄보디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닌 탓에 온 몸은 새까맣게 탔고, 홍콩의 습한 날씨 덕분에 온 몸은 끈적끈적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다리 아프다고 투덜대면서 뭔가에 홀린 듯 걷고 또 걸었다.


이 주변에 있던 란콰이퐁도 지나가 보았다.


좀 유명해 보이던 소호 거리도 거닐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호나 란콰이퐁도 내 기대치보다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냥 좁고 짧은 거리로만 보였는데 몇 개의 술집이 자리 잡고 있어서 저녁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홍콩에 있는 동안 다시 이곳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가이드북 없이 돌아다니는 홍콩이라도 배가 고픈 이상 더 이상 돌아다닐 힘이 없었다. 우선 무언가 먹어야 했다. 싼 음식점이 어디 있을까 찾아보다보니 아예 큰 거리로 나와 버렸다.


호주 멜번의 트램은 세련되었다면 홍콩의 트램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밥을 먹기 위해 구석진 어느 한 골목에 들어갔는데 도대체 무얼 먹어야 할지 난 완전히 까막눈이 되어버렸다.

난 바로 옆 식당에 들어가서 그냥 아무거나 주문을 했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주머니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아이를 불러다가 나의 주문을 받았다. 얼핏 생각해보면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가 무척 잘 통할 것 같은데 생각만큼 안 통하는 부분도 많았다.

밥을 먹고 난 후 공항에서 가져온 너덜너덜해진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가 무척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나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셈이었다. 사실 헐리우드로드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도 같이 찾아봤는데, 그렇게 찾을 때는 안 보이더니 생각보다 가까운데 숨어있던 것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신기하게 쳐다봤던 홍콩의 거리 모습이다.


다행스럽게도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헤매지 않고 금방 찾았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하고 올라 타보니 알게 된 것은 이 에스컬레이터는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동수단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쪽에는 거대한 산 위에 주거지가 형성되어있는데 걸어서 그 높은 곳을 올라가기 힘드니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편하게 올라가려고 만든 것이다.


마치 말레이시아의 페낭힐의 기차와 유사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곳도 그냥 교통수단으로 산 위와 아래를 연결해주는 것이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꼭 들리기 때문에 관광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에스컬레이터가 유명한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영화 '중경삼림'의 촬영 장소였기 때문이다.


에스컬레이터의 경사도 상당했지만 산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빌딩들이 계속 내 시선을 따라 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홍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왼쪽에는 에스컬레이터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지만 오른쪽에서는 걸어서 내려와야 했다. 높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위쪽이라고 해서 이 길만 있는 것은 아니고 도로도 있긴 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이긴 하지만 사실 중간 중간마다 끊어져 있었다. 좀 허무해 보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홍콩의 대표적인 관광 포인트라고 할 수 있으니 끝가지 올라가봤다. 과연 끝까지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 버렸다고나 할까.


계속해서 에스컬레이터를 갈아타면서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속도도 일반 에스컬레이터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올라가기 때문에 이 많은 에스컬레이터를 계속 타다보니 저절로 하품이 나왔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본 미들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이렇게 높은 산 위의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의 정상에 다 왔는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홍콩의 아파트들은 항상 높고, 빼곡하게 들어선 모습이 특징이었는데 실제 집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주거 공간이 무척 비좁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에 나 혼자만 남았다.


이제 끝인가 싶었지만 또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났다.

결국 끝까지 올라오긴 했는데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다. 원래 이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가 관광용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의 이동 수단이이라 그럴 수밖에. 어쩌면 내가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난 후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아서 이 다음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는 데만 해도 적어도 20~30분은 걸렸던 것 같은데 다시 똑같은 길로 내려가기는 싫었다. 너무 멀었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왼쪽과 오른쪽을 한 번씩 둘러보다가, 오른쪽은 내가 아까 헤매던 거리였기 때문에 아직 가보지 못한 왼쪽으로 나의 발걸음을 돌렸다.


멀리서 20홍콩달러에 그려져 있는 중국은행 타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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