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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로에서 지낸지도 3개월이 가까워졌을 무렵 우리는 또 한번의 '선택의 갈림길' 위에 놓이게 되었다. 먼저 뉴질랜드 친구들과 송선누나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다며 떠나버려서 우리들의 마음도 싱숭생숭한 상태였다. 그리고 난 후 닥쳐온 것은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4일 연속으로 쉬게 된 것이다. 그간 일을 하면 일주일에 4일정도로 돈을 별로 모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쉬어버리니 동생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상태에서 이동을 해야할까? 아니면 계속 일을 해야할까? 계속되는 고민이 내 머리속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7월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기가 무척 애매했다. 이대로 다른 곳을 이동해서 빠르게 정착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돈만 써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가 오던 날 우리는 캐러반 안에서 누워있는게 전부였다. 투닥투닥~ 캐러반 위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이미 우리의 텐트는 무너진지 한참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뉴질랜드 친구들이 떠났기 때문에 이 캐러반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랄까?

결국에는 떠나겠다는 것으로 결정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비가 그치자마자 캥거루백을 사무실에 반납했다. 당장 다음 날 떠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슈퍼바이저 오니는 이제 일주일이나 10일정도면 일이 끝날거라며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잠시 뒤에는 빅보스까지 찾아와서 일주일정도만 일을 해달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결론은 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해버렸다. 사과 피킹 시즌이 끝날 무렵이라서 그런지 일손이 많이 모자라는듯 보였다.

그렇게 일을 다시 했는데 이 때부터 돈을 좀 벌었다. 생각보다 돈을 벌게 되자 떠나지 않았다는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어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나의 경우는 이후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외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는데 새로 일을 하려고 오던 사람 중에 한국인이 2명있었다. 알고보니 배틀로 캐러반파크에서 지내고 있던 형들이었다. 어찌하다보니 약간의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형들이 주말을 이용해서 배틀로 캐러반파크로 놀러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족구, 스타크래프트 등 우리와의 일전을 준비중이라고 했는다. 배틀로 캐러반파크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에이스들만 뽑아놓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근데 막상 주말이 되니까 비가 또 무지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맥주 한 박스를 사들고 배틀로 캐러반파크로 내려갔다. 형들의 열렬한 환영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거기에서 지내는 많은 한국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캠프파이어도 못하고 족구도 못해서 무척 아쉬워했지만 한국인의 대표적인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곧바로 했다. 무려 8대의 노트북을 동원해 4:4를 하게 되었다.

5판 3승제로 하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너무 재밌었다. 특히 팽팽하던 4번째판에서 우리편은 나 혼자 남고 상대편은 3명이 남았는데 내가 다 이겼을 때는 정말 환호성이 터졌다. 상대팀의 형들이 워낙 재미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서 더 웃겼던거 같다. 근데 마지막 판에서는 졌다.

배틀로 캐러반파크는 확실히 우리와 분위기가 틀렸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화기애애한것 같았고 항상 재밌는 일이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산꼭대기에서 할 일이 없어 맥주만 마셨던 것과는 많이 대조되어 보였다.


그렇게 모여서 맥주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치킨과 피자도 사가지고 와서 먹으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우리가 돌아갈 때 형들이 너무 아쉽다며 뭔가를 챙겨줘야 겠다면서 라면이랑 짜파게티 등을 줬는데 옆에 있던 형은 내가 이녀석에게 질 수 없다면서 어디선가 더 많이 가지고 왔다. 그랬더니 다시 다른 형은 아예 봉지채 가지고 와서 다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완전 웃겼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지만 배틀로 캐러반파크에서의 하루는 정말 즐거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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