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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내가 너무 쉽게 봤나? 하나가 해결되면 하나의 문제가 생기고, 다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하지만 이미 수 많은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했던 사람들도 이러한 일들을 겪었을터 나 역시 고생을 알고 온거 아닌가?


나는 그래서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 생존게임

특히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사람은 어떻게해서든 호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돈도 없이 무작정 떠났기에 우선 돈을 벌어야 했고, 요리도 하나 제대로 못했지만 먹고 살려면 뭐든 만들어 먹어야 했다. 유난히 사람과의 갈등도 쉽게 일어나는것 같았다. 여기는 호주, 남한의 55배나 넓은 광활한 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 어떻게서든 살아야 한다.'

차를 가지고있던 형이 훌쩍 브리즈번으로 떠난 뒤 막막해진 상태에서 나에게 드는 생각이었다. 나와 함께 있던 혁철이와 곰곰히 생각한 끝에 대략 3가지 방안이 나왔다.

첫째, 이대로 브리즈번에 돌아가 새롭게 출발한다. 이건 너무 위험부담이 크고,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제외해버렸다. 우선 다시 시작할 여력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돈이 없다.

둘째, 농장으로 걸어서 출퇴근 한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미친짓이었다. 

셋째, IGA에서 만났던 한국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자초지종 사정을 얘기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마지막 희망의 끈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정말 세인트조지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이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어처구니 없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할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딱 5분 만난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선 살아야 했다.

한 2시간정도 우리끼리 이렇게 얘기한 뒤 전화를 걸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일을 하지 않았던 날이라 시간적 여유가 넘쳤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점심 먹는 것도 잊고 그쪽 캐러반파크로 갔다.


우리 캐러반파크는 세인트조지 입구에 있었던 팰리컨 캐러반파크였고, 다른 쪽은 세인트조지 중심가에 있었던 카마루카 캐러반파크였다. 사실 세인트조지 정말 작은 마을이었지만 걸어서는 이동하니 꽤 멀었다.

알게 된지 불과 2시간 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한다는게 사실 쉽지는 않다. 그만큼 절박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앞으로 우리를 태워다주기로 이야기가 나왔다. 어차피 같은 농장에 같은 팀이니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해줬다.

초반에는 참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이 곳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 때는 이후 이렇게 결심했다. '그래 나는 기필코 여기서 살아남을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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