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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칼리(Cali)였는데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의지와 관계가 없는 몸치라 살사는 더 이상 배울 수 없었으니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 생각했다. 반대로 종원이형은 춤바람이 아주 단단히 났던 것인지 칼리에서 더 지내겠다고 해서 혼자 살렌토(Salento)로 향했다. 

 

칼리에서 출발한 버스는 아르메니아(Armenia)에 도착했고 여기서 살렌토로 가는 작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살렌토에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호스텔로 가서 짐만 풀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와서 축축하게 젖은 길을 따라 마을의 중심가로 가봤더니 화려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집들이 보였다.

 

광장의 중심에는 포장마차처럼 여러 노점이 자리 잡고 있어 한 번쯤은 여기서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적하다 생각했는데 안쪽의 거리로 들어가 보니 제법 북적였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고 들었는데 기념품 가게가 많은 것을 보니 정말인가 보다. 

 

살렌토는 작은 마을이지만 구경할 거리가 꽤 있었다. 

 

남미에서는 매번 비슷해 보이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핸드메이드 기념품 들었다 놨다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도 다르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도착한 첫날은 무작정 걷기만 한다. 당장 살렌토에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복잡함과는 거리가 먼 작은 마을을 거닐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면 충분했다. 

 

그 '작다'라는 범위가 시야에 다 들어올 정도였으니 이내 걷기를 멈추고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콜롬비아 역시 커피벨트에 속한 나라이기도하고, 특히 살렌토는 커피투어를 할 수 있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난 커피투어는 관심도 없었다!) 

 

'신 맛이 강했던 에티오피아 커피와는 좀 다르군.' 나름의 아는 척 커피 품평을 마치고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사람 구경했다. 그들의 일상에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외국인 한 명이 끼어든 느낌이다.

 

쾌쾌한 배낭여행자들로만 가득할 것 같았던 호스텔은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꽤 좋아졌다. 잔잔한 라이브 공연이 이어지고, 와인을 곁들인 서양식 코스 요리를 소개하는 식당이라니.

 

그렇다고 침대에 혼자 누워있기는 뭐하니 1층으로 내려와 맥주를 한잔 마셨다. 애써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저항하듯 맥주를 한잔 더 달라고 했다. 혼자 마시는 맥주는 이제 익숙하다.

 

살렌토는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참 시원했다.

 

커피투어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야자수가 많다고 하는 코코라 계곡(Valle de Cocora)만 가보기로 결정했다. 

 

코코라 계곡은 지프를 타고 가야 했다. 지프는 거의 1시간마다 있었는데 난 10시 반에 탔다.

 

지프에 올라타 조금 달리니 입구인 듯 보이는 주차장이 보였다.

 

코코라 계곡에 도착해서는 지프에서 내려걸어야 했다.

 

대충 만든 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아찔했다.

 

비가 와서 질척해진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코코라 계곡을 찾아갔지만 여기는 트레킹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인가 보다.

 

말을 타고 돌아보는 것도 가능했다. 페루에서 '무지개산'이라고 불리는 비니쿤카를 오를 때 고산지대에 급경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말을 타기도 했는데 여기는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많이 걷다 보면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걸으니 안개에 살짝 가려진 야자나무 숲이 보였다. 여기가 사람들이 말하는 사진 찍는 장소인가 보다.

 

보통 따뜻한 나라의 해안에서만 보던 야자수인데 이런 깊은 산속에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야자수가 빼곡한 주변 경치를 바라보다 나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대체 야자수가 많은 게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을 보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이 마치 개미처럼 엄청나게 작게 보였던 것이다.   

 

그제야 야자수가 엄청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도 뒤늦게 알아채다니 내가 여행을 너무 오래 한 탓이거나 감수성이 메마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코코라 계곡에는 몇 시간 동안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늘 높이 치솟은 야자수만 한참 동안 바라보다 살렌토로 돌아왔다. 

 

살렌토로 돌아와 다시 동네 한 바퀴 걷기 시작했다.

 

점심으로는 가볍게 치킨 2조각을 먹었다. 콜롬비아를 여행하면서 치킨 2조각은 정말 자주 먹었는데 고작해야 1,500~2,000원 정도라 에콰도르에 비해 엄청 저렴했고, KFC치킨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맛도 괜찮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끝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언덕이 있었다.

 

높아 보이진 않지만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낮은 언덕의 끝에 도달했을 때는 소박한 살렌토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 보는 여행자들처럼 나 역시 시간을 때웠다. 불량식품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 물며.

 

정말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살렌토에 들리길 잘했다 생각했다.

 

해가 서서히 사라질 즈음에 언덕에서 내려왔다. 

 

광장에 있던 야시장이 눈에 띄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초리소 굽는 냄새에 참지 못하고 하나 달라고 했다.

 

밤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북적였다. 적당히 기념품 가게를 돌며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1층 식당으로 가서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추천해 준 코스요리가 15달러가 넘었는데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저렴한 한 끼를 해결하는데 보통 2~3달러였으니 놀랄만 했다.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도 아니고 오랜만에 사치 좀 부려 보자고 주문을 했다.

 

그럭저럭 맛도 괜찮았고 디저트로 예쁜 컵케익도 있었다.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여행자들과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그들과 한참 동안 웃고 떠들게 되었다. 

 

노르웨이 친구들이랑 헤어지자 마자 내가 입고 있던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클럽) 저지를 보자 엄청 반가워하는 커플을 만났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샀던 짝퉁 저지가 콜롬비아에서도 역할을 발휘할 줄이야! 비록 보카 주니어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축구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우연한 만남이 그냥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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