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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좀 실종사건

category 지난 여행기/93만원 동남아 배낭여행 2011. 4. 10. 08:18
기분 좋게 맥주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막 마쳤는데, 누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별 생각이 다 들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누... 누구세요?"

당황하면 이렇게 한국말이 나오는가 보다. 그렇게 잠시 문앞에서 누군가와 대치한끝에 밖에 있는 사람은 엘레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을 열고 만난 엘레나는 거의 울먹이면서 아르좀이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간은 2시가 넘어 있었는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르좀 혼자 나갔는데 잠시 자고 일어났지만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할 방법도 없었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방콕에 온 첫날, 뭔가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찾아왔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고나니 꼭 이럴때 내 머리속에서 나쁜 상상이 떠올랐다. 방콕의 어두운 골목에서 아르좀이 이상한 애들하고 시비가 붙은 그런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어쨌든 시급한 것은 걱정하고 있는 엘레나를 위해서 아르좀을 찾는 일이었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나갔는데 카오산로드 주변을 몇 바퀴를 돌며 찾아다녔다. 새벽 3시쯤되자 왠만한 가게들도 다 닫기 때문에 갈 곳도 많지 않았는데 아르좀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엘레나에게는 정말 미안하긴 했지만 이날 너무 피곤해서 걸으면서도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아르좀은 보이지도 않자 엘레나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찾자고 했다. 엘레나에게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내일은 찾을 수 있다고 말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곧바로 밖으로 나섰는데 엘레나는 이미 아침부터 아르좀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동생이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수 없었나보다. 우리는 다시 아르좀을 찾기 위해 흩어져서 돌아다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방콕 카오산로드의 아침은 참 한가로워 보였고, 햇살은 무지하게 따가웠다. 덕분에 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그렇게 2시간정도 돌아다녔을 때 나는 멀리서 아르좀이 걸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달려가 아르좀을 불렀는데 아르좀은 아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급하게 여태까지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르좀은 무척 놀라기 시작했다. 아마 밤새도록 술마시며 놀았던 것 같다.

"혹시 엘레나 화 많이 났어?" 조심스럽게 아르좀은 물었다.
"당연하지! 너 이제 죽었다."

철부지 같았던 아르좀도 누나가 무섭긴 했나 보다. 이번에는 아르좀과 함께 엘레나와 승우를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엘레나와 승우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인화하고 있었다.

아르좀을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엘레나는 아르좀을 보더니 쥐어 패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아르좀을 때리면서 울었는데 아르좀을 찾다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서 경찰서에 갔고, 경찰서에서는 사진을 가져오라고 해서 아르좀의 사진을 인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르좀은 맞으면서도 성인인데 뭐가 큰 잘못이냐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날 오전내내 숙소에서 나오지 말라는 명령을 들어야 했다. 아르좀 실종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경찰서까지 갔다오고 무척 피곤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밤새 큰일로 남을뻔 했던 아르좀 실종사건이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이제는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살짝 미소는 머금은 엘레나는 인화한 사진을 보더니 나에게 기념이라면서 가지라고 건네줬다.


이거... 기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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