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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여행은 모든 게 열악했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는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더러웠고(지저분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인터넷을 사용은 무척 어려웠으며, 마땅히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도 없어 어디를 가도 여행자를 위한 편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물가는 생각보다 비싸 무척 놀랐다. 이런 수단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람뿐이었다.

 

예상대로 버스는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았다. 5시 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5시까지 오라는 말은 철썩 같이 믿지는 않았지만 1시간도 아니고, 2시간 뒤에 출발할 줄은 몰랐다. 버스는 사람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TV, 컴퓨터, 세탁기 등 별의 별것도 함께 여행을 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국경 근처까지 왔다. 수단과 이집트 사이에는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 나세르 호가 있어 배를 타야 한다. 작은 배에 여러 대의 버스와 트럭이 들어갔다. 호수를 건넌 후 국경에는 점심에 도착했다.


국경은 정말 여러 의미로 대단했다. 일단 바닥에 깔린 짐과 사람이 뒤엉켜 시장보다 더 시끄럽고, 정신 없었다. 짐을 검사하러 들어갈 때는 너도나도 큰 가방을 메고 밀쳤고, 출국 도장을 어디서 받는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우리가 탔던 버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집트 국경에서만 2시간 반 동안 앉아서 굶주린 배를 부여 잡고 기다렸다. 나중에 버스가 왔을 때 멈추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달려가 짐을 쑤셔 넣는 모습을 보고 나와 마사는 헛웃음을 지으며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놀라운 광경을 지켜봤다.

 

수단 국경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입국 심사는 더뎠다. 나름 우리가 외국인이라 특별 취급 받으며 거주지등록 신청서를 작성하고 여권에 도장을 받았다. 국경을 통과하기 직전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50수단파운드를 내야 한다고 말했지만 선뜻 신뢰가 가지 않아 다른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단 상황을 지켜봤는데, 마사가 그 틈에 다른 사람에게 왜 돈을 내야 하는지 물으려 가자, 우리를 그냥 보내줬다. 후에 다른 여행자와 만났을 때는 다들 50파운드씩 냈다고 했다.


정말 배고팠다. 이미 지쳐 있었다. 와디할파에 도착하면 맛있는 것부터 먹자는 소리는 몇 시간 전부터 나눴다. 국경을 넘어 버스에 올라타면서 드디어 수단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났다. 사방은 어두웠고, 주변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빼곡하게 채운 반짝이는 별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별이 많은 하늘을 본 게 얼마만인지, 그 순간만큼은 배고픔도 잊은 채 하늘만 봤다. 약 1시간 뒤 우리는 수단의 국경마을 와디할파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맛있어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해 뛰어갔다. 자갈 위에 고기를 굽고 있는 신기한 음식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가격을 물어보니 35파운드란다. 우리는 잘 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물어봤는데 35파운드라고 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나뿐만 아니라 마사도 주저했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일단 숙소부터 찾자고 제안했고 우리가 간 곳은 이름도 거창한 ‘클레오파트라 호텔’이었다. 하지만 이름뿐인 호텔인 이곳은 베드버그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칙칙한 그런 곳이었다. 앞으로 수단에서 자주 보게 될 그런 호텔이었다.


싸구려 호텔에 짐만 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나갔다. 아무래도 여행자가 별로 없는 수단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가장 허름해 보이는 곳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는 데만 집중했다.


깊은 어둠이 내려 앉아 지나가는 사람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이집트와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에 살짝 들떴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인사로 화답했다. 다만 내가 사진을 몇 장 찍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수단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정부의 방침인지, 아니면 동네의 규정인지. 그렇다고 사진을 지우게 한다거나 아예 통제하는 수준은 아니긴 한데 아무튼 영 못 마땅했다.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나 싶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괜히 진드기 같은 종류가 내 몸을 지나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찝찝했다. 그럼에도 잠이 들었다. 우리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러 나갔다. 사막 위에 있는 마을인지, 쓰레기 위에 있는 마을인지 모를 이곳에서 둘째 날을 맞이했다. 바람이 차가웠다.


즉석에서 튀겨주는 도넛 비슷한 것을 먹었다. 설탕 사랑이 대단한 중동답게 설탕을 잔뜩 뿌려줬다. 역시 설탕이 가득 담겨진 차이를 마시며 아침을 맞이했다.


사막인데다가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인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은 정말 웅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평선에 붉고 강렬한 선이 드러났다.


이집트에서 사막을 자주 봤다면, 수단은 전 국토가 사막이었다. 황량함 그 자체였다.


점심이 되어서 도착한 동골라에서 나는 내렸고, 여기서 8일간 함께 여행했던 일본인 마사와 헤어졌다. 동골라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하루만 머물고자 호텔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싸구려 숙소이든, 비싼 숙소이든 전부 방이 없었다. 배낭을 메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는데 하루 누울 곳을 찾지 못했다.


내 사정도 모르고 꼬마 아이들은 내게 달려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숙소를 찾지 못해 시장 주변을 몇 번이고 돌았다. 역시 낯선 여행자에게 수단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나를 부르더니 사진을 찍어보라고 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아직 수단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괜찮았다. 그것만으로도 여행하는데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사진을 찍어 보라는 사람들의 몇 번의 요청에 셔터를 누르고 있을 때 무리에서 등장한 어떤 사람이 “노, 포토!”라고 제지했다. 여기서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일종의 경고를 받은 거다. 수단 사람들은 사진 찍는 거나, 찍히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무슨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동네를 또 한 바퀴 돌다가 친절한 수단 사람을 만났다. 나이는 많아 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던 그들은 내가 숙소를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나와 함께 걸었다. 결국 숙소를 찾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호텔이 있는 곳까지 뚝뚝을 타고 함께 갔다. 당연하게도 돈은 그들이 냈다. 목적지에 내려다 주고는 떠나는 그들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자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이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동골라에서 끝내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축제를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 때문인지 어딜가도 방이 없었다. 난 마사가 갔던 곳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시장 근처로 가서 밴을 탔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지도를 확인할 수 없었는데 마침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아저씨가 알려줬다. 하루 종일 배낭을 메고 걸은 탓에 배고프고 목이 말라 콜라 하나를 사서 마셨다.

 

2시간 뒤 나는 이상한 마을에 도착했다. ‘카리마’에 가야 했는데 ‘카르마’에 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며 관심을 표했지만 당장 여기서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았다. 웃음만 나오던 이 상황에 해는 점점 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식당이 없던 이곳에서 굶주렸다. 내가 앉아 있던 카페 바로 옆에서 커다란 고기를 매달더니 슥슥 썰기 시작했다. 파는 거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먹겠다고 얘기했다.


고기는 정말 맛있어 보였는데 실제로는 엄청 질겨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다 먹고 나서 내가 어떤 고기를 먹었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낙타란다.


어둠이 깔렸고 나는 어디서든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한 남자는 영어를 꽤 했고, 나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겠냐고 제안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몇 가지 준비를 한 후 그의 가게를 가니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지.


그러는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침대를 제공해줬다. 원래 텐트를 치고 잘까도 생각했지만 마을 한복판에서 텐트를 치고 자다가 봉변을 당했던 그리스에서의 사건이 떠올라 그냥 밖에서 텐트 없이 자기로 했다.


여기서 자도 괜찮다며 웃음을 짓던 아저씨와 이것저것 챙겨주고 내 가방을 가게 안에 넣어줬던 친구 덕분에 어떻게든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총 든 군인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했고, 포토프린터로 사진을 인화해 준 것을 보고 자기도 하나 뽑아달라고 졸라댔다. 총을 들고 있으니 안 해줄 수도 없고 해서 결국 1장 해줬다.

 

침대에 누워 잤다. 낯선 이런 곳에서 용케 잠은 잘 왔다. 다만 새벽에는 너무 추워 침낭을 꺼내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됐다. 날이 점점 밝아왔고 이 작은 마을도 하루를 시작했다.

 

동골라로 돌아가는 버스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도중 슈퍼 앞에서 팔라펠을 만들고 있었다. 마침 배고팠던 나는 즉석에서 나오는 팔라펠을 먹었다. 나보고 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던 사람들 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자는 절대 오지 않을 이 작은 마을에서 그들의 일상을 바라보다가 버스를 타고 동골라로 떠났다.

 

온통 사막인 수단에서 특별한 경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몇 시간 뒤에는 동골라를 거쳐 원래 내 목적지인 카리마에 도착했다. 여행자가 몇 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지만 3일간 단 한 명의 외국인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숙소를 찾았다. 그리고는 거주지등록을 위해 도착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도시도 사막 위에 있어 황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점심으로는 풀(Fuul, Foul, Full 등으로 적는데 수단에서는 보통 Fuul이라고 쓴다)을 먹었다. 수단에서 먹어봐야 할 현지 음식이라고 본 터라 망설이지 않고 주문했는데 보기에는 딱히 맛있을 것 같지 않았다. 먹어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괜찮다. 콩으로 만든 음식이라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카리마에 어둠이 깔리고, 이 어둠 속에서도 외국인인 나를 알아보고 부른다.


온통 사막인 이곳에는 특이한 산이 하나 있다. 제벨 바르칼(Jebel Barkal)이라고 하는 돌산인데 높이가 387m에 불과하다. 워낙 거대하고 주변이 평지라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다만 이곳을 갔을 때 경찰을 만났고 주변에 있는 피라미드를 포함해 입장료 명목으로 10달러를 요구해 그냥 돌아섰다. 너무 쉽게 단념했나 싶을 정도로 이곳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애초에 수단에서 관광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니깐.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

 

길을 걷던 도중 귀여운 꼬마 아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덥고 건조한 사막이라 수단에서도 어디서든 마실 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집트와는 달리 고여 있는 물이라 선뜻 마셔볼 생각을 못했다. 궁금함에 다가가 보니 기름처럼 무언가 둥둥 떠있었다.

 

카리마에서도 사진을 찍을 때 가끔 제지하는 사람이 있어 늘 조심스럽게 찍곤 했는데, 일반 사람들의 반응은 항상 정반대다. 멀리서부터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들이 있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학교 근처를 지나가니 담을 넘거나 교문 밖으로 뛰어 나오는 아이들이 몇 보였다. 역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나 시장 근처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강력한 의사로 바나나 껍질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매우 호의적이며, 사진 찍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길거리에 앉아 차이를 한 잔 마시는 게 수단에서는 일상이었다. 단 미리 말하지 않으면 설탕을 왕창 넣으니 주의해야 한다.


어느 착해 보이는 아저씨네 가게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아저씨는 잠깐 기도하러 모스크에 다녀온다고 했고 나는 옆에서 차이를 마시며 기다렸다. 잠시 후 돌아온 아저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시작했다. 무슨 요리인지도 모르고 아무거나 주문했는데 기껏 나온 것은 간 요리였다. 아저씨의 미소 때문에 억지로 다 먹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터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삼삼오오 모여 차이를 마시는 사람들인데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들이 무얼 하는지도 모를 것 같다.


카리마에서 3일이나 지낸 후 수도 하르툼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새벽부터 지루한 여정이 시작됐다.


한참을 달려 휴게소에 도착했다. 말이 휴게소지 허름해 보이는 건물 몇 개가 전부인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모래 바람이 심하게 불어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나를 계속해서 지켜보던 수단인이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수단은 어디를 가나 너무 더럽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경쟁을 이집트와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쓰레기 천지다.


드디어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도착했다. 버스는 중심지가 아닌 상당히 먼 곳에서 내려줬다. 어김 없이 접근한 택시 기사는 나에게 50파운드를 제시했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약 4km 떨어진 곳이라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낯선 외국인을 발견한 수단인들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미소를 보냈다. 여행자에게 호의적인 사람들 덕분에 손을 몇 번이나 흔들었는지 모른다.


수단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그럴싸한 숙소였다. 물론 들어가보니 외관만 그랬다. 내부는 방치된 상태로 그대로 있었고, 화장실은 언제 청소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데도 가격은 9천원 가량 했다. 터무니 없이 비쌌다.


이곳에서 만남은 이어졌다. 이집트 룩소르에서부터 만났던 자전거 여행자 형근이와 진화는 전날 하르툼에 있는 것을 알게 돼 만날 것을 알았지만 다른 한국인 여행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다른 곳도 아니고 수단에서. 한수와 민아는 유럽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지금은 배낭을 메고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근사한 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며(술이 없으니) 한참 동안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뭔가 신났다.


다음날에는 에티오피아 비자를 받으러 곧장 대사관으로 갔다. 에티오피아는 아디스아바바 공항으로 입국하면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육로로 입국하는 나는 미리 비자를 받아야 했다.


에티오피아 비자는 당일 받을 수 있었다. 원래는 1개월짜리를 받으려다가 혹시 몰라서 3개월짜리로 받았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 아이들은 정작 카메라를 들이대자 부끄러워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어려웠던 수단인데 싸구려 숙소에서 당연히 와이파이가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리에 와이파이가 되는 지점이 있어 항상 그곳에서 인터넷을 쓰곤 했다.


점심은 다같이 우르르 몰려가 풀을 먹었다. 역시 색깔이나 빵을 찍어 먹다 보면 지저분해지는 게 별로지만 맛은 좋았다.

 

하르툼에 있다고 해서 딱히 뭘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단에서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은 없었으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늘어져 있다가 저녁에는 시내로 나가자며 뚝뚝을 잡아탔다. 무려 5명이 한꺼번에.


우리는 시내를 걸었다. 어두워진 시내는 사람은 많았지만 무척 한가했다. 돈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과 환전을 하고 어디가 정확히 시내인지 몰라 계속 걸어 다녔다. 실제로 우리가 걸어 다닌 곳은 시내가 맞았지만 뭔가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도심의 모습은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많아 조심해야 했다.


한국인 5명은 하르툼 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사막의 나라는 도시에서도 물을 쉽게 마실 수 있다. 가게 앞에 비치된 생수는 누구라도 마실 수 있는데 이집트라면 모를까 수단에서는 한두 번 마셔보기만 했다.


너무 배고파서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우연히 들어간 곳 치고는 정말 괜찮았다. 햄버거도 무척 크고, 맛있고, 결정적으로 매우 쌌다. 과일쥬스도 고작해야 3파운드(약 500원)밖에 하지 않았다.

 

다음날 한수와 민아는 에티오피아로 떠났고, 그 다음날은 형근과 진화가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나도 떠나고 싶었지만 수단에서 한 두 군데 정도 여행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메로이 피라미드(Pyramids of Meroe)였다. 피라미드를 보러 떠난 것까지는 좋았다. 단 한가지 수단에는 비슷한 지명이 많다는 것을 빼고.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갔으나 여기서는 메로이로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틀 뒤에 여기서 타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어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다른 곳으로 갔다. 그것도 아주 멀리, 하르툼 시내를 벗어나 아주 멀리까지 갔다.


내가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시장이 있던 곳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이미 난 오래 걷느라, 그리고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도 같은 대답을 듣지 못해 짜증이 가득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여기서도 또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이크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내릴 때 내 배낭에 대한 비용을 내라고 해서 화를 냈다. 수단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3시간 동안 계속 엇나감에 화가 솟구쳤고, 나는 아무한테나 신경질을 부렸다.


끝내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는 내가 가려는 메로이(Meroe)가 아닌 메로위(Merowe)로 간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었다. 휴게소에서도, 그리고 버스에서도 내가 가려는 곳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다들 맞다고,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아랍어로 써있는 지도를 보여줬는데도 말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내 예상은 정확히 들어 맞았고, 이상한 곳에서 내렸다. 내 사정을 들은 어떤 버스 아저씨는 공짜로 메로위로 가기 전의 갈림길까지 태워줬다.

 

대체 내 여행은 왜 이런가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하루 종일 쫄쫄 굶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밥부터 먹으러 움직였다. 다행히 식당이 보여 풀과 팔라펠로 허기를 채웠다.


문제는 잠자리였다. 이곳은 체크포인트라 군인인지 경찰인지 모를 사람이 있는데 그 중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에게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자신의 자리 옆에서 자라고 했다. 아무리 짜증나는 하루였어도 결국 좋은 사람이 많은 곳이 바로 이곳, 수단이다. 난 텐트를 대충 쳐놓고 카페와 슈퍼 앞에 있는 사람들과 통하지도 않는 말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피곤했나 보다. 텐트에 눕자마자 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추위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텐트를 자신의 자리 옆에 치라고 했던 할아버지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뭔가 흡족해 했다. 그러더니 추위에 벌벌 떠는 나에게 차이를 마시자고 했고, 다 마시고 가격을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본인이 내겠다는 의미였다.


텐트와 침낭을 정리한 후 체크포인트에서 출발하는 밴을 타고 앗바라흐(Atbarah) 방향으로 갔다. 분명 도로는 있지만 지나다니는 차는 별로 없었다. 앗바라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버스를 타고 메로이 방향으로 갔다.


메로이 피라미드는 분명 관광지로 유명할 것 같았는데 정말 허허벌판에 있어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근처에 마을도 없었다. 오로지 창 밖으로 피라미드를 보자 지금 내려야 한다고 소리 지른 나뿐이었다.

 

멀리 피라미드의 형체가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이틀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걷기만해 무척 피곤했다.


피라미드로 가는 도중 흙으로 만든 집이 있어 숙소인 줄 알았는데 그냥 아무 것도 아니었다. 텐트를 치고 자도 되냐고 물었는데 흔쾌히 그래도 된다고 얘기했다. 일단 이곳에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피라미드를 다녀오겠다고 길을 나섰다. 그때 멀리서 낙타를 타고 온 아이 두 명이 낙타를 타라고 끈임 없이 제안했다. 공짜라고. 그러나 수십 번을 공짜라고 얘기했지만 난 타지 않았다. 낙타를 타는데 공짜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아닌 수단에서 피라미드라니. 물론 기대를 하고 갔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낙타는 굉장히 컸다. 낙타를 오르고 내리는 모습은 처음 봤는데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낙타를 툭툭 치면 무릎을 꿇었다.


뜨거운 사막에 홀로 있는 당나귀가 안쓰러웠다. 귀여워서 다가간 것이지만.

 

아무리 봐도 여행자는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이곳이지만 엄연히 관광지라 입장료를 내야 했다. 50파운드라는 거금을 내야 했는데 내가 순간 망설이자 30파운드로 깎아줬다. 30파운드에도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이틀간 힘들게 왔던 것을 생각하면 안 들어갈 수 없었다. 피라미드는 정말 사막에 있어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당연히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와 비교하는 건 무리다. 규모도 매우 작을 뿐더러, 보존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다. 신비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꽤 괜찮았다. 생각해보면 그 위대한 건축물이라고 여겨졌던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실망했던 나로써는 의외였다. 문명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이집트와는 달리 여기는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인데 피라미드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내부에는 매우 희미하지만 상형문자도 남아있다.


복원한 흔적이 보이는 피라미드가 여럿 있는데 복원된 모습이 매우 실망스럽다.


온전한 모양의 피라미드는 거의 없었다.


정말 더웠다. 배가 고팠고, 목도 말랐다. 수단은 온통 사막이지만 여기를 걸으니 진짜 사막에 온 것 같았다. 열기에 데워진 뜨거운 물도 다 마셨다.


사람은 몇 명 있었으나 복원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가 한해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피라미드를 뒤로 하고 흙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아주 약간이지만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어보니 없단다. 다음 마을로 가야 했다. 대체 이 사람과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사막 한 가운데서. 배고프지만 않다면 늦은 시간이라 하루 자고 가려고 했는데 바로 하르툼이든 어디든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이곳은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 도로로 나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큰 트럭이 몇 차례 지나가고 작은 버스가 멈췄다. 히치하이킹이 아닌 버스지만 굶주린 나는 빨리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이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다 하르툼행 버스로 갈아탔다. 물론 중간에 탔어도 돈은 내야 했다.


하르툼까지는 정말 멀었다. 지루했다. 이미 어두워진 저녁 8시 반쯤에야 하르툼에 도착했다. 그러나 휴대폰 배터리도 없어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택시는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을 불러 난감했다. 그때 뒤에서 영어로 나에게 상황을 묻던 할아버지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잠시 후에 온 할아버지의 아들의 차를 타고 공항근처까지 갔다. 원래는 조금만 태워주고 그곳에서 택시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태워준 것이다. 정말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뒤 헤어졌다.


그리고 전에 묵었던 유스호스텔로 갔는데 낯익은 사람이 어둠 속에서(정전으로) 나를 반겼다. 이집트에서 나와 8일간 같이 여행한 일본인 마사였다. 마사는 이미 저녁을 먹었지만 같이 나가자고 내가 꼬셨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거리에서 차이를 같이 마셨다. 다음날 에티오피아로 간다는 마사에게 나도 갈 거라고 말했다. 피라미드를 보러 갔던 게 너무 피곤해서인지 카사라(Kassala)는 가고 싶지 않았다. 더럽고, 비싸고, 볼거리 없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이동해야겠다는 마음만 남았다. 당시에는 분명 그랬는데, 돌이켜 보면 수단은 모든 게 만족스럽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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