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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에 힘들게 도착한 후 그 다음날 새벽 6시에 눈이 저절로 떠지는 것을 보고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몸이 점점 이상해지더니 급격하게 몸살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다음날 체코로 넘어갈 수 없을 거라 판단하고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하루만 늦게 가겠다고 쪽지를 보내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하루 일과라고는 오후에 잠깐 나가서 터키 식당에서 밥을 밀어 넣은 것과 마트에 가서 귤을 사가지고 온 게 전부였다. 브라티슬라바 여행이 뭐고, 일단 쉬는 게 우선이었다. 다음날에도 몸은 나아지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심지어 먹는 것도 힘들어 사과 하나와 빵 하나만 먹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말이다.


UFO다리와 브라티슬라바 성이라도 볼까 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 옷은 입고 누워만 있다가 결국 어두워지고서야 나갈 수 있었다. UFO다리는 왜 이런 이름인지 궁금했는데 다리 한 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눈을 맞으며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던 그날, 버스를 타고 바로 이 다리를 건너왔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브라티슬라바 성은 올라가지 않고 멀리서 보기만 했다. 몸도 안 좋은데 굳이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막상 올라가도 별 게 없을 것 같았다. 너무 춥기도 해서 그냥 숙소로 돌아갔다.


체코로 이동할 땐 히치하이킹이 아닌 버스를 이용했다. 브라티슬라바가 수도임에도 워낙 작은 동네라 아무 것도 하지 못했지만 미련은 남지 않았다.


버스는 정말 좋았다. 깨끗한 것은 기본에다가 좌석마다 모니터가 있어 영화도 볼 수 있고, 따뜻한 음료도 무료로 줬다.


체코 제 2의 도시라고 하기는 좀 민망할 정도로 브르노는 그리 크지 않다. 다만 오래된 도시의 형태가 남아 있어 여전히 중심지를 역할을 하고 있다.


재밌게도 브르노에서는 두 번의 카우치서핑을 했다. 난 흔히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말하는데 진짜 그랬다. 사실 하루만 머물러도 충분한 브르노에서 4일이나 머물렀던 이유는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브르노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몸이 많이 좋아져 맥주 한 잔은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더 마실 수 있지만 몸 상태가 어떤지 몰라 딱 한 잔만 마셨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체코 맥주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독일 못지않게 유명한 체코 맥주라 들었고, 실제로 맥주의 맛도 아무거나 마셔도 평균 이상은 보장했다. 게다가 이 맥주는 조금 비싼 편이라고 했는데도 고작해야 38코루나(약 1800원)에 불과했다.


호스트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브르노 중심부는 걸어서 다녀도 충분했다.


또 눈이 내렸다. 아마 군대 이후로 이렇게 눈이 싫었던 적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다니엘 집에서 이틀 묵고, 다음 호스트인 하이넥 집으로 이동했다. 하이넥의 집은 브르노 중심지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트램과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브르노에 있는 동안 트램 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덕분에 체코에서 처음으로 트램을 타봤다.


다니엘도 그랬지만 하이넥도 굉장히 바빴다. 그럼에도 굉장히 친절하게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저녁엔 같이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보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도 철덕후의 기운이 있나 보다. 트램만 보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곤 했다.


브르노 성을 올라가봤다. 사실 성 자체는 별 거 없는데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으니 무척 좋았다.


브르노 성에서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몸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려 프라하로 이동할 때도 버스를 탔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프라하라 나름 기대하며 버스에 올랐다.


프라하 도착. 맑은 날씨도 빨간색 지붕도 마음에 들었다.


부다페스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다. 프라하 역시 거리엔 여행자로 넘쳐 났을 뿐더러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한국말이 들렸다.


프라하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아름다운 거리를 걷는 것도, 예쁜 야경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라면이나 한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한참 몸이 아팠을 때 휴대폰으로 먹을 것을 검색하며 침을 흘리곤 했다. 그래서 숙소를 향해 걷던 도중 근처에 한식당이 있는 것을 알고 찾아가 김치찌개를 먹었다. 3개월 반 만에 처음으로 가본 한식당이었다.


거리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잠깐 잠시나마 멈추기도 한다.


저녁엔 가격을 보고 엄청나게 망설였지만 먹고 싶은 거 한 번 먹어보자는 심정으로 족발을 주문했다. 이게 독일식 족발 슈바이네 학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거대할 정도로 커다란 족발을 보고 엄청 놀랐다. 도저히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하루 정도는 열심히 걸어보겠다고 다짐하고 오전부터 돌아다녔다.


이런 유명한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행위예술가(이라 쓰고 거리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라 읽는)를 프라하에서는 유난히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추운 날씨라도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적극적으로 앞에 다가가는 것도 나름 관광지에서 웃고 즐길 수 있는 요소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난 보통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편이다. 대신 구경하는 건 매우 좋아한다.


부다페스트와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 느낌이다.


골목길을 걷다가 무작정 블타바 강가로 갔다. 그리고는 언덕을 올라 프라하 시내를 바라봤다.


비록 날씨가 흐려 색이 선명하진 않았지만 프라하의 일부를 눈으로 담아 볼 수 있었다. 빨간 지붕과 블타바 강의 다리가 도시 전경의 팔할은 책임지는 것 같다.


프라하 성까지는 욕심 부리지 않고 내려갔다. 또 언제 올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프라하의 밤거리를 걸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한참을 걷다 숙소로 돌아왔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옮길 숙소는 중심부와 거리가 좀 멀어 트램을 타고 가야 하는데 어딜 봐도 트램 티켓을 살 자판기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지하철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 90분짜리 1회권을 구입했다.


숙소를 옮기고 나서 근처 공원을 산책했는데 괜찮았다. 공원도 넓고, 강아지랑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 좋았다. 이런 소소한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살짝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로 근래 들어 가장 날씨가 좋았던 날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프라하에서 뭘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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