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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인도네시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발리에서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거나 경유 항공편을 이용해서 귀국하겠지만 나는 싱가폴로 갔다가 필리핀 마닐라,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다소 복잡한 루트를 이용했다. 이렇게 복잡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 편의 저가 항공을 이용해 여행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매력이 가득했던 인도네시아를 떠나 이제 싱가폴로 갈 차례였다. 싱가폴에서는 하루 머물지 않고 잠시 대기했다가 저녁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이동하는데 아무래도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 나는 밖으로 나가 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쿠타 비치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매우 가까웠지만 발리의 택시들은 대부분 미터기로 장난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탔던 택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처구니 없이 빨리 올라가는 미터기를 보고 그냥 끄고 달리자고 했다. 택시 기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 대략 2~3만 루피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만 루피아로 합의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공항은 매우 한산했다. 서울이라는 글자를 보자 발리에서 한국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현재 상황은 그와 반대로 참 멀리 돌아가고 있었다.


싱가폴로 가는 항공편 6시 20분 에어아시아를 탑승하기 위해 체크인을 했고, 곧바로 공항세를 냈다. 인도네시아는 출국할 때 공항세를 내야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발리는 15만 루피아였다. 입국 심사를 끝내고 게이트 앞으로 가니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시장 한복판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지루한 기다림을 끝내고 드디어 싱가폴로 가는 항공편에 탑승했다.


이미 에어아시아는 여러 번 타봤으니 별로 특별한 것도 없을 법한데 좀 신기한 게 있었다면 탑승하자마자 과자를 줬다. 물 한 잔도 안 주는 무려 에어아시아에서 과자를 주다니 별것도 아닌데 무척 놀라웠다. 


잠시 후 싱가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싱가폴은 2007년도에 93만원을 들고 동남아 배낭여행을 시작했던 곳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싱가폴에서 중국까지 육로로만 가자는 생각뿐이라 막상 싱가폴에 도착해서는 어디에서 뭘해야 할지도 몰랐다. 심지어 오늘 어디에서 잠을 자야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했던 여행도 있었는데 이렇게 4년만에 다시 싱가폴을 찾으니 참 신기했다.

저녁에 필리핀으로 이동할 계획이지만 일단 난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싱가폴의 지리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공항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너무 지겹기 때문이었다. 우선, 공항 내에 있던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지도를 얻고 어떻게 가야할지 물어봤다. 먼저 배낭을 계속 들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 맡겨야 하는지 물어보자 2터미널에 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친절하신 분의 도움으로 환전이나 싱가폴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기에서 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듣게되었다. 저녁이 되면 당연히 이곳으로 와서 비행기를 타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타게 될 세부퍼시픽은 창이공항 버젯터미널이라는 곳에서 타야 했다. 그러니까 창이공항의 제 1, 2, 3터미널이 아니라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저가항공 전용 버젯터미널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물론, 버젯터미널이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10분만 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미리 알게 되어서 조금 다행이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은 뒤 환전을 했다. 아주 잠깐 머물 예정이지만 최소한 밥을 먹고 돌아다니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환율은 USD 1에 싱가폴 달러 1.12달러였다. 2007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율이었다. 약간만 환전을 한 뒤 난 제 2터미널로 가서 배낭을 맡길 곳을 찾았다.


여태까지 공항에서 배낭을 맡겨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Left Baggage에서 돈을 내고 맡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배낭의 무게를 잰 뒤 당일에 찾겠다고 하니 4.3S$(싱가폴 달러)가 나왔다. 배낭을 맡기고 이제 몸도 가벼워졌으니 곧장 MRT를 타러 갔다.


2007년도에는 이지링크 카드를 이용해서 다녔지만 이번에는 딱 몇 시간만 돌아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에 1회용 카드를 발급받았다. 싱가폴 MRT가 오랜만이라 여행을 하던 당시 MRT를 자주 타고 다녀서 그런지 어렵지는 않았다. 사실 처음 싱가폴 MRT를 타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일반 티켓을 끊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1 Trip을 선택, 노선표에 있는 역을 터치한 후 보증금 1S$과 운임료를 넣으면 카드 형태의 일반권이 나온다. 딱 한 번만 쓸 수 있고, 도착한 후 카드를 넣으면 환급이 되는 형태로 서울 지하철과 매우 유사하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조금 고민을 했지만 역시 에스플러네이드역이 가장 만만할 것 같아 그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싱가폴 MRT를 탔지만 여전히 깨끗하고,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창이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는 내내 주변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변한건 없었지만 예전에 여행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와 추억을 곱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MRT 문 앞에 노선표를 보다가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인도어 등 4개국어로 적힌 안내판을 보였다. 싱가폴에는 중국계 사람이 많긴 하지만 인도계나 말레이계 사람도 많다 보니 공식 안내판에는 대부분 4개국어로 적혀있다. 분명 예전에도 이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싱가폴 MRT를 타고 이동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지하게 더운 싱가폴의 날씨와는 반대로 MRT는 너무 추웠다. 반바지에 반팔만 입고 있던 나는 에어컨 바람에 벌벌 떨면서 겨우 에스플러네이드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너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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