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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혼자 여행했을 때였다. 이틀 전에 몸이 무지하게 아파서 끙끙 앓아 누운 뒤로는 마음까지 약해졌는지 갑자기 혼자 여행하는게 왜 이렇게 외롭고 처량하게 느껴지는지 기분이 쭈욱 가라앉았다. 대략 혼자 돌아다닌지 20일이 넘었을 무렵이었다. 물론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으니 꼭 혼자 여행을 한 것은 아닌 셈이긴 했다.

아무튼 저녁을 먹은 뒤 맥주 생각이 간절했지만 너무 쓸쓸하고 우울함이 밀려와 그냥 터벅터벅 숙소를 향해 걸었다. 미얀마의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낭쉐는 정말 작은 마을이라 가로등도 별로 없어 어둡고, 그렇다고 즐길 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 그냥 숙소로 돌아가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팠던 몸이 아직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별 생각을 다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숙소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이제 몇 걸음만 가면 숙소 앞이었는데 멀리 어둠 사이로 3명의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여기도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거리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이 친구들이 어둠 속에서 나를 발견하자마자 말을 거는 것이었다.

"이봐! 혹시 나 기억해?"

어둠속에서 덮수룩한 수염을 가진 친구가 얼굴을 드러내더니 나를 보자마자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갑자기 물어보면 기억은 커녕 오히려 당황스럽잖아. 어쨌든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이 친구가 말하길 바로 전 마을이었던 껄로에서 같은 숙소에 묵었었고, 나한테 트레킹이 어땠냐고 질문했다고 했다.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우린 아주 짧은 만남이었는데 정말 기껏해야 10분 정도 대화를 나눴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우연히(그것도 같은 숙소) 낭쉐의 어두운 밤거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3명의 얼굴이 희미한 불빛 사이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전형적인 유럽인처럼 보였던 키가 큰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그리고 수염이 덮수룩한 그 친구는 남미쪽 사람처럼 보였다. 수염이 덮수룩하고 머리는 짧게 올라온 아까 그 친구가 그 어두운 밤거리에서 나를 바로 알아봤던건 다름 아닌 내 빨간색 옷 때문이었다고 하자 웃음이 났다.

"우리는 지금 저녁 먹으러 갈건데 괜찮다면 같이 갈래?" 노란 모자를 쓰고 있었던 그 전형적인 유럽인 크리스챤이 말했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된 나는 무척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하더라도 외롭다, 심심하다는 식으로 한탄을 하며 어두운 거리를 혼자 걷고 있었는데 이제는 3명의 친구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뎅탕처럼 느껴졌던 맛있는 국물 요리와 미얀마 맥주를 먹고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처음에는 국적은 커녕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술을 마시면서 한참 뒤에야 친해지면서 이들의 이름과 국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친구들은 독일인 크리스챤, 태어난 곳은 알바니아이지만 현재 국적은 독일인 마싯다, 코스타리카인이었던 카를로스였다. 그래서일까? 크리스챤이 갑자기 재미있다는 듯이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정말 재밌는 조합이지 않아? 유럽인도 있고, 남미인도 있고, 아시아인까지 3대륙 팀이네!"

그렇게 재미있는 조합이었던 우리는 다음날 카누를 타러 인레호수로 향했다. 그 재미있었던 조합이 사실 사상 최악의 카누팀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4명이 30분간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갈 생각은 못하고 계속 구석에 처박히는 사태에 크리스챤은 한숨을 내쉬었고, 뒤에 있던 마싯다와 카를로스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유유히 노를 저어가며 지나가던 미얀마 아가씨도 우리의 모습을 보니 웃기긴 웃겼다 보다.


다시 열심히 노를 저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결국 1시간 동안 거의 제자리에서 노젓기만 하다가 돌아와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웃긴지 모르겠다. 나중에 페이스북에 카누를 탔던 사진을 올렸는데 마싯다가 'The best kanu team ever' 라고 뻔뻔하게 댓글을 달기도 했다.


우리는 인레호수를 지나 양곤까지 함께 여행을 했다. 정말 이 친구들과 운이 좋았던 것은 양곤에 도착하기 전에 버스가 달라서 헤어졌는데 오전에 거리를 걷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레호수에서 양곤으로 가는 서로 다른 버스를 탔지만 출발도 동시에 했고, 휴게소에 들릴 때마다 만났기 때문에 헤어질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새벽에 양곤에 도착했을 때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이대로 작별인사도 안 하고 헤어지나 싶었는데 말 그대로 우연히 만난 것이었다.


오전에 다시 만난 우리는 양곤의 길거리를 배회하기도 하고, 거리 노점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상상하며 뜨거운 차를 마시기도 했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던 마싯다를 위해 그럴듯한(돈이 없었던 우리는 그럴듯한이 의미하는 것은 저렴하면서도 보기가 괜찮은 식사) 점심을 찾아내 거리에서 먹기도 했다.


사실 양곤에서는 제대로 돌아다니지는 않은 셈이었다. 이미 환전한 돈은 거의 다 써서 남아있지 않았고, 나는 하루 더 남아있었지만 이들은 미얀마에서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어디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 걸으면서 돌아다녔고, 더위에 지친 우리는 괜찮은 곳에 들어가서 맥주도 한잔 마셨다.


밤에는 차이나타운에 가서 맛있는 꼬치와 함께 미얀마 맥주를 마셨다. 조용히 차를 마시는 미얀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쪽은 그래도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느껴져 꽤 마음에 들었다. 기분이 좋았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듯 카를로스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마침 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내가 꺼내자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부탁을 해서 미얀마 맥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서로 성격도 제각각이고 행동도 제멋대로였지만 다행히 말을 할 때는 죽이 잘 맞아서 재미있었다. 항상 이런 자리에서는 북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 마싯다는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보니 학교에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발표도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는 카를로스 여권을 보면서 미국과 친하지 않은 나라의 하소연을 듣기도 하면서 신나게 이야기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했는데 대부분의 상점이 다 닫았다. 보통 미얀마에서는 10시가 넘으면 상점들이 닫는데 술집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길거리 노점도 안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데 때마침 정전이 되기도 했다. 그냥 이대로 들어가야 하나 싶었지만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좀 더 걸으면서 가게를 찾아봤다. 멀리서 희미한 불빛아래 맥주를 파는 곳이 보였고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 또 맥주를 한잔했다. 미얀마에서는 이런 늦은 밤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에 맥주를 또 마신 셈이었다.

그리곤 숙소가 있는 거리로 돌아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여행중이니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였지만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던 일이 많았다. 우연히 만나고, 헤어졌다가 다시 또 우연히 만났던 멤버이니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최근에 마싯다는 페이스북에서 나에게 독일에 놀러오면 자는 것, 먹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반가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언제 한번 독일에 가서 이들과 재회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혼자 여행하거나 여럿이서 여행을 하는 것은 다 장점이 있지만 난 그래도 혼자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나를 봐. 혼자 여행을 하니까 마싯다도 만나고, 카를로스도 만나고, 어제는 너를 만났잖아. 확실히 혼자 여행을 하면 친구 사귀기는 더 좋은 것 같아." 인레호수에서 카누를 타고 돌아온 후 크리스챤이 했던 말이다.

"취업이든 뭐든 네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됐으면 좋겠어!" 의외로 착한 마싯다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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