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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만남을 좀 기대했다. 그것은 단순히 높은 사람을 만나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라면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내가 블로그에서는 해외배낭여행에 대한 포스트를 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여행 혹은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부 부처 중에서 이러한 대외홍보를 맡는 곳이 문화체육관광부일테니 연관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언론에서는 파워블로거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만남이라고 해서 기사까지 내보낼 정도로 부담스러운 자리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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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캐주얼한 차림으로 등장한 장관님은 블로거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무척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왜냐하면 이번에 블로거 간담회는 정말 격식을 갖춘다거나 어떤 진행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런지 그냥 블로거가 평소에 생각했던 질문을 하고, 장관님은 그에 대한 답변을 말하는 식의 순서로 진행이 되어버렸다.

장관님은 아무래도 취임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정책에 반영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듯 보였다. 블로거들이야 말로 IT, 시사, 사진, 공연, 예술, 여행, 요리,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장관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을 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블로거야 말로 미디어의 왕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함께 가지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블로그를 띄워주면서 '파워블로그'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인기를 얻으면서 언론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블로거가 '미디어의 왕'일까? 기성언론에 눌려서 블로거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블로거들은 순전히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라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으면 정말 가치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아무리 SNS시대를 맞아 소셜창작자들이 두각을 드러낸다고 해도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 '미디어의 왕'이라는 표현에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간담회는 내 바로 옆에 계셨던 지민파파님이 스포츠관련 취재기회의 박탈에 대한 점을 이야기하면서 물꼬를 텄다. 평소 야구를 무척 좋아하시고, 사진을 좋아하시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지 못해서 고생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장관님은 야구의 흥행을 위해서 사용자들이 직접 컨텐츠를 생산하는 순기능에 대해서 동의하면서도 현재의 기득권(기자만이 취할 수 있는 프레스카드)은 점차 영향력이 있는 블로거에게로도 확대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구단의 홍보팀이라면 이름만 있는 신문기자에게 프레스를 줄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블로거에게 직접 취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대화를 나눴다.


곧바로 내 차례가 왔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를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쏟아냈는데 대부분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런 시선이 궁금해서 내린 질문들이었다. 만약 내가 한글을 하나도 모르는 외국인인데 한국에 배낭여행으로 왔다면 어떨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미흡한 영문 표기였다. 가까운 일본은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골 동네의 이정표에도 영문표기는 물론 한글까지 적혀있는 것을 보고 적잖아 놀랐다. 우리나라는 외국인을 배려하는 영문표기가 너무나 미흡한 편이다. 서울은 그나마 좀 나아지고 있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소위 광역시라는 대도시에 영문표기가 매우 부실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장관님은 우리가 너무 급격한 산업화를 이루면서 관광에 대한 중요성을 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기반시설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외국인들이 다른 도시를 가지 않으니까 안 만든다는 식의 접근이 많았다는 것인데 이는 무척 근시안적 행정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방이나 다른 소규모 도시들이 기반을 먼저 만들 수 없으니 축제도 만들고, 그에 따라 필요한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정리하셨다.

물론 장관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내 생각은 정부 부처라면 축제를 장려하는 것보다 어떻게하면 영문 표기나 이정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접근이 먼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결국 축제도 배낭여행자나 자유여행자에게 맞춰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가 이어서 했던 이야기는 바로 우리나라 관광자원의 우수성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바로 전날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우리나라 제주도, 경주, 안동 등 정말 외국의 유명한 관광지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곳이 많은데 실제로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키나와도 물론 좋은 관광지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제주도에 비하면 대단한 관광지는 아닌듯 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관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 사실 내가 원하는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결국 자유여행자나 배낭여행자의 배려가 아직은 부족하고, 인프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불과 5~6년 전이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행에 대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블로거들은 많고 한정된 시간은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딱 2가지 질문이 전부였다.


그다음 순서로는 그만님이 현재의 저작권 관련법이 기자들과는 달리 블로거들은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지적을 했다. 블로거들의 글을 마치 자신의 것으로 사용을 한다거나 사진을 도용하는 행위는 사실 여지껏 너무 많이 있었다. 장관님은 미처 블로거들이 자신들의 저작권에 민감한 사안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블로그 생태계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질문이 오고갔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서 더 많은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하고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는 점은 많이 아쉬웠다. 아무래도 식사시간을 이용해서 간담회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도 있고, 너무 폭넓은 분야의 블로거들이 모여있다보니 주제가 너무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장관님과의 만남을 통해 당장 뭘 바꾸자는 제안의 자리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정부에서 듣고, 정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아무리 정부라도 구석구석의 이야기까지는 들을 수 없을테니 이런 간담회를 통해서 소통의 창구가 되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행사가 단순히 정부의 보여주기 행사로 그치지 말기를 소망한다. 현 정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결국 중요한건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정책에 반영해야 건강한 국가가 되지 않겠는가. 이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만남이 다소 딱딱한 자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각자 할말이 부족해서 아쉬웠던 순간이 되고 말았다. 다음에도 또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시간도 좀 넉넉히 있었으면 좋겠고, 비슷한 분야의 블로거들이 참석하면 더욱 좋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간담회가 끝나고 우리는 홍대의 인디밴드 공연을 함께 봤다. 개인적으로 이런 공연을 자주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좀 신기하기도 했지만 금세 그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날 공연은 뷰티풀 데이즈, 포(POE), 메리제인, 와이낫으로 구성되었다.


뷰티풀 데이즈는 처음 들어보는 팀이었지만 보컬의 목소리가 딱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호소력이 짙은 목소리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는 처음 듣자마자 흥을 돋구웠다. 싸이월드에 팬카페가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가입을 해야겠다. 사진 찍기엔 너무 멀어서 망원렌즈로 당겨서 찍으니 전부 흔들리게 나왔고, 동영상도 그닥 잘 담지 못했다는 점은 좀 아쉽다.


다만 내가 있었던 자리가 너무 구석진 곳이었고, 어두웠기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공연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와이낫의 공연을 마치고 난 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인디밴드인들과의 간담회를 이어갔다. 우리는 새로운 간담회가 시작되기 전에 빠져나왔기 때문에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역시 사회의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잘 듣고, 정책에 반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블로거들은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아쉽기 때문에 근처 술집에 모여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우리만의 비공식적인 일정까지 소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