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아프리카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말라위. 그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는 꽤 재미 없는 도시였다. 오로지 커다란 쇼핑센터로 구역이 나뉘는 곳이라 걸어 다니기는 힘들었고, 다리를 건너면 가난에 가난을 더해버린 것처럼 판자집이 가득해 도시의 화려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멸치같은 작은 생선을 말리며 근근이 살아가는 열악한 시골 마을이 더 매력적이었다.


말라위 비자 기한도 끝날 무렵이라 잠비아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딱 하루 남았지만 릴롱궤에서는 할 일이 없어 그날도 빈둥거렸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평소보다 몸이 무겁고, 아주 잠깐 걸었는데 어지러웠다. 아무래도 더워서 그런 게야, 이런 생각을 하며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맨날 먹는 닭고기가 입으로 힘겹게 들어가자 차가운 콜라를 들이켰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신의 음료’로 통했던 콜라도 소용이 없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절로 감기는 눈과 무거워진 몸을 가누지 못해 소파에 기댔다. 저녁에도 몸이 전혀 나아지지 않자 나는 말라리아가 아닌가 의심을 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 대만인 미쉘은 말라리아가 아니라 더위를 먹은 것이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는 마사지를 한다며 주걱 같은 것으로 내 몸을 긁었다. 너무 아팠지만 정말로 더위 먹은 게 진정이 돼서 그런지 아니면 정체불명의 대만 마사지의 효과인지 괜찮아지는 듯 했다.


이른 새벽 다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루사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리저리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린 뒤 겨우 찾은 버스에 올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까지는 좋았다. 딱 거기까지 좋았다. 버스에서 잠이 들었는데 거의 기절한 사람처럼 잤다. 가끔 눈이 떠지면 스치는 풍경을 몇 초간 보다 다시 잠들었다. 13시간 걸리는 버스에서 9시간을 잤다. 그제야 내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루사카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어두워진 저녁 7시였다. 몸이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깜깜하고 익숙하지 않은 도시인데도, 나는 미련하게 배낭을 메고 걸었다. 이럴 때는 택시를 타도 되는데 몇 푼 아끼겠다고 숙소까지 걸어간 것이다. 거의 1시간을 걸어 숙소에 도착해서는 샤워를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병원부터 찾았다. 힘이 없는 상태로 창구를 돌아다니며 피를 뽑고, 소변 검사를 하고, 의사와 상담을 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말라리아 판정을 받았다. 아프리카 여행 6개월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자신만만 했는데 결국 말라리아에 걸린 것이다. 


주사를 맞고, 몇 가지의 약을 받아 호스텔로 돌아왔다. 억지로 밥을 입에 우겨 넣은 뒤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잠에 취해 몇 시간을 잤을까. 정신이 돌아오자 주변부터 살폈다. 분명 누군가 자신에 집에서 편히 쉬는게 어떻겠냐고 깨웠는데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4인 도미토리실에 누워있는 나 혼자뿐이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혹시 저승사자가 아니었냐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당시에는 아픈데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게 환상이든 환청이든 나한테는 진짜처럼 느껴졌으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아질 것 같아 케냐에서부터 들고 다녔던 라면을 꺼냈다. 호스텔 식당에서 쌀도 조금 구해 밥을 하고 라면도 끓였다. 평소라면 침샘을 자극할 텐데 라면이 익어가는 동안 일어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어딘가 몸을 기대야했고,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겨우 라면을 끓였지만 먹을 수 없었다. 딱 두 젓가락 먹고 전부 버렸다.


다행히 이집트에서, 에티오피아에서, 말라위에서 만났던 독일인 이보가 근처 호스텔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연락을 했다. 어디 호스텔에 있는지는 알게 되었는데 정작 내 배낭 좀 들어달라고 부탁하려고 할 때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짐을 대충 정리하고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배낭을 메는 것은 물론이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던 것이다. 체크아웃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2시간 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수십 번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누웠다가 반복하다 겨우 짐을 챙겨서 나갔다. 이보가 있는 호스텔은 정말 가까웠다. 고작해야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인데 2시간이나 걸렸다.


호스텔 마당에서 인터넷을 하던 이보는 내 상태를 보고 놀랐고, 나는 리셉션에 가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것 같으니 당장 침대부터 달라고 명령아닌 명령을 했다.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말라리아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몰랐던 나는 일주일간 침대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잠을 자다 깨어나면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힘들었고, 배는 고팠지만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가끔 너무 많이 누워있다 정신이 돌아오면 온몸이 아파 신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아팠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비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여행자 한 명이 죽는다 해서 누가 알아줄까? 갑자기 두려웠다. 나는 유서를 쓸까 고민했다. 그러나 유서를 쓸 정도의 체력이 내겐 남아있지 않았다.


고맙게도 당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보는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샌드위치와 과일을 사다 주었고, 이름은 물론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독일 여자는 토마토 스프를 만들었다며 침대에 누워있는 내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호스텔 스텝도 수시로 와서 약은 먹었는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다. 약을 제 때 먹어야 하는데 정신이 들면 겨우 하나씩 먹었다. 


일어나서 걷고, 무언가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침대에 누워 생활한지 일주일 만이었다. 맥주는 무리였지만 차가운 콜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한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보던 나는 몸이 괜찮아지자 반대로 여행을 더 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 고민을 듣던 이보는 당연히 더 여행을 해야 한다며 나를 부추겼다. 


결국 난 한국이 아닌 남미로 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죽다 살아났는데 더 여행을 하겠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여행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