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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페리를 타고 도무지 강처럼 보이지 않는 강을 2시간 동안 건너 우루과이 콜로니아(Colonia)에 닿을 수 있었다. 콜로니아는 우루과이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이기는 하나, 무척 한적했다. 잠시 버스터미널에 들러 몬테비데오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콜로니아 여행에 나섰다.

 

마침 날씨가 무척 좋았다. 덩달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남미는 한참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낙엽 지는 거리가 익숙했는데 유독 콜로니아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잠깐 걸었을 뿐이지만 콜로이나에 볼 게 이렇게 없나 싶을 정도로 허무했다. 일단 허기부터 채우고 다시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 식당에 앉아 주문을 했다. 예상은 했지만 아르헨티나보다 비싼 물가에 딱히 먹을만한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장 싼 햄버거를 하나 고르고는 와이파이가 되는지부터 확인했다. 남미에서는 어딜 가나 강아지가 참 많다. 식당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애처롭게 쳐다보는 강아지를 보면 거절하기 어렵다.

 

다시 콜로니아를 걸었다. 아까는 내가 걷지 않은 지역에는 콜로니아의 올드타운이 있었다. 색이 바래지고 허물어진 건물, 돌로 채워진 거리가 정말 ‘올드’했다.

 

동네뿐만 아니라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자동차가 떡 하니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등대가 콜로니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입장료가 25페소로 저렴해 곧장 올라가봤다. 평소 전망대를 올라가면 고층건물이 가득한 화려한 경치를 기대하곤 하지만 여기는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조차 소박하기만 하다.

 

콜로니아는 뭐든지 느리게 흘러가는 곳 같았다.

 

분명 처음에는 콜로니아에 이렇게 볼 게 없었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에 들었다. 언제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유유자적하게 오래된 골목을 걸어볼 수 있겠나. 어쩌면 그것이 콜로니아의 매력일 테고, 그것이 한적함이 주는 매력일 테니까.

 

낙엽이 쌓인 곳으로 일부러 걸었다.

 

콜로니아는 딱 반나절만 생각하고 왔기에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우루과이 역시 버스 회사가 많아 여행자는 감으로 어떤 버스가 좋은지 예측해야 했다. 내가 고른 버스 회사는 코트(COT)였다. 버스를 타고 몬테비데오로 가는데 와이파이가 돼서 신기했다.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버스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경우는 많았으나 실제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속도가 빨랐던 적은 우루과이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4시간 만에 몬테비데오에 도착했다. 빼곡한 건물이 역시 한 나라의 수도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터미널에서부터 호스텔까지 걸었다. 실제로 호스텔이 멀기는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거의 1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다음날 거리에서는 마떼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였나 보다.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는 마떼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우루과이에서는 너도나도 마떼를 손에 들고 마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게 되었다.

 

일부러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는데 너무 비싸 깜짝 놀랐다. 우루과이 물가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우루과이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깨닫고 난 후 다시는 식당에 가지 않았다.

 

바다가 있는 쪽을 향해 계속 걷다 보면 플라사 인디펜덴시아(Plaza Independencia), 즉 독립광장이 나온다. 이 부근부터 몬테비데오의 구도심인셈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우루과이의 독립영웅 호세 아르티가스가 있다. 우루과이는 과거 브라질의 한 주였으나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독립을 쟁취한 역사가 있다. 그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기에 있는 ‘5월의 태양’이 우루과이 국기 왼쪽 가장자리에 들어가 있다.

 

독립광장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좌판을 깔아놓고 여러 물건을 파는 노점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공원 근처에 눈에 띄는 커다란 교회가 있어 들어가봤다. 엄숙한 분위기 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강아지 여러 마리가 공터에서 뛰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나는 그걸 좋아라 했다.

 

여기가 바다인지 강인지 애매모호하다. 잠시 바다인지 강인지 모를 이곳에서 바람을 쐬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원래 우루과이 여행은 딱 이틀로 생각하고 왔다. 내가 우루과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우루과이 라운드’뿐일 정도로 무지했다. 그래서 가방에 담아 온 것도 고작해야 비누 하나와 수건 정도였는데 신기하게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동안 조금만 더 여행해볼까, 라는 생각이 갑작스럽게 들었다. 이럴 때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호스텔에 있던 푼타 델 에스테(Punta Del Este) 지도를 집어 들고는 곧장 버스터미널로 갔다. 주도인 말도나도(Maldonado)에 먼저 가야 될 줄 알았는데 푼타 델 에스테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다만 버스는 5분 뒤에 출발한다는 말에 얼마인지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아 곧장 표를 받아 들고는 뛰었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 내 옆에는 우루과이인 대학생이 타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알아 몇 마디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여행을 2년 가까이 하고 있다는 내 말에도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것인지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남겨주고 말도나도에서 내렸다.

 

푼타 델 에스테는 우루과이에서 손꼽히는 휴양지다. 그래서인지 도착한 순간부터 확 달라진 밝은 분위기에 기분이 들떴다. 호스텔 체크인을 한 후 가볍게 걷기 시작했는데 가끔씩 나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수기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참 겨울인 이 시기에는 한적한 편이다. 날씨도 좋고 산책하기도 좋았다. 그러나 이런 들뜬 기분도 잠시,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바람에 화들짝 놀라 호스텔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가 아마 최근 며칠 사이 가장 좋은 날씨였던 게 틀림없다. 하늘은 항상 흐렸고, 이따금씩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호스텔에 손님이 있을 리가 없다.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와는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잠깐 호스텔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던 브라질 여행자 캐롤린은 영어를 할 수 있어 조금 친해졌다. 캐롤린과 함께 버스를 타고 말도나도에 잠깐 다녀오기도 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여행이 길어진 만큼 여분의 양말이 필요했다.

 

푼타 델 에스테에는 매우 특별한 조형물 라 마노(La Mano)가 있다. 모래사장에 커다란 손가락이 파묻혀 있는데 이곳의 랜드마크로 알려져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손가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했다.

 

특히 가까운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루과이 여행은 푼타 델 에스테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우루과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스페인 친구가 카보 폴로니오(Cabo Polonio)는 꼭 가보라고 추천을 해줘 관심이 생긴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온 우루과이였으니 더 멀리 가보기로 결정을 내리는 건 무척 쉬웠다.

 

카보 폴로니오까지는 한 번에 갈 수 없어 푼타 델 에스테에서 버스를 타고 카스티요스(Castillos)로 이동했다. 사실 이런 곳까지 이동했으면 카보 폴로니오로 가는 버스 시간부터 알아봐야 하는데 나는 배고프다는 이유로 식당부터 찾았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인지 카보 폴로니오로 가는 버스는 하루 3편 밖에 없었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 딱 3시여서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에서 순박한 아이들을 만났다. 이 아이들은 동양인 여행자가 신기했던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스페인어는 오로지 ‘올라’밖에 모르는 내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손짓과 발짓, 그리고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이용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과 여행 중이라는 사실도 알려줄 수 있었다.더 재미있었던 것은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이 아이들에게 스페인어를 몇 마디 배웠다는 점이다.

 

카보 폴로니오로 가는 길은 꽤 복잡했다.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카보 폴로니오라고 도착한 곳은 사실 트럭을 타기 위한 장소였던 거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는 왕복 200페소를 내고 트럭으로 카보 폴로니오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걸어가야 한다.

 

이미 저녁에 가까워진 무렵이었기에 트럭을 타기로 결정했다. 비포장도로와 모래언덕을 넘어 한참 달려서야 바다가 나타났다. 해안가를 따라 조금 더 달리면 멀리서부터 드문드문 나타나는 집이 보인다. 여기가 카보 폴로니오다. 이런 외진 곳까지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게 더 신기했다.

 

물론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긴 하지만 그건 성수기에만 해당하는 것 같다. 비수기라 그런지 썰렁했다. 애초에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곳인데 흐린 날씨가 더해지니 아무리 알록달록한 동네라 할지라도 나무집이 허름하게 느껴졌다.

 

다른 여행자로부터 추천 받은 호스텔에 찾아갔다. 무지개색 지붕에 벽면에는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집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삐걱거리는 나무바닥 소리에 비좁은 공간이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는 이곳을 택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인터넷도 쓸 수 있었다.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벽에 있는 벽화와 다양한 색깔의 집을 구경했다. 멀리서 보면 수수깡으로 만든 동네 같다.


카보 폴로니오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세차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나무집이라 한기에 몸을 떨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건만 한 번 쏟아지는 비는 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려 12시간 동안이나.  


카보 폴로니오를 떠나기 전, 등대 주변을 걸었다. 

 

바위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개가 서식하고 있다.

 

나미비아를 여행할 때 수 만 마리의 물개를 본 적이 있어 이제 이 정도 물개를 보는 것으로는 감흥이 없긴 하지만, 물개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한참 동안 구경하다 돌아왔다. 

  

돌아오는 언덕에서 카보 폴로니오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왔던 우루과이 여행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이제는 아르헨티나보다 브라질이 더 가까워져 내 배낭을 챙겨왔다면 국경을 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역시 나는 여행을 대충하는가 보다.  


호스텔에서 나올 때부터 나를 계속해서 쫓아왔던 강아지 2마리는 내가 물개 사진을 찍을 때도, 카보 폴로니오 경치를 감상하고 있을 때도 내 옆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마치 강아지의 안내를 받아 이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처럼.

 

폭우가 쏟아졌을 때 대피를 했는지 지붕 밑으로 숨은 닭이 보였다. 나와 강아지가 등장하자 닭들은 긴장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내가 떠날 때면 날씨는 왜 좋아지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구름은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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