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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은 비자 신청부터 나를 애먹이더니, 출국하는 순간까지도 내 발목을 잡았다. 아제르바이잔에서 마지막 날, 트빌리시로 넘어가기 위해 기차를 탔는데 결국 3일짜리 비자가 걸리고 말았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숙소에서 주인장 미카일과 헝가리 친구 커팅카와 작별인사를 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만난 사람들도 괜찮았고, 비록 물가가 비싸더라도 나름 ‘이상한 나라’를 여행한 특이한 경험을 안게 되었으니깐.

국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 채 야간 기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바쿠역으로 갔다. 담담했다. 숙소 주인장도 괜찮을 거라 했고,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도 직원들이 문제없을 거라 했다. 사실 마음 졸이며 걱정해봐야 해결될 것도 없었다. 당장 비행기 타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은 선택이란 오로지 이미 예약된 기차를 타고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번에도 불친절한 창구 직원 덕분에 반대쪽에서 플랫폼을 찾기도 했다. 덕분에 시간에 맞춰 간신히 탔다.


열차 내부는 상당히 깨끗했다. 난 분명 가장 낮은 클래스를 예약했는데, 이건 러시아에서 탔던 2등석 꾸뻬랑 같았다. 4명이서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문도 닫을 수 있다. 근데 승객이 그리 많지 않은지 비어있는 칸이 많았다.


비어있는 칸도 많은데 꼭 내 자리는 2층이다.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우리 칸에는 카자흐스탄 부인과 아제르바이잔 남편, 그리고 귀여운 아들과 딸이 함께했다. 그들은 나에게 차를 주기도 했고, 아직 걷지도 못하는 귀여운 아이들을 바라보며 서로 웃음 짓기도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완 달리 문제는 다음날에 일어났다. 예상대로 오전 8시 경에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도착했다. 사실 야간 기차라 12시 정각에 도착하지 못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사실이고, 어찌 보면 내 잘못이기도 하다. 파리다를 비롯해 국경 직원과 숙소 주인장까지 다른 사람들이 다 괜찮을 거라고 말했고, 혹시라도 내 비자의 유효기간이 30일이라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불려나갔다.

체류 기간이 3일인데 오늘은 4일째라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지만 예상대로 걸렸다. 이쯤 되면 나도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게 아니라 비자를 신청할 때 숙소를 2일 예약했다는 이유로 3일짜리 비자를 발급해준 여행사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지나면 조지아 국경인데 난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려야 했다. 그나마 국경 직원은 나에게 계속 설명해 주려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불러 대화를 이어나갔다. 웃으면서 어쩔 수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들으며 하염없이 기차를 바라봤다. 나 때문에 멈춰있을 수 없으니 직원 말대로 일단 택시를 타고 아그스타파(Agstafa)라는 도시에 있는 출입국사무소로 갔다.

택시 같지도 않은 택시를 타니 국경에서 점점 멀어졌다. 택시 아저씨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래를 엄청 크게 틀었다. 워낙 시골인데다가 국경 근처의 마을이다 보니 여기선 합승이 기본이다. 군인도 태우고, 할아버지도 태우고, 어느 커플도 태우다 보니 좁은 뒷좌석은 4명이 앉았다.

갑자기 뿌연 안개가 시야를 차단했다. 생전 이렇게 심한 안개를 처음 본다. 얼마나 심한지 단 5m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택시는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았다.

1시간을 이동해서야 아그스타파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했다. 아주 구석진 곳에 있었다. 여기서 벌금을 낼 것인지 혹은 입국금지를 당할 것인지 페널티를 정할 수 있는데 벌금은 피하고 싶었다. 1일당 무려 300마나트(거의 300유로)라는 금액은 상식적으로 너무 했다. 어차피 아제르바이잔을 내 평생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일정 기간 동안 입국금지를 당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5년이라고 했는데, 문서를 확인해 보더니 향후 2년간 입국금지였다.

계속해서 시계를 가리키며 나에게 뭐라 말을 하는 택시 아저씨를 옆에 두고 난 서약서 같은 걸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그냥 불러주는 대로 썼는데 대충 앞으로 2년간 입국금지 당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인도 했다.

택시 아저씨가 계속 보채 길래 사무실 직원이 ‘히 이즈 어 굿맨’이라는 말을 했다. 전혀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던 아저씨지만, 직원이 웃으면서 말하는데 어쩌겠나.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나중엔 돈을 더 준다고 말로 꼬셔야 했다. 금방 될 거라는 말과 달리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종이 한 장을 받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페널티를 받았다는 그런 내용의 문서였다.


난 이 종이를 들고 다시 택시에 올라탔다. 이제야 기분이 살짝 풀린 아저씨는 거칠 것 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레이싱 경기를 하는 줄 알았다. 가자흐(Qazax)까지 이동하는데 택시비로 30마나트를 냈다. 예상치도 못한 지출이 발생해 어쩔 수 없이 ATM에서 40마나트를 인출했다.


내가 언제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와보겠나 싶어서 사진을 찍으니, 이 아저씨는 왜 나를 안 찍냐며 툭툭 쳤다.


이것도 기념이라고 생각되는 페널티 문서도 찍었다.


가자흐에 도착하자마자 택시 아저씨는 나를 끌고 바로 앞에 보이는 낡은 미니밴에 타라고 했다.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미니밴에 올라탄 후 바라본 풍경은 나름 신기했다. 맨 뒷좌석엔 양복을 그럴 듯하게 차려 입은 아저씨가 있고, 짐을 한가득 안고 있는 아줌마, 시크하게 창밖만 바라보는 젊은 아가씨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20명은 탄 거 같다.


이 동네에서는 이게 바로 버스였다. 국경까지 이어진 길 위에 마을과 마을을 잇는 대중교통이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가 내 옆에 있던 어린 남자가 중국인이냐고 물어본다. 웃으면서 ‘까레야’라고 말하니 무척 신기한 듯 쳐다봤다. 근데 여기가 시골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 친구가 어려서 그런지 러시아어를 전혀 못했다. 물론 알아도 나에겐 도움이 안 되겠지만.

미니밴(1마나트)을 타고 국경까지 갔다. 신기하게도 이런 상황인데도 전혀 두렵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이번 여정은 쉽지 않다며 혼자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도 여행의 일부라고 여겼기 때문일지 모른다.


국경에 도착해서는 달라붙는 환전상들과 대충 시세도 알아보지 않고 마나트를 전부 조지아 라리(GEL)로 바꾼 후 배낭을 짊어지고 국경으로 향했다. 걸어서 국경을 넘은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원래는 이렇게 넘을 국경이 아닌데, 그리고 트빌리시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제르바이잔 국경을 넘을 때 아그스타파에서 받은 문서를 내니 별 어려움 없이 출국이 끝났다. 그리고 조지아 국경을 보니 여행자 친화적인 무비자 360일 국가의 반가움과 무사히 탈출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조지아 국경에서도 간단하게 도장 받는 것으로 입국 심사가 끝났다. 그때가 오후 1시였다.


조지아 국경을 통과한 후 어떻게 트빌리시로 가느냐가 문제였다. 달라붙는 택시 아저씨를 뿌리치려 했지만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도 없고 해서 그냥 타고 갔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예상치 못한 지출이 늘어난 하루다.


그래도 트빌리시까지 생각보다 훨씬 멀어 택시를 탄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물론 돈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리지만.


약 1시간을 달려 트빌리시에 도착했고, 택시 아저씨는 내가 가려는 위치를 정확히 찾으려고 다른 택시 아저씨에게 묻기도 했다. 아무튼 험난한 여정 끝에 트빌리시 올드타운에 무사히 도착했다. 돌아다니며 대충 묵을만한 숙소를 찾아 체크인하니 그제야 모든 게 편해졌다.


트빌리시는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배낭을 메고 있는 여행자가 많이 보였고,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여행자 친화적인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많았다. 국경을 무사히 통과한 직후라 그런지 마냥 기분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나는 올드타운의 적당한 식당에 앉아 맥주부터 시켰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허겁지겁 먹은 조지아에서의 첫 끼, 그저 행복했다.


‘KGB는 아직도 우릴 지켜보고 있다’는 식당 간판에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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