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그랜드 모스크에서 나와 곧장 이스타나 마이문(Istana Maimoon : 간혹 Istana Maimun이라고 표기하는 곳도 있는데 그냥 발음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로 보인다)으로 향했다. 이스타나 마이문은 걸어서 10분 정도만 가면 나올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수마트라 여행 자체가 그랬지만, 메단의 경우 더더욱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론리 플래닛에서 읽은 바로는 메단의 주요 관광지는 그랜드 모스크와 이스타나 마이문이 전부인 것 같았고, 그렇다면 일단 이 두 군데는 필수로 거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적당히 낯익은 거리를 걸었다. 좌판에 싸구려 티셔츠를 파는 사람과 타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구경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구경했다. 으레 이런 곳에서 볼 수 있는 티셔츠는 관광지인 그랜드 모스크나 화려한 그림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이 러브 뉴욕(I love NY)’를 따라한 ‘아이 러브 메단(I love Medan)’이라는 지역 사랑이 가득 담긴 티셔츠를 볼 수 있다. 메단이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데도 말이다.

사실 티셔츠의 절반은 수마트라의 대표적인 관광지 또바호수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직 또바호수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티셔츠를 통해 또바호수를 알게 되다니. 대단한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티셔츠를 파는 좌판을 지나면 노점이 몇 군데 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어도 이곳에서 인도네시아 대표 음식인 박소를 팔고 있을 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주변에 보이는 건물은 전부 문이 닫혀 있었다. 조금 걸으니, 노란색 궁전 이스타나 마이문이 보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까 그랜드 모스크에서 만난 꼬마 아이들이 베짝을 타고 내 옆을 지나갔다. 나를 기억해서인지 해맑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사진을 찍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귀엽기만 하다.


이스타나 마이문의 외관만 보면 궁전답지 않게 화려함이 부족하다. 황금색과는 거리가 먼 짙은 노란색 건물이었고, 뭔가 외부에서부터 압도당할 정도로 거대함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들어가기 전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들어가자.


궁전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어야 한다. 그리고 입구에서 입장료로 5천 루피아를 받는다.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하고, 5천 루피아를 주섬주섬 꺼내 냈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하면서 입장료를 낸 적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대게 비싼 편은 아니었다. 보통 밥 한 끼에 2만 루피아를 냈던 것을 생각해보면 5천 루피아는 찻값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흑백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 이스타나 마이문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인가 본데 지금과는 달리 궁전 근처에는 건물이 별로 없다. 이 궁전이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이니 그럴만도 하다.


내부는 황금을 상징하는 듯 모든 게 노란색으로 치장되어 있다. 벽도 노란색이고, 커튼도 노란색이고, 의자도 노란색이다.


혼자 다니면 사진을 찍기 힘들기 때문에 거울을 보며, 이렇게라도 찍어본다.


술탄의 궁전이면 굉장히 신성시될 것 같은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물론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것부터 예의를 갖춘 셈인지도 모르겠지만, 저렇게 아무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일반인이 사는 커다란 집에 온 느낌이다. 하긴 저렇게 앉아 있는다고 예의가 없는 건 아니니깐.


그래도 명색이 술탄이 살았다는 궁전인데 특별한 무엇은 있기 마련이다. 술탄이 앉았던 곳으로 보이는데 황금색 조명 탓인지 굉장히 화려해 보였다. 아무래도 출입은 할 수 없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올라가 보는 대신 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 안쪽에는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전통 의상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나름 재미있게 지켜봤다.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있을 때, 어떤 한 여자가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갑작스런 요청에 조금 놀라기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외국인이라서 그런 걸까?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 고맙다고 말하고는, 쑥스러운 듯 황급히 사라졌다.


이스타나 마이문이 공개된 장소는 딱 여기까지다. 어쩌면 허무할 수 있을 정도다. 1층 로비라고 할 수 있는 공간만 공개되어 있고, 나머지는 출입금지 구역이다. 또한 외부에 있는 몇몇 구역은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바깥으로 나가 출입금지로 가보면 허술하지만 이렇게 막혀있다.


이스타나 마이문을 나와 밖으로 나가니 정면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참 많았다. 사실 이스타나 마이문은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족자카르타에 있던 술탄 왕궁인 크라톤은 무지하게 넓지만 볼거리가 없다고 여겼는데 여긴 크라톤에 비하면 아예 구경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딱히 실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난 적당히 화려했던 노란색 궁전을 뒤로 하고, 계획도 없는데 무작정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