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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코에서 도쇼구, 린노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곧장 도부닛코역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이동거리가 상당했는데 도쿄로 돌아간 뒤 다시 남쪽에 있는 가마쿠라로 이동해야 했다. 

도부닛코역에 도착하자마자 매점으로 갔다. 아침은커녕 점심도 먹지 못한 상태라 열차 안에서 먹을 에끼벤(도시락)을 구입하기로 했다. 1050엔짜리 에끼벤 하나와 물대신 먹을 수 있는 150엔짜리 냉차를 하나 샀다. 

열차를 타고 도쿄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제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가마쿠라에 도착할 때면 깜깜한 밤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가마쿠라에 도착해서도 어디서 자야 할지 정하는 문제도 남아있어 여러모로 고민이 쌓여갔다. 

때문에 사실 아침부터 시간 계산을 많이 해봤다. 올 닛코 패스를 가지고 있으면 도쿄로 돌아가는 쾌속열차를 한 번 더 탈 수 있지만 2시간 30분이나 걸리기 때문에 1시간 50분 걸리는 특급열차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특급열차는 쾌속열차보다 30분 뒤에 출발하기 때문에 따지고 보니 결국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했다. 어차피 패스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20분 먼저 도착하려고 특급열차를 탈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12시 56분 열차를 탔다. 타자마자 주변에서는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너무 배가 고픈 상태라 주저하지 않고 아까 구입한 에끼벤을 열었다. 


일본에서 열차 여행의 매력은 에끼벤이라는 말도 있다. 각 역마다 다른 에끼벤을 팔고 있어, 도시락을 먹으면서 여행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구입한 에끼벤도 일본답게 참 예쁘게 포장된 도시락이었다. 버섯을 넣고 지어서 그런지 밥은 갈색빛이 돌았고, 주황색 연어와 노란색 계란이 들어 있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제 여관 아주머니가 닛코 특산품 중에 두부가 있다고 했는데 이 도시락에 들어있는 게 그건가 보다. 


허겁지겁 먹으니 배가 불러왔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밥도 먹었겠다, 아직 2시간이나 남은 이동 시간에 졸음이 몰려왔다. 한참을 졸다 깨도, 시간은 별로 지나가지 않았다. 


별다를 것 없는 창밖의 풍경이 여러 차례 지나간 후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도심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부터 몇 분 뒤 멀리서는 스카이트리까지 보이니 도쿄 중심부가 맞긴 맞나보다. 

 
도부아사쿠사역(아사쿠사-도쿄 스카이트리역이라고 부르기도 함)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서둘러야 한다. 가마쿠라까지는 어떻게 이동하는지 그리고 가마쿠라에 도착해서는 뭘 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감도 안 잡혔지만, 일단 도부아사쿠사역에서 나와 아사쿠사역으로 걸어갔다. 

아사쿠사역으로 걸어가는 도중 한 외국인이 보였다. 얼굴에는 ‘나 일본 처음이에요’라고 써 있었는데 역시 나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두 유 스피크 잉글리쉬?”

“네. 그렇지만요. 저는 한국 사람이예요.”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도쿄는 처음이니까. 안타까워하는 그 외국인 아저씨를 두고, 서둘러 아사쿠사역으로 들어갔다. 다시 지하철 노선도 앞에 섰다. 마치 매직아이를 보는 것처럼 어지러운 도쿄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가마쿠라까지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가마쿠라는 도쿄가 아닌 시외니까 아마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지난번에 봤던 안내원이 있어 물어보니 가마쿠라는 신바시역까지 간 후 JR로 갈아타면 된다고 알려줬다. 

신바시역까지는 210엔이었다. 지하철 승차권 구입까지 도와준 안내원께 감사하다는 말을 한 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도쿄에서는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지하철을 보니 좀 어색했다. 서울에서 타는 지하철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신바시역에 도착한 후 JR을 타러 이동했는데 난관에 부딪혔다. 노선표는 전부 일어로 적혀있었었던 것이다. 하긴 영어로 적혀있어도 주변 사람에게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옆에 있던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영어로 친절히 알려주셨다. 덕분에 780엔을 발급기에 넣고, 승차권을 받았다. 


열차는 1번 플랫폼의 요코스카선을 타면 된다. 몇 분 기다린 후 JR에 올라탈 수 있었다. JR에 올라가자마자 장거리 열차를 타는 것처럼 좌석이 일렬로 있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마쿠라까지는 거리가 머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까 신바시역에서 시나가와에서 갈아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 열차가 정말 갈아타는 게 맞는지 궁금해졌다. 옆에 있던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갈아타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자기들도 가마쿠라까지 가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여행 일정은 3일인데 어제는 닛코에 갔고, 이제 가마쿠라로 이동한다고 하니까 아주 놀라셨다. 하긴 이동거리가 상당했으니 놀랄 만도 하다. 가마쿠라에 도착해서 신사로 갈지 아니면 숙소를 찾아 나설지 생각중이라고 하니 더 놀라신다. 옆에 계신 아주머니에게 방금 이 이야기를 통역을 해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살짝 웃으면서 나보고 젊으니까 가능한 여행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내가 탄 칸에 JR직원이 와서 뭔가를 이야기했다. 알고 보니 내가 탄 칸이 그린카였는데 이 칸은 지정석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좌석이 이상했다 싶었다. 이런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해서 800엔을 추가로 냈다. 

아무튼 난 옆에 있던 아저씨와 대화를 하며 가마쿠라까지 갔다. 일본여행은 처음이냐는 이야기부터 이번에 선출된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다소 어려운 질문까지 오고갔다. 그러면서도 명함을 하나 꺼내주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아마 내가 혼자 여행을 하고, 숙소도 예약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요코하마를 지나고, 한참을 달리니 오후나역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가마쿠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알려줘서 함께 내렸다. 여기에서 열차를 타고 5분정도 이동하니 가마쿠라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아저씨와 아주머니(아저씨의 형수님)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아는 호텔이 있냐고 물어봤다.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아마 그쪽에서 묵을 것 같다고 했다. 늦은 시각이라 결국 전화까지 해주셨다. 일어를 전혀 몰라 전화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통화 내용을 들은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요카타. 요카타.”

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영어를 모르던 아주머니는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셨고, 아마도 오늘 체크인이 가능하다는 통화 내용이었던 모양이다. 아저씨는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의 위치와 가는 방법을 물어보고 통화를 끊었다. 


1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하지와라구치까지 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정말 감사했다. 버스를 타기 직전에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방인에게 베풀어주는 친절함에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데이터로밍을 했으니 구글지도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일단 하지와라구치에서 내린 후 수로를 찾으면 다 찾은 거나 다름없었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는 도심과는 먼 곳에 위치해 있었고, 주변에는 식당이나 상가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 자체가 조용했다. 그렇게 조금 걸으니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근처에서 유일하게 밝은 빛을 내던 건물이었고, 조그맣게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혀 있어 알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한 스텝이 체크인과 게스트하우스 소개를 해줬다. 대가족의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나름 분위기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거실에서 앉아 있으려다가 아무래도 뻘쭘함을 이기지 못하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저녁도 먹지 못한 상태이니 지하 1층에 있는 바에서 뭐라도 먹을 생각을 했던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니 두 명의 남자가 나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무슨 말인지 몰라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니까 오히려 이 친구들이 놀란다. 나보고 일본인처럼 보였다나 뭐라나.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게 되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나에게 맥주를 한잔 건네줬다. 알고 보니 이 사람도 스텝이었다. 

이거 얼마냐는 나의 물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쏘는 거라고 대답했다. 갑작스레 공짜로 얻어먹는 술이라니. 하지만 뭔가 즐거운 기분이 솟구쳤다.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유를 가지며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게 정말 내 여행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시간만 허락했다면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 더 머무르고 싶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거품이 가득한 맥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했다. 

이 둘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사이였다고 하는데 한 명은 도쿄에서 떨어진 가마쿠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한 명은 오토바이 정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여행 이야기도 하고, 한국 음식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내가 닛코에서 왔다는 말에 한 번 놀라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잠시 후에는 올라가서 숯불에 구운 생선을 먹었다. 이것도 나에게 그냥 줬다. 생선을 불에 구워 먹는 건 만화에서만 본 것 같은데 이렇게 구워 먹을 수 있다니 참 신기했다. 숯불 위에 생선꼬치를 놓는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먹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맛은 소금을 많이 뿌려서 그런지 좀 짰다. 가시도 있어 먹기가 힘들었다는 것도 나름 말 못할 사정이었다고 할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방으로 가더니 생선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일본식 회인 사시미를 처음 먹어보는 것도 아니지만, 입맛을 다시며 지켜봤다. 


이것도 역시 공짜였다. 심지어 맥주도 또 얻어 마셨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대체 왜 공짜로 나에게 주냐고 물으니 그들도 딱히 대답을 못해준다. 그저 ‘스페셜데이’라는 아리송한 대답뿐이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뭔가 이상한데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난 공짜로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지난밤에는 혼자 지내서 그런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 


여기에는 스텝 2명의 아이들도 함께 있었는데 정말 귀여웠다. 여자 스텝은 원래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재일교포였다. 때문에 한국말도 할 줄 몰랐고, 이제는 결혼도 해서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동글동글한 남자와 결혼 사이였다. 


사시미를 다 먹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늦은 시각에도 게스트하우스로 오는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본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외국인은 나 혼자 뿐이었다. 


즐겁게 떠들며 놀다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나가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또 다른 스텝인 ‘준마루’가 게스트하우스 현판을 들고 왔다. 여기서는 매우 독특하게도 게스트하우스 현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뒤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바는 게스트하우스와 연결돼 있지만 운영은 달리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아까 나랑 처음 만났던 ‘토모’와 다시 맥주를 마시고, 옆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친구와도 대화를 이어갔다. 나와 한국어로 대화하면 주변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랬다. 

그래서인지 한국어나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와 대화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통역해줬다. 한글은 글자를 조합해서 쓰는 언어라고 대신 설명해 주기도 하고, 지금은 한자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또한 한국어와 일본어는 비슷한 단어가 있는 말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가령 가족이나 가방이 일본어에도 비슷한 발음으로 쓰인다. 

“그거 알아? ‘삼각관계’도 똑같을 걸?”

정말 깜짝 놀랐다. 일본에서도 삼각관계가 쓰일 줄은 몰랐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말장난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에는 밤 12시가 되도록 웃고 떠들었다. 


즐거움이 솟구치는 그 감정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여행은 이래서 재미있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가마쿠라에서는 본 게 아무것도 없지만,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났다. 게다가 가마쿠라 게스트하우스 오기 전에도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도움도 받았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바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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